“세상의 소리를 바로 듣기 위해 평생 공부하고 싶어”

세상의 소리를 바로 들어야 했기에 공부를 시작했다는 팔순의 할머니가 지난 4월 10일 치러진 중학교 검정고시에 당당히 합격했다. 지난해 8월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해온 에바다평생학습학교 권문자(78)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어려운 시절임에도 배움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고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온 권 할머니를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

구 평택군 평택6리(원평동)에서 태어나 평택에서만 80평생을 살아온 권 할머니는 일제 식민지 시절과 6.25 사변을 평택과 함께 고스란히 감내하며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다. “국운이 암울한 시절에 태어나 배움은 생각도 못했죠” 6.25 전쟁 때는 진위면 안골로 피난을 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숨어서 지내기도 했단다. 당시 권 할머니가 피난을 간 진위면 안골이라는 동네는 산으로 둘러싸여 전쟁의 참화도 비껴간 곳이다.

국민(초등)학교 6학년까지 학교를 다니다 생활고 때문에 중도 포기한 권 할머니에게 공부는 평생의 한이었다. “어려운 시절인지라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독학을 시작했어요. 지금이야 검정고시가 있어서 사회진출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되어 있지만 그 때는 그런 게 없었죠. 살아야 했기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독학을 통해 학문과 피아노를 깨우친 권 할머니는 과외를 하고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50여 명의 제자도 길러냈다고 한다.

평생을 배움과 함께한 권 할머니이기에 책에 대한 사랑도 각별했다. 책이 시원한 오아시스처럼 배움의 갈증을 풀어줬기에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평택시립도서관은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지식을 쌓고 책을 읽기위해 도서관을 찾기 시작한지도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늘 배움을 갈망한 권 할머니에게 시립도서관은 그야말로 보물창고였다.

검정고시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평택시립도서관 때문으로 도서관에서 한자시험을 준비해 3급과 2급 시험에 합격하고 난 뒤 욕심이 생겨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하게 되었단다.
“이 나이에 공부를 한다고 해서 어디 가서 취직해 일 하려는 건 아니지만 계속 도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하게 됐죠.” 권 할머니는 앞으로 건강만 허락한다면 고등학교 검정고시와 대학교에 진학해 인문학을 배워볼 생각이란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시험과목은 국어·사회·국사·수학·영어·과학·도덕 등 7개 과목으로 권 할머니는 올 8월에 치러지는 검정고시에 응시할 예정이다. “고등학교 수준이다 보니 대부분 과목들이 어렵지만, 특히, 수학이 가장 어려워요. 오늘도 학교에 오지 않는 날이지만 수학수업이 있어 왔어요.”

어려운건 알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을 하다보면 좋은 결과도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는 권 할머니는 “수학 선생님이 기초를 갖춰주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 8월에 있을 검정고시 합격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이번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계속해서 도전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미력하지만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에바다평생학습학교 선생님들이 배움의 기쁨을 가르쳐 줬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배움의 기쁨을 전해주고 싶어요.”
오는 8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권문자 할머니의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소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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