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지서도, 편지도 다 읽을 수 있어요”

누워 잠 잘 수 있는 집이 있어 행복하고,
밥 굶지 않아 행복하고,
평택시민아카데미 학교에 다녀
이렇게 글도 쓸 수 있어 행복합니다.

김상순 할머니의 ‘행복을 찾아서’ 中

1936년 굶주림과 전쟁으로 다들 어렵던 시절. 그 시절에 배움이란 어쩌면 사치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배움의 기회조차도 거의 주어지지 않았던 그 시절에 태어난 김상순(80) 할머니가 들려주는 인생이야기는 참으로 애달프면서도 아름답다.

1950년 6월 25일, 우리 민족이 서로를 향해 총과 칼을 겨눈 슬픈 전쟁을 겪었던 날. 전쟁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채 여러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픔으로 남아있다. 김 할머니는 고작 15살이란 어린 나이에 전쟁의 끔찍한 고통을 겪어내야만 했다. 15살의 꽃 같던 소녀는 꿈꾸는 것조차도 과분한 일이라 여기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그 시절 그 소녀는 가슴속에 배움이라는 꿈을 묻어두고, 언니와 오빠들, 막내 여동생을 위해 조금은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올해로 산수를 맞이한 김 할머니가 가슴속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꿈을 꺼내기 시작한건 8년 전이다. 어디서 편지가 오거나 공과금 고지서가 와도 읽지 못해 매번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하곤 했던 김 할머니는 ‘지금이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열정을 가지고 평택시민아카데미를 찾은 것이다. “여기 다니고 나서는 이제 글씨를 조금은 알게 되었어. 아직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어디서 우편이 왔는지 알 수가 있게 되었지. 그리고 가장 좋았던 건 내 이름을 찾았다는 거야.”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던 김 할머니는 70년이 넘게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살아온 기분이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이곳에서 일주일에 4번 한글공부를 하며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는 김 할머니는 누구보다 배움의 소중함을 알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공부할 것이라며 소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김 할머니는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뛰어난 실력으로 2013년에는 평택교육진흥원장상도 받았다. “자기가 생각하고, 느낀 것을 써내라고 해서 했는데 이렇게 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학교 문 앞에도 가본적이 없어서 지금이 너무나 행복해 나는.”

이제는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있게 되었지만 김 할머니에게는 부치지 못한, 아니 부칠 수 없는 편지가 있다. 지난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막내아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김 할머니는 하루하루가 심장을 찌르는 듯 느껴졌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너무 아팠지만 하늘에 있는 아들을 위해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곳에서는 행복하라고 편지를 쓰곤 했다.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지. 그래도 이렇게 내 친구들과, 여기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 말라. 걱정해야 할 일은 나이를 먹기까지의 여러 가지 장애를 극복하는 일이다’라는 쇼오의 명언처럼 김 할머니는 인생을 살아오며 많은 것들을 겪었고, 극복해내고 있다. 소소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며 “이 세상에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라고 말하는 김 할머니를 통해 ‘행복이 뭘까? 우리는 행복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것은 아닐까?’라는 의미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어 이번 만남은 참으로 감사했다. “사람은 배워야 해. 그게 뭐가 되었든지. 그리고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이 세상에는 행복한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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