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과 농사짓는 행복,
앞으로 30년은 더 누리고 싶다”
팽성 대표 농사꾼을 넘어 대한민국 대표농군 꿈꾼다

3.11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경기지역은 177명의 조합장이 선출되었다. 경기지역은 네 명이 출마해 단독 출마한 한 명만 당선됐을 정도로 여성조합장은 낯설다.
팽성농협 조합장에 도전했던 신대 4리 이산중(51) 이장은 “평생 농사지어온 사람이니까, 농민 입장에서 봉사하려고 나갔다. 그런데 아직까지 농협에서 여성 조합장은 유리천장이란 걸 많이 느꼈다”며 낙선 소감을 밝혔다.
이 이장은 조합장 출마에 앞서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었다고 한다. 농협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농협 조직과 사업 등에 대해 교육도 받고 공부도 했었는데, 결과는 아쉽게 나왔다.
“꿈은 많았었지만, 낙선으로 물거품이 됐으니 예전으로 돌아가 열심히 농사지어야죠” 하면서도 내년도 농협 이사 출마에 대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거짓말 안하고 1년 안에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만 공약으로 제시했다. 나머지 3년 동안은 조합원, 이사들과 논의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현실정치를 모르는 너무 이상적인 공약이었다. 이사가 돼서 구태 못 벗어난 농협 운영에 제동 걸겠다.”
이 이장은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당선자에게는 축하 전화를, 낙선한 후보에게는 직접 찾아가서 위로했을 만큼, 선거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선거 다음날 지게차 끌고 일하러 가는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신대 4리는 57가구 중 70세 이상 어르신이 76명이나 된다. 젊은 사람들이 떠난 마을은 환갑에도 젊다는 소리를 듣고, 그 중 이 이장은 새파랗다는 말이 어울린다. 어르신들 섬긴다는 생각에 어린 나이에 이장을 맡아 9년씩이나 했으니, 그만 하라는 소리가 나올 법한데, 얼마 전 마을사람들에게 그만둔다고 했다가 오히려 역정을 들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머슴애 같다’, ‘의리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이 이장은 농사일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한 해 농사 시작을 알리는 논갈이와 모내기를 할 때면 이 이장은 트랙터나 이양기가 없는 동네 어르신들 논일까지 포함해서 15만평 일을 혼자 다 해 낸다. 갓 스물 넘긴 나이에 결혼해서 3천평으로 시작했던 농사가 지금처럼 농토부자 소리 듣게 된 데는 타고난 부지런함과 농기계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한 몫 했다고 한다. 어르신들을 뒤로 하고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 남겨 놓은 땅을 빌리거나 융자를 얻어 경작 면적을 늘려갔던 것도 콤바인이나 트랙터, 지게차 같은 농기계를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지금도 누군가를 만나면 존댓말을 하는 이 이장은 15만평 농사를 짓는 억척 농군답게 여장부다. 그런 그녀를 부드럽고 행복하게 하는 건 농촌지도소 소장 소개로 만나 18개월 만에 결혼한 남편과 같이 농사짓고 있는 딸이다.
이 이장 내외를 닮아 억척 농군이 된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연예인 코디네이터 일도 해 봤고, 고향에 내려 와 개인사업도 해 봤다. 하지만 딸은 농사만큼 정직한 일이 없다는 걸 몇 년 전에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은 이 이장보다 더 많은 농사를 짓는 억척 농군이 된 딸이 결혼적령기를 넘길까 걱정이라는 이 이장은 “사업하는 사람만 아니면 다 좋다”며 은근 딸 자랑을 하는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
자식과 농사짓는 행복을 힘이 다할 때까지, 앞으로 30년은 더 누리고 싶다는 이 이장은 팽성 대표 농사꾼을 넘어 대한민국 대표농군을 꿈꾼다.
“농사는 열심히 하면 된다. 쌀농사는 남부럽지 않게 해 봤으니 앞으론 시설 채소도 좀 해 볼 생각이다”며 일거리 만들 계획을 벌써 세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