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 연<경기도사진작가협 회장·전 평택예총 회장>
문화예술 투자 눈앞의 적자보다 긴 안목 필요
연작시 ‘쑥고개’보다 KBS ‘TV문학관’에 ‘우렁이와 거머리’라는 그의 중편이 드라마 화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송탄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고(故) 박석수는 그의 자전적(自傳的) 중편 소설 ‘동거인’에 재미있는 내용을 쓴 바 있다. 콩나물에 관한 자세하고도 눈물겨운 이야기다.
박석수는 현재의 송탄버스터미널과 지산동 사무소 사이에 있던 콩나물 공장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와 거의 동시대에 같은 곳에서 살았던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 소설의 내용은 거의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 데 그렇다면 그가 쓴 콩나물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의 아버지는 콩나물을 기를 때 반드시 수동 펌프질로 물을 길어 올려 물통에 받은 뒤에 이를 바가지로 뿌려 주었다고 한다. 하루 다섯 차례 씩 물을 주는 데 한 번 물을 줄 때마다 두 시간씩 펌프질을 해야 하니 가족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고역을 견디기 힘든 인부들은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기 일쑤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모터 펌프로 물을 주는 편한 작업을 한사코 거부했다.
‘콩나물이나 숙주나물은 물을 먹고 자란다. 그 물이 콩나물을 기르는 사람의 정성어린 땀인데 정성어린 땀은 바로 곧 펌프질’이라는 것이다.
당시 소설 속에는 송탄에 또 다른 공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데 유독 주인공네 콩나물이 잘 팔린 이유도 결국은 그 펌프질에 있음이 밝혀진다.
지하에서 길어 올린 같은 물이지만 탱크에 가득 채워 공장 실온에 맞춘 뒤 주는 물과 길어 올리자마자 곧장 주는 물에는 온도 차이가 있어 콩나물 생육에도 차이가 나게 마련인데 모터 펌프를 사용하면 물을 길어 올리는 동시에 물을 주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다.
결국 고집스러운 수동 펌프질이 콩나물을 살찌우고 썩지 않게 하며 잔 발이 나지 않게 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콩나물은 물을 먹고 자라고 그 물은 고이지 않은 채 시루밑으로 죄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는 물이라고 해서 물 주기를 그친다면 콩나물은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황하게 콩나물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투자를 말하고자 함이다.
금년 들어서 우리시는 관내의 문예회관 이용료나 대관료를 대폭 인상했다. 물론 적자폭이 큰 나머지 경영개선을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라는 것에는 동조를 한다. 하나도 아니고 세 곳이나 되는 문예회관이다 보니 일년 내내 시설 전부를 대관, 운영한다 해도 관리비 등의 전체 예산 대비 수입액 비율은 형편없이 낮았을 것이다. 더욱이 수치상으로는 ‘대폭’이라지만 금액상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 것이고 보면 올려놓았다고 경영 개선이 당장 좋아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문예회관의 공익성과 공공성이다. 대도시의 지하철이 수 조원에 달하는 재정 적자를 안고서도 운임을 인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러면서도 계속 지하철을 확충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그 많은 재정 적자를 국가가 부담하는 이유는 그 이익이 국민에게 직접 돌아간다는 것과 운임을 인상할 경우 전체적으로 맞물리는 교통문제나 물가 상승 등 국가 경제 때문 아닌가.
당장 아무런 가시적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예술 시설이라고 해서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을 전달하는 중간 역할자 문화 예술인에게 적자액을 부담 지운다는 것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장 길 하나 더 뚫고 도로포장 한 곳 더 하는 것이 시청의 의무라고 한다면 시민의 정신 건강을 살찌우는 것도 같은 의무인 것이다.
콩나물 시루의 물이 빠져나가야 콩나물이 크는 것처럼 문화 예술에 대한 투자는 감당하지 못할 적자가 아니라면 끌어안고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용료 인상이 그동안 우리시가 노력해서 이끌어 올린 평택문화 예술을 위축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택논단>
평택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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