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세월호 없는 사회를 위해 (3)

경험통해 이재민 생활 지원책 마련

대지진 잿더미에서 부활한 고베

1995년 1월 17일 효고현 한신·아와지(阪神·淡路)에서 진도 7.3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인구 150만이 넘는 고베였다. 지진으로 고층빌딩은 물론 저층 주택가까지 무너져 잿더미가 됐고, 고가다리로 건설된 도시고속도로도 엿가락처럼 상판이 무너져 내려 행방불명자까지 포함해 무려 6437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 밖에도 부상자 2만6804명, 이재민은 약 20만 명에 달했다. 물적인 피해 규모는 14조1000억 엔(미화 약 140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고베시는 조선·철강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해 수많은 건물과 공장시설 및 고속도로·철도·통신시설 등 사회기간시설이 파괴됨으로써 이 지역의 산업 활동을 마비시켰고 주민들도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고베시의 부흥과 복구를 위해 신속하게 대응했다. 내각대신을 본부장으로 하는 ‘한신·아와지부흥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종합적인 부흥대책을 추진했으며, 불과 2년 후에는 대지진의 흔적을 어느 정도 지우고 건강한 도시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사랑하는 가족과 집을 잃고 절망에 빠진 이재민들의 생활재건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도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계기로 생겼다. 1998년에 창설된 이재민 생활재건지원법에 입각한 제도로서 자연재해로 인해 생활기반에 현저한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 이재민 생활지원금을 지급한다. 구체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자연재해로 인해 주택이 완전히 붕괴되는 등 피해를 입은 세대에 대해 최고 300만 엔(한화 3000만 원)의 생활재건지원금이 지급된다.

▲ 한국어 자원봉사자가 고베 대지진 때 기울어진 건물 사진을 보여주며 내진설계가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있다.

재해현장과 자원봉사 현장학습

악몽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효고현에서는 기억하기조차 싫은 악몽이지만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한신·아와지대지진 재해기념관’을 만들었다. 바로 ‘인간과방재미래센터’로 2002년 4월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고베시 쥬오구 와키노하마카이간도오리에 세웠다. 센터의 표어도 ‘We don't forget 1995.1.17’(1995. 1.17을 잊지 말자)이다. 가와다 요시아키 센터장의 말에 따르면 이 센터를 설립한 목적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자연재해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데, 바로 그 해답이 ‘인간과 방재미래 센터’에 있습니다. 한신·아와지대지진 재해의 경험을 되새기고 그 교훈을 미래사회에 적용함으로써 재해문화의 형성, 지역방재능력의 향상, 방재정책 개발지원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가와다 센터장은 센터의 목표가 △재해 없는 사회실현 △생명의 소중함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세계와 미래에 알릴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계적인 방재연구의 거점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효고현소방학교 육상경기장 관중석 아래는 재해·재난장비와 구호품이 비축된 창고로 활용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통해 대지진 현장 체험

인간과방재미래센터는 넓게 트인 광장 가운데 통유리벽으로 된 5층 건물과 불투명한 벽으로 된 3층 건물 2개동으로 분리된 구조였다. 둘 다 전시실로서 우리는 5층 건물의 서관만 안내를 받고 둘러봤다.

먼저 서관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맞은편에 있는 지도학습실에 들어가 담당직원으로부터 강의를 잠깐 듣고 엘리베이터로 바로 4층에 올라가게 된다. 4층에서부터 차례로 한 층씩 내려오며 견학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지진체험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4면이 기하학적인 형태의 벽으로 돼 있으며 방문객이 가운데 정렬해 서면 불이 꺼지고 7분간 영화가 상영된다.

200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악몽의 그 날 새벽 미명 대지진이 시작되는 순간 고베시의 도심 주요 지역에 설치된 CCTV에 찍힌 영상을 고스란히 편집해 차례로 보여줬다. 평온한 주택가, 달리는 전철, 고가도로의 차량들, 견고해 보이는 고층빌딩이 갑자기 큰 충격으로 흔들리며 무너지고 충돌하며 추락하고 파괴돼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았다. 음향효과가 과장됐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목격한다고 해도 엄청난 무게의 건물이 무너지고 부딪칠 때는 그보다 더한 굉음이 날 것 같았다. 단순히 화면으로 보는데도 전율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현장을 그대로 전하는 생생한 다큐멘터리였다. 집에 있다가 지진을 경험하고 겨우 구조가 돼 살아난 한 여성이 화자가 되어 그 날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영상을 보여줬는데, 그 후 이재민 수용시설을 거쳐 정부가 마련한 가설가옥 생활을 하기도 했고, 완전히 복구된 도시에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위로와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소방학교 중심 광역 방재 네트워크

효고현소방학교, 비상시 방재거점 역할

효고현의 또 하나 자랑거리는 5만1400㎡의 광활한 캠퍼스를 가진 소방학교를 신축하고 2004년 4월 1일 이전한 것이다. 미키시 교외의 야트막한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효고현소방학교는 주변의 자연환경과도 잘 어울리는 방재공원과 함께 조성돼 있었다. 8월 21일 오후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무더운 날씨에 신입 소방공무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6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아야 정식 소방대원이 된다고 했다.

소방학교는 단순히 소방대원 교육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각종 체험과 훈련을 하고 견학을 할 수 있는 시설로도 개방하고 있었다. 체험학습관에는 △지진체험 △연피난체험 △소화기취급체험 △실내·실외소화전취급체험 △간이구출기구취급체험 등을 할 수 있고, 시설 견학코스로는 △소방관계차량견학 △비축창고견학 등이 마련돼 언제든지 예약을 하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아가리구치 유타카 교장이 교육동 강의실에서 슬라이드를 통해 전체 시설에 대해 설명한 후 주요 시설을 안내하기 위해 앞장을 섰다. 짙은 녹음과 함께 드넓은 잔디밭을 배경으로 2만 명 쯤 수용이 가능한 관중석을 가진 육상트랙이 있었고, 적당한 거리로 떨어진 곳에 별도로 천연잔디가 깔린 축구와 야구경기장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흙을 다져서 둥글게 높은 언덕을 만들어 돔 형태의 지붕을 덮은 실내 테니스장도 명품이었다.

우리는 대절해온 버스를 타고 육상경기장으로 먼저 갔다. 계단식으로 이뤄진 관중석 아래가 트랙을 따라 원형의 거대한 창고였다. 재난·재해가 발생할 경우 이재민들에게 공급할 비상식량과 각종 생필품, 장비가 비축된 창고로 5만7000식의 쌀죽, 7만1620장의 담요, 3800개의 청색 플라스틱 시트, 간이화장실 797짝, 텐트 397조, 발전기가 딸린 투광기 3조 등이 갖춰져 있었다. 창고 바깥에는 대형 트럭에 적재하기 좋도록 60~70m 정도로 콘크리트 바닥을 돌출시켜 놓았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은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새로 신축한 소방학교를 광역방재거점 네트워크로 만들어 구조자재 등의 비축과 지역 내 구호물자의 집적, 배송, 응급활동 요원의 집결, 출동을 위한 거점으로 정한 것이다. 또한 재해가 발생하면 소방, 경찰, 자위대 내 재해요원들이 집결, 서로 협력하는 활동거점이 되기도 한다.

▲ 낮은 구릉으로 이뤄진 미키시 교외에 자리잡은 효고현소방학교에는 다양한 스포츠 시설이 갖춰져 있다. 버번콩 모양 같다고 해서 버번빈 돔(Bourbon Bean Dome)으로도 불리는 실내 테니스장 주 출입구로, 흙벽을 둥그렇게 쌓은 벽에 돔 지붕을 얹은 형태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실내 테니스장이었다. 국제규격의 테니스장은 몇 년 전 데이비스대회를 개최한 장소로서 1500개의 관중석을 갖춘 메인코트와 4개의 간이코트를 갖추고 있었다. 돔 지붕은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기 때문에 운영비가 크게 절감되며 지역의 생활체육회에 위탁해 관리하는데, 주민들이 일정한 요금을 내고 사용한다고 했다. 지붕이나 전체 형태가 버번콩과 비슷해 ‘버번빈돔’(Bourbon Bean Dome)으로도 불려진다. 우리에게 생소한 버번콩은 땅콩과 비슷하다. 버번빈돔 역시 재해가 발생하면 대책본부 등의 운영시설로 활용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후쿠오카 등 남부지방 자원봉사자들이 관광버스로 중북부지역인 센다이로 가는 도중 하룻밤 여기서 쉬고 떠난 적도 있습니다. 6년 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는 효고현에서 모은 구호품을 여기서 보냈지요.”

아가리구치 교장의 말이다. 일본이 남북한보다 1.9배 더 크고 길게 이어진 섬나라여서 우리처럼 전국 어디서나 1일생활권이 가능하지 않은 탓에 혼슈 섬 남쪽 길목에 있는 효고현 소방학교는 방재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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