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은 주<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우리사회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해체되면서 가족의 형태 또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 이외에 동거가족,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공동체가족 등의 다양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변화 중 특히 이혼으로 인한 한부모가족의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조이혼율은 1992년 1.0%에서 2001년에는 2.8%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결혼율 대 이혼율은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할 정도로 높아졌고, 이혼범위도 전 연령대로 확대되었다. 현재 한국의 이혼 증가율이 서구의 이혼증가율보다 훨씬 빠른 점을 고려한다면, 복지수혜를 받게 될 이혼가족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판단되며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이혼여성과 그 자녀들이 빈곤의 주요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재혼한 이후에도 재혼가정의 부모와 자녀들이 직면하는 사회적 편견과 이에 따른 심리적 고통이 심각하다.

지난 11월 27일 여성부 주최로 열린 이번 제 4회 남녀평등방송상에서는 재혼가정의 새 아버지와 성이 다른 자녀가 겪게 되는 갈등과 고뇌를 담은 작품인 '난 왜 아빠랑 성이 달라? '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새 아빠를 친부로 알고 사는 영민이에게 우리사회는 결국 '난 왜 아빠랑 성이 달라'라는 질문을 하도록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됨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사회의 법과 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다행히도 최근 대선을 맞아 각 여성단체의 호주제 폐지 요구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여성부가 호주제 폐지를 비롯한 '2차 여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여성부는 민법상에 속한 호주제 폐지 후 국민의 호적제도를 담당할 가족부 신설계획을 논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부 관계자는 호주제 폐지 이후 도입될 호적제도는 개인의 소속을 확인하는 색인정도의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며 '현재가족별 편제'가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는 정책 심포지움에서 '호주지위승계의 장남중심적인 부분 등 가족법상 불합리한 규정의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면서 가족 내에서의 남녀평등문화 정착, 가족법상 불합리한 규정개선, 남녀차별적이며 가부장적인 요소의 개선, 관련부처를 주축으로 하는 적극적인 노력 등을 요구했다. 앞으로 이혼 및 재혼가족뿐만 아니라 비혼(非婚)의 독신여성 등 다양한 가족의 유형을 인정하고 아울러 변화하는 가족의 유형을 아우를 수 있는 가족복지기본법이나 종합적 가족복지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같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직 이렇다할 복지국가적 사회정책을 펴지 않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그나마 미약하게 시행되고 있는 사회보험·공적부조·사회복지서비스 부문의 프로그램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미혼·기혼 여성들을 불리한 여건에 처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많은 경우 가부장적 가족구조·관계를 전제로 하여 실제 긴요한 복지수요를 가진 여성 개인이나 여성이 부양·보호하는 다른 가족원을 배제·차별하는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만일 한국의 이러한 여성 배제·차별적 복지 기조가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는다면 본격적 복지국가의 확립이 반드시 여성지위의 충분한 향상을 약속할 것이라고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의 정치적 권리 신장, 모성의 사회 정책적 보호, 나아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지원은 서구 복지국가 확립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으며, 복지국가를 통해 여성은 다른 다양한 산업자본주의의 소외집단들과 마찬가지로 곤궁과 소외를 극복하고 사회 주류세력의 일부가 되기 위한 발판을 다져온 것이 사실이다. 불가피하게 도래할 복지국가 시대가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될지 개폐·혁파하는 것이 될지는 이를 추진해 나가는 세력의 의지와 노력에 달린 것이다.

<평택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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