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볼만한 연극 씨를 뿌려보겠다는 고집

지난 1일 오후 한국소리터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펼쳐졌다.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국가지정 문화재인 ‘평택농악’을 소재로한 ‘무동(舞童)’ 연극이 무대에 올려진 것.
7일 오후 포승읍 도곡리에 위치한 ‘극단 촌벽’(대표 정운봉)의 사무실에서 ‘무동’을 기획하고 직접 시나리오까지 쓴 정운봉(65) 대표를 만났다.
‘무동’을 초연한 지 한 주가 채 되지 않아 피로가 덕지덕지 쌓여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정 대표는 활기가 넘쳤다. 먼저 ‘무동’이 어떻게 무대에 올려졌는지 물었다.
“무동은 평택과 관련된 것을 무대에 올려보자고 시도한 첫 작품입니다. 7월부터 작업실이자 사무실로 쓰고 있는 이곳에서 혼자 몇 날 며칠을 밤 샘 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이라 무섭기도 해서 문을 꼭 잠그고 작업을 했지요”
생면부지인 평택에서 ‘평택농악’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 작업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역사적 인물은 대체적인 생애가 있고, 자료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업하기가 수월합니다. 그런데 농악은 그렇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인간문화재인 김용래 선생을 찾아가서 물어도 고생한 것만 말씀해주실 뿐 다른 것은 들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다그치듯 물어서 사모님을 어디서 만났는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겨우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밑거름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정 대표는 시나리오 쓸 때 어려움을 말하는 대목에서 담배를 물었다. 그나저나 평택에 연고가 없는 정 대표가 어떻게 평택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을까.
“경기도립극단에서 활동을 그만두고 2년 정도 남양주 등지에서 연극을 만들어 주면서 지낼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백두산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이용식 전 평택예총 회장을 만났지요. 평택에 연극협회가 없다는 말을 듣고 평택에 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사무실도 이용식 전 회장이 소개해준 것입니다. 임대료 없이 전기사용료만 내고 있지요.”
‘극단 촌벽’이 평택에 터를 잡은 지 2년 6개월이 지났다. 극단 대부분이 돈 없기로 소문이 나있다. 촌벽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고 넘는 박달재’와 ‘무동’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연극 지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1년에 2편 이상 공연을 2년 연속해야 합니다. 2년 반 전에 평택에 와서 조그만 연극을 5편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부를 설립했지요. 지부만 설립한다고 해서 어디서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경기문화재단에 상주단체 신청을 했습니다. 심사 결과 우리 극단이 소리터 상주단체로 선정되고 5000만 원을 지원받았습니다. ‘무동’도 이 돈으로 만든 것입니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 공연에 들어간 예산을 정산해 보니 아직 갚아야 할 돈이 300~400만 원 정도 남아있다고 말한다. 500만 원 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면 해결할 수 있는데 나이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마음은 어느새 내년 계획으로 앞서나갔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내년 1월에 북부문예회관에서 ‘무동’을 공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평택시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동’은 이번이 초연인 만큼 해를 거듭하면서 완성도를 높여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무동’을 3~4월에 열리는 경기도 연극제에 출품할 예정입니다. 여기서 1등을 하면 5월에 전국대회에 나가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무동’을 좀 더 다듬어서 전국대회까지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역 인물인 원균 장군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 계획도 있습니다.”
정 대표는 계획하고 있는 목표로 “평택에도 볼 만한 연극이 있다는 것을 알려내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올 수 있도록 평택에 연극의 씨를 뿌리는 것” 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의 목표는 평택에서도 볼만한 연극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앞으로 2년 정도가 더 필요합니다. 그때까지 제가 잘 버텨줄 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특히 제가 이 나이에 다른 곳에 가서 더 큰 성공을 바라기 보다는 평택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연극의 씨가 뿌려졌다고 하는 것을 듣는 것, 그것이 내 마지막 사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운봉 대표는 1972년 극단 ‘한강’의 단역 배우로 연극계에 발을 디딘 후 ‘에쿠우스’, ‘아가씨와 건달들’ 등에 출연해 명성을 쌓았다. 특히, 1992년 최종원·전무송 등과 함께 설립한 ‘극발전연구회’에서 무대에 올린 ‘북어대가리’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 작품상, 연출상을 수상했다. 이후 경기도립극단에서 연기자로 또 감독 대행으로 활동하였으며 1998년 ‘극단 촌벽’을 설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