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移設)위기에 내몰린 조광조·오달제 유허비(遺墟碑)의 향토사료적 가치를 생각한다.-4

임 석 동(중앙동주민자치위원, 73세)


1.조광조 오달제 유허비 소개
2.조광조 오달제와 송장(松莊)과의 관계
3.유허비의 향토사료적 고찰 및 가치 발현 방법(1)
4. 유허비의 가치발현을 위한 방법(2)


라. 동령마을 전통축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재구성.


돌령(東嶺)마을의 전성기는 송장부곡 시대였을 것이다. 근동에서는 관아가 있는 위세등등한 마을로 행세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활공동체가 유지되려면 공동체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세시풍속 혼례 장묘 제도 등 나름대로의 공동체문화를 키우기 마련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세대간 또는 지역간 이동으로 조금씩 변한다 하더라도 문화원류의 맥은 조금씩 희석되고 굴절되긴 하면서도 오랜 동안 그 생명을 질기게 부지하고있는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동령마을은 송장부곡시대를 정점으로 점차 쇠락해서 농경으로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적합한 수만큼의 주민들이 터를 지켜온 작은 마을이다. 1970 년대이후 동령마을에도 산업시대의 물결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북부(송탄)출장소 주위가 개발되면서 고층 아파트가 동령마을에 바짝 다가서 위협하듯 굽어보고 있다. 머지 않아 개발의 엔진소리가 마을을 뒤흔들어 놓을 것을 짐작하는 마을 사람들은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동령마을은 근동 마을과 비교했을 때 가장 작은 편이었지만 다른 마을에서는 전래되어 오던 동제 대동놀이 등의 전통세시풍속이 거의 사라졌는데 유독 이 마을에서는 음력 정초에 지내는 '우물제사'와 '줄다리기'가 뿌리의 깊이만큼 질긴 전통문화의 생명력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송탄시와 평택시가 통합되기 전 송탄시에서는 동령마을 전통 유풍인 줄다리기를 시 행사에 올려 홍보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운영의 미숙으로 시민 정서에 맞게 동참의욕을 유발시키기에는 미흡했었다. 지금 우리는 이 작은 문화의 불씨를 살려야할 시점에 와있다.

1) 동단위의 동령마을 축제- 어울리는 용어인지 망설여지지만-를 시단위의 축제로 격상시키고 과감하게 예산배정을 해야 한다.
2) 학술 교육 문화 예술 체육 기타 관련단체 대표와 지자체 대표로 협의체를 상설하고 행사 기획과 추진을 위임하여 창의적이고 참신한 대동화합의 한마당이 되게 해야 한다.
3) 개최기간을 충분히 잡아 시민 남녀노소 각계각층이 모두 참여하여 자기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 한마당이 되게 학술 문화 예술 체육 취미생활 전 분야를 망라해서 종합적이고 대중적이면서 격조 높은 내용과 형식으로 구상하고 기획 해야한다.

맺는 말

우리 평택에는 정부지정 문화재, 도지정문화재가 있고 지정받지 못한 문화재가 산재해있다.
지정을 받은 문화재는 각 씨족 문중에서 관리해온 사우(祠宇)와 유품·유물이 많은데 오늘까지 유지관리가 잘 된 것은 유교사상을 배경으로 한 씨족관념이 일제식민지하의 문화 말살정책의 질곡(桎梏) 속에서도 어렵게 지켜져 왔던 것이다.

최근에 민세(民世) 안 재홍(安在鴻)선생의 생가가 경기도 기념물(제135호)로 지정되는 등 소홀히 취급되기 쉬운 근세사의 문화유적이 법으로 보호를 받게된 것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있는 시민들에게는 반갑고 고무적인 일이었다.
평택과 연고를 가진 조광조 홍익한 오달제 안재홍 네 분을 생각하면 고매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고난의 삶을 살다 끝내 뜻을 펴 보지 못하고 간 불운의 인물이라는 공통점에 애석함과 통한(痛恨)을 느낀다.

그러나 이 분들은 우리나라 역사의 어려운 고비에서 역사적 혜안(慧眼)으로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었던 일을 감당하여 민족의 횃불이 되어 오히려 죽어서 더욱 빛을 내는 역사의 지표(指標)가 된 위대한 인물들이다.
올곧은 충정(衷情)을 의연하게 펼치며 천지간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은 평택인의 원류(源流)를 정암에서 홍학사 오학사를 거쳐 해방 정국에서 독보적 역할을 감당하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민세로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인맥(人脈)에서 찾아야 한다.
그 분들의 행적이나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분들과 연관되는 작은 유물 하나 유적 한 구석에서도 그 분들의 숨결을 느끼고 영감(靈感)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비록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한 향토문화유산이라도 아직 그 진가(眞價)를 찾지 못해서 옥이 돌로 대접받고 있을 수도 있다. 비석 하나라도 개발 우선 정책의 희생이 되어 도로나 아파트용지에 흡수되어 사라지거나 의미 없는 곳으로 옮겨지는 폭거(暴擧)가 용납 돼서는 안 된다.
서해안 일대는 전국 어디서나 선사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평택의 해안지대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개발 계획단계부터 문화유산의 보호 내지는 처리를 위해서 전문기관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초라하다거나, 현실적 이해득실이 안 맞는다고 기존의 문화유산을 업신여기면서 화려하고 규모가 크고 대중의 눈에 잘 띄는 문화재나 문화행사에만 관심을 보이는 문화행정은 뜻 있는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십상이다.
택지개발로 인한 정암과 오달제 유허비 이설문제의 귀추(歸趨)는 평택시 행정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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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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