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열린 2013 세계선수권대회서 3관왕

▲ 개명 후 출전한 세계볼링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류서연 선수(왼쪽 두 번째)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내 노하우”

평택시청 볼링팀 황선옥 선수라고 하면 볼링을 즐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웬만한 평택시민 모두 “아! 그 선수 알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류서연이라는 이름은 아마 대부분 낯설게 받아들일 것이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황선옥에서 류서연으로 개명 후에도 여전히 승승장구 중인 한국 여자볼링의 간판스타 류서연(26, 평택시청) 선수다.
먼저 류서연 선수가 왜 황선옥이라는 이름을 가졌었던 연유에 대해 설명해야 오해가 없을 것 같다. 그녀가 성씨를 바꾸게 된 것은 아버지의 원래 성씨인 류씨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원래 류씨였지만, 어렸을 적 후사를 이을 자식이 없는 황씨 집안으로 입양돼 성씨를 바꾸게 됐다. 하지만 입양된 가정에는 후사가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계속 황씨 성을 유지해 자연스레 그녀도 황선옥으로 태어났다.
이후 지난 3월 그녀의 아버지가 황씨와 류씨 가정의 형제들과 상의해 류 씨 성을 되찾으면서 개명하게 된 것이다.

류서연 선수는 황선옥일 때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볼링에서 4관왕을 달성해 한국대표팀 최다관왕을 차지했었고, 류서연으로 변신(?)한 후인 지난 8월 2013 볼링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개인전과 3인·5인조전 3관왕, 마스터즈 동메달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본지는 국내 볼링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아게임 총 5개 금메달, 세계선수권 금메달 5개, 전국체전 볼링 최초 4관왕 등 각종 기록을 경신하며 한국 볼링의 여제(女帝)로 우뚝 선 류서연 선수와 지난 17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처음 볼링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처음 볼링장에 갔을 때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시던 시니어대표 할머님이 내 체격을 보시곤 볼링을 하면 잘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셔서 시작하게 됐다.

프로에 입단하게 된 연유와 그간의 훈련 과정.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특별한 훈련 노하우가 있는지
당초 이화여대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볼링 특기생 선발이 중단됐다. 이후 한국체대에 진학하려 했으나, 가정형편으로 실업팀 입단을 선택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프로생활이 시작됐다.

훈련과정은 아무래도 고등학교 2학년부터 태릉선수촌 내에 있다 보니 다른 실업팀 선수들보다 연습량이 많았고 잘 치는 선수들과 연습을 자주 했던 것이 실력향상에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특별한 노하우는 다른 건 없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기회를 잡았던 게 컸던 것 같다.

현역 선수로서 활동하며 어려웠거나 힘들었던 기억은?
아무래도 어느 선수나 성적이 안 나왔을 때가 제일 힘들지만, 부상을 당해서 운동을 못하게 됐을 때가 제일 힘들었던 때였던 것 같다. 작년에 부상으로 인해서 좋지 않은 성적이 많이 나왔었기 때문에 그 당시 무척 힘들었다.

이번 대회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며 3관왕을 차지했는데, 대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상대선수나 어려웠던 선수는 누구?
아무래도 볼링이 미국에서 먼저 시작을 하다 보니 미국선수들이 제일 인상이 깊었다. 어려웠던 선수는 아무래도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 선수끼리 붙을 때가 제일 까다롭고 어려웠던 것 같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목표는?
앞으로 아직 올해는 동아시아선수권대회와 전국체전이 남아있으니 당장의 대회에 주력을 할 것이다. 그 앞으로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다시 준비해서 내년에 있을 인천 아시안게임을 출전하는 게 제일 큰 목표다.

마지막으로 평택시청 소속으로서 평택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평택시청으로 와서 이렇게 좋은 성적이 날 수 있었던 건 다 평택시청과 평택시민들의 응원과 뒷바라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비인기 종목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평택시청 볼링부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해준다면 그에 힘입어 더 좋은 성적 낼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아낌없는 성원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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