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덕 일<평택농민회 부회장>

이제 대통령선거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 왔다. 거리에는 '국민축제의 장으로 만들자'는 문구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아직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축제요, 잔치요, 난장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거에 대한 인식과 점차 나아지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변화 속에서 노동자들의 정당도 만들어졌고 체제 내에서 금기시되어 왔던 사상을 주장하는 당도 만들어지고 노인의 권익을 대변하겠다는 당도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농민들 일부에서는 농민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정치가이며 성리학자였던 삼봉 정도전(1342~1398) 선생은 한 농사꾼과 정치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 도(道)에 탄복하여 자신의 집에 모셔 가르침을 받고자 청하였더니 그 농사꾼이 답하기를 “나는 대대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밭을 갈아서 나라에 세금을 바치고 남은 것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릴 뿐이고 그 밖의 일은 내가 알 바가 아니외다. 그대는 이제 돌아가고 나를 어지럽게 하지 마시오” 라고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답전부(答田父)

600여 년이 지난 현재의 상황을 보더라도 그리 큰 변화가 없으리라 보여 지는 농촌에서의 평범한 촌부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 6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농사꾼의 처지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정말 밭을 갈아 정부에 세금을 내고 처, 자식을 먹여 살리며 공부시킬 수 있는 세상인가?
농사짓는 사람이 살기 어렵고 힘들다는 근본적인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 버렸고 남아 있는 사람은 더욱 더 가속화되는 농업천시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 세월 이러한 삶의 어려움은 정치권력의 변화기에 자연스럽게 분출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들은 60년대, 70년대 선거 시기에 막걸리, 고무신짝으로 표현되는 작은 유혹 앞에 힘을 잃었고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들의 수는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그 어떤 예비 집권자들도 관심을 두지 않는 집단으로 전락해 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현실은 600년 전 한 농사꾼의 말처럼 땅에 의지해 큰 욕심 없이 이치대로 살면은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란 순박한 믿음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다. 최소한의 이치와 순리마저 거스르려는 오늘날의 정치, 사회적 세태 속에서 ‘농민들이 권력 앞에 주인으로 스스로 나설 것’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봄, 평택지역의 이장들과 농촌지도자들이 나서서 농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했고 이어서 11월 13일 십만 여 명의 농민들이 여의도에 올라가 대통령후보들에게 농민들의 요구를 강력하게 전달하였다.

해방 이후 10만여 명이 넘는 농민이 한 곳에 모이기는 처음이었다. 이는 바로 국가가 그리고 정치인이 농민을 논, 밭에만 있게 만들지 못한 결과이다.

20여일 앞둔 대통령선거가 다른 시기와 다르게 농민들에게 다가 오고 있다. 열심히 농사만 짓는 것이 농사꾼 본연의 역할이지만 이제 한 가지 더 '농민들의 정치, 사회, 경제적 이해와 요구의 실현' 또한 농민 스스로의 몫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들이 갖고 있는 역할과 기능이 단순히 농민의 것이 아니기에 또 다른 집단 이기주의가 아닌 시회의 순기능과 경제적 이익의 재분배를 실현시켜 궁극적으로 전체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12월 19일. 16대 대통령 선거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우리 모두의 잔치가 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평택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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