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급 인사 솔선 화장문화 뿌리내려

중국으로 산업시찰을 다녀온 산업건설위원회 소속 이민관(포승면)의원이 4박 5일간 다녔던 산업시찰 지역을 일정별로 기록했다. 이 의원의 산업시찰기간동안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연수기를 본사로 기고해 2회로 나누어 싣는다.
이민관 시의원 중국산업 기행-2
이튼날 아침 중국 공산당 총 공회를 방문했다.
북경시내 직공호텔 전반을 가지고 총 운영하는 인민공화국 총공회 즉, 인민노동조합이다. 총공회 회장과 관계관 그리고 실무간사를 모시고 직접 1시간동안 간담회를 가졌다.
세계1억 3000여명의 직공이 있으며 중국에 150만 직공이 운영하고 운영은 각회원에 회비와 월급에 0.5%의 자비와 6000여개의 기업으로 구성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한국노총도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번에 대표자가 다녀갔다고 한다. 그들의 발표는 전국 각 성 또는 현별로 지역대표들이 있고 합법적으로 산업인을 보호하고 대변하며 노동자를 돕고 직업 알선 및 생활보장을 하는데 주력을 하고 있으며 외국인 기업도 많이 참여하고 정부와도 마찰이 없어 잘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마지막날은 천안문 광장과 이화원을 방문키로 했다. 천안문 광장은 북경 최 중앙에 이화원과 함께 자리잡고 있으며 북경의 도시 계획은 이를 중심으로 바둑판모양 세네겹으로 만들어졌는데 안으로부터 1로 2로 3로 4로등 그리고 1로에는 중앙로 동로, 서로, 남로, 북로 등 같은 동로에도 동중로, 동남로, 동북로 이렇게 외국인도 찾기 쉽게 되어 있으며 중앙 제 1로 안에는 천안문을 비롯한 이화원과 그 외에 각종 문화재로 지정되어 옛 고찰들에 건물과 거리를 보존하고 잇으며 2로를 벗어나 호텔을 비롯한 상가 반점등 재개발을 해서 선진국 못지 않은 시가지로 변역화 하고 있다.
천안문 광장을 100만명의 군사가 들어가 집회 및 행사를 할 수 있게 도시가운데 가장 큰 광장이며 입구에는 큰건물을 지어 모택동의 시신을 안치한 건물과 북문 이화원을 통하는 정문앞 벽에는 모택동 대형 초상화가 붙여있다.
5개의 한백옥석으로 된 다리가 가로 놓여 있으며 다리 난간에는 아름답고 정교한 도안과 무늬가 조각 되어있다. 1949년 10월 1일 모택동 주석은 천안문 성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선포하였다 한다.
천안문을 지나 이화원으로 들어갔다. 이화원은 중국의 황제들이 각종 집무를 보던 자리이다. 대집회를 비롯한 과거시험 그리고 크고 작은 국정에 대한 집회 및 연회장 우리로 보면 옛궁궐이라고 보면 되겠지만 엄청난 시가지만 하며 kr종 정문이 세워져서 출입에 직급별 통제를 했다한다. 이화원의 원 명칭은 청의원이며 1764년에 건축되었는데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린 것을 1888년 자희 태후가 재건하여 10년만에 완공하여 이름을 이화원으로 고쳤다. 중국의 원림 조성기 예를 충분하게 계승 발양함으로서 원림 예술에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옛중국에 궁궐의 역사 문화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장례문화 시찰한 팔보산 화장장과 공원 묘지를 소개한다.
북경 제4로 서북로 쯤에 자리잡은 팔보산을 끼고 있는 중턱에 모지공원과 함께 입구에 자리잡은 화장터이다. 그곳을 가는데도 에피소드가 많다. 우선 관광기사와 안내가이드가 가지않으려고하기 때문이다. 기사와 가이드와 관광안내 10여년동안 화장장 가자는 관광객은 처음 보았으며 한번도 가본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곳을 가면 몇가지 비방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정차가 까다롭다는 것이다. 화장장 입구에 들어서니 미리 연락한 화장장 관리인 한명이 나와서 안내를 한다. 마침 중국에 젊은 연예인 한명이 암으로 사망하여 화장장에서 영결식을 하는 날이라서 조문객과 가족 친지들이 많이와서 그 절차를 보게 되었다.
화장장 건물은 역시 웅장하며 우리나라 예식장 꾸미듯 호화롭고 넓게 치장되여 있으며 접수실에 방명록에 기재를 하고 나니 망인에 대한 생전에 생활기록을 한 유인물과 CD한장과 국화꽃 한송이씩을 준다.
실내에 들어가보니 앞쪽에 누구누구의 연결식이란 카드가 붙여있고 그 아랫단상과 함께 분얗소가 있으며 옆으로 가족과 유족들이 있으며 실내 중앙에는 호화로운 단상에 시신을 모시는 제단이 있고 그 제단을 둘러 조문객들이 서있는 것이다. 그 예가 끝나면 곧바로 화장장으로 시신이 들어가 화장을 하고 그 이후의 절차는 여러단계이다.
뼈를 빠아서 강과 산에 뿌리는 방법과 뼈를 혼백함에 넣어 어느 공원묘지 자리를 분양받아 그곳에 뭍고 비 또는 제단을 만드는 방법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 모두 관리자에 안내를 받아 돌라보고 나왔다. 이곳 화장장은 외국인을 비롯한 국가 유공자 과학자 문화예술 등 지도자급의 화장장이며 국내 각처에 이와 같은 수많은 화장장과 공원묘지가 있으며 등급도 여러 등급이 있다한다.
영내출입은 장례행사 관계인 외에는 출입을 금하며 관광객은 볼 수도 없고 미신을 많이 맏어 이곳의 출입자는 죽은 혼으로부터 어떤 액운이 온다하여 국빈들이 방문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중국에 장례문화는 일찍이 어느 특정한 국가의 대표급에 의해 자기는 물론 자기 조상묘까지 화장을 하고 화장문화를 장려했기 때문에 온 국민이 이를 따르고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장례식장에 10일에서 무려 한 달까지도 안치했다가 상여를 메고 조객을 수 없이 길게 따라 가야만이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고 자손이 잘살게 된다고 하는 풍습을 화장문화로 개선한 것이다.
참으로 좋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며 우리나라도 어느 특정 지도자로부터 호화 묘지를 파헤치고 과감하게 화장 문화에 앞장서서 시행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상해항주 그리고 북경에 4박 5일간에 일정을 마치고 26일 귀국했다.
중국을 자주가는 편이지만 갈때마다 새로움을 느끼며 해마다 달라지는 시가지와 물가인상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이번 시찰에도 많은 중국에 발전하는 여러문화를 배우고 느낀 바도 많다.
출퇴근길에 교통문화를 보면 수많은 자전거들이 교차로 지점을 통과하는 것을 보면 무질서 속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고 불안속에서도 안전함을 볼 수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있으며 물론 1당 체제의 정치이기 때문에 이의나 불만이 없이 주택 재건축이나 도시개발도 발빠르게 추진되어가고 있다.
정 인민이 절약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우리 과거 20년전 새마을 운동과 흡사하기도 했으며 그런가하면 사회주의 사상은 다같이 공동으로 작업해서 다같이 공동분배하여 먹고 산다하지만 지금은 엄청난 빈부차이가 잇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시골에는 아주 어려운 인민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에도 비교도 않될 갑부도 많다는 것이다.
이제 경제국에 정책을 수용하여 여러 방면으로 개인 경제체제로 분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삶에 급급했기 때문에 자연환경이나 위생 그리고 건강에는 관심이 적은 것 같다.
우리는 이웃나라에 그 민족성과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옛조상들부터 비슷한 문화생활이기 때문에 우리는 비교할 필요가 있고 중국에 대인구가 생산하여 헐값에 들어오는 농산물을 비롯한 생활필수 가전제품 등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본의원의 산업시찰에 대한보고 느낀 바를 마치겠다.
평택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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