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안성 흥사단 최봉로 고문 별세

 이북 출신, 단신으로 월남해 숱한 시련 겪어
 ‘무실역행(務實力行)·충의용감(忠義勇敢)’ 바탕 평생 민주주의에 헌신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단신으로 월남하다

 1933년 평안남도 용강군 삼화면 서정리(현 남포특급시)출신인 고(故) 최봉노 고문은 기독교 집안의 부친 최문헌 씨와 모친 임창현 씨의 육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45년 해방 이후 나라를 휩쓴 전쟁통에서 극심한 좌우대립에 휘말려 집안이 반동분자로 몰려 부친과 큰형이 투옥되자(끝내 생사를 확인하지 못함) 어머님의 권유로 단신으로 월남,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한겨울 돛단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했다.

1951년 부산으로 남하해 부두 노동자,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 생활을 하며 지내던 고인은 9·28 서울 수복 후에 서울 한남동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다가 환등기를 처음 접하게 되어 신흥 과학사라는 상호로 시청각 교재상을 차렸다.

그러나 얼마 못가 칼라 필름 수입업체 국제양행이 부도가 나는 통에 덩달아 부도가나 피신을 하다 당시 을지로 입구 내무부 청사 앞에 있는 훈목다방에서 일하게 되고, 훗날 부인이 되는 김온규 여사를 만나게 된다.

이후 김온규 여사의 고모부의 권유를 받아 평택에 정착해 팽성읍 남산리 예비군훈련장 인근에 위치했던 10만 평 규모의 서운농장을 운영함으로써 평택과 첫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6년간 농장을 운영하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평택을 떠나게 됐고, 1980년에 이르러서 유병관 씨와의 인연을 통해 동양예식장 관리인을 맡게 되며 다시 평택에 안주하게 되고,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평택에서 겪게 된다. 당시 1980년은 광주 항쟁이 일어난 해였고, 이후 80년대를 관통하며 전국의 대학가는 요동쳤다. 물론 평택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택 민주화 운동의 대부가 되다

 1987년 5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결성되자, 평택에서도 현 경기도의회 의원인 전진규, 유성렬 씨 등이 중심이 돼 민주화 운동을 펼쳤고 고인은 앞장서진 않았지만 뒤에서 조용히 도움을 줬다.

신상훈 등 중앙대 학생들이 운영하던 청솔야학이 갈 곳이 없어졌을 때 학교 터를 잡아주며,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신체 일부를 훼손해 병원에 입원한 학생들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병원장을 설득한 것도 고인이었다.

고인이 학생들을 뒤에서 보살피며 웃지 못할 일화가 있었는데, 당시 수배 중이던 공주사대 학생을 도와준 일로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와 “당신이 빨갱이 두목이라며, 내 아들 찾아내라”고 성화를 부리다 이 후 수배령이 풀린 뒤 자초지종을 설명 듣고선 사과의 의미로 식사대접을 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 일 이후 고인은 공주사대를 다니던 평택 학생들 사이에서 ‘대부’로 불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무렵 이종규 평택흥사단 현 사무처장을 비롯한 일행이 고인을 찾아와 흥사단 평택지부를 만드는 데 함께하자고 찾아왔고 임종 전까지 흥사단 고문으로써 연을 이어왔었다.

고인은 영면에 들기 전까지도 흥사단 고문으로서 고령 중에 왕성한 독서로 함석헌, 김용기, 장준하, 김용옥 등 철학들과 책을 통해 꾸준히 교류했고, 젊은이들과의 식사와 영화보기를 즐겨 해 왔다.

고(故) 최봉로 고문은 흥사단의 표어인 ‘무실역행(務實力行) 충의용감(忠義勇敢)’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정신을 밝혔으며, 앞장서 목소리를 낸 적은 없지만 암울한 7·80년대 독재에 맞서 온 몸으로 부딪쳤던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준 진정한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다.

 ■ 추모시

당신 가신 길 꽃길 인가요

당신, 입춘지나
청명 곡우 안성천 자락에
민들레 피면 함께 꽃구경
하실 걸 잊으셨나요
 
늘 세상에 꽃이 되어라
세상에 꽃을 피우려 말고
네가 꽃이거라
꽃길이 되거라
가슴 속에 품고 품어
제 가슴 가시 박힌 줄 모르고
남의 가슴만 어루만지다
이렇게 홀연 가신단 말입니까

당신, 이 세상
노동해방 농민해방
당신의 입으로 내게 오고
상처난 꽃들에
웃음으로 나누신 모습
따듯하게 손을 넘었으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느낄수록 어두웠던 후배,
할 말이 없어 아니
말하기 두려워
이 밤, 당신 가는 길
꽃을 뿌려 봅니다
 
당신, 조금
기다릴 줄도 알자
기다리다가 봄꽃 활짝 열리는 날
화전 부쳐 막걸리 한잔 하자 했던
그 약속 잊으셨나요
아니 당신은 기억했지요
못난 후밴 핑계를 찻느라
자판을 두드려 후회합니다.
엎드려 후회합니다

세상에
꽃 아닌게 없지 않겠나
꽃 중에도 비바람에 시달려
찢어진 꽃
아 쌍차, 가족들 , 아이들
떨어져간 노동자들
이 땅의 꽃들이 격는 아픔이
내 폐부를 찔러
목소리는 나지 않고
미소만 띄운다네
 
긴 겨울의 끝
한숨 잘 잔 듯 하품하며
다시 부스스 일어서길 기다리며
당신 앞에 무릎 꿇고
뉘우쳐 봅니다
당신 가는 길 꽃길인가요
당신 가신 세상 꽃세상인가요
한번 만나 말해주세요
꿈속에도 웃어주세요

2013년 2월 15일  민예총평택지부장 한 도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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