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시민아카데미 방유미 팀장의 호주 혁신도시 탐방기

100년 된 증기기관차 한 대가
대도시에 생명을 불어 넣다

호주 멜버른 퍼핑빌리 사례
폐쇄된 협괘열차 노선 주민 수 천명 노력으로 복구
관광객 이전보다 52%증가 연간 3000억 수입
650명 직원 중 600여명이 무보수 자원봉사자

▲ 100년된 증기기관차를, 그것도 창 밖으로 다리를 내놓고 탈 수 있기에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인기만점이다. 실제로 석탄을 때서 운행하기 때문에 석탄가루가 얼굴에 묻기도 하고, 증기기관에서 내뿜는 엄청난 소리에 놀라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이노베이션 중…평택부터 이노베이션하자

한때 ‘녹색성장’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졌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녹색’과 ‘성장’이 나란히 있는 불편한 관계를 견디지 못하겠는지, 이제는 ‘혁신성장’이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혁신’이 유행 중이다. 그러고보니 혁신을 내세우지 않은 분야가 없다. 정치, 경제, 기술, 교육, 심지어 TV 속 광고에서도 ‘이노베이션’ 일색이다.

혁신(革新)의 혁(革)은 가죽인 ‘피(皮)’를 무두질하여 새롭게 만든 가죽(革)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가죽신이 오래되면 이를 뒤집어 먼지를 털고 다듬어서 새 것처럼 만들어서 신었다고 한다. 가죽을 뜻하던 글자 혁(革)이 개혁, 혁명, 변혁, 혁신 등의 단어에 쓰이게 된 이유다. 그렇다면 혁신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개혁을 원하며, 평택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특임장관실 주최로 국내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2030세대의 젊은 활동가들이 지난 9월 19일부터 27일까지 선진사회를 탐방하고 왔다. 이번 해외연수의 주제인 사회 및 공공분야의 혁신은 대체로 영국, 뉴질랜드와 호주 등 영연방국가들과 북유럽국가들에서 발견된다. 특히, 뉴질랜드와 호주는 이른 시기에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건설하였으나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해 사회 및 공공혁신이 용이했기에 연수 장소로 선정됐다. 연수팀은 7박 9일의 일정 동안 국내 1개 기관(인천공항),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4군데, 호주의 멜버른 5군데, 시드니 4군데 등 총 14개 기관을 답사했다. 이번 답사를 함께 했던 평택시민아카데미 운영팀장인 방유미씨가 이 중에서 3개 지역의 사례를 소개하는 글을 기고해 왔다. <편집자주>

▲ 기관사가 예전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고 있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 모두가 즐거운 혁신, 세상을 빛내는 혁신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주(州)의 주도(州都)인 멜버른. 멜버른을 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킨 가장 큰 힘은 바로 멜버른 남쪽 원시림 밀집지역인 단데농(Dandenong)에 위치한 ‘퍼핑빌리(puffing billy) 증기기관차’다.

멜버른 시민들의 자랑인 퍼핑빌리는 공룡이 내뿜는 입김을 표현한 의성어 ‘퍼핑(puffing)’과 호주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애칭인 ‘빌리(billy)’가 합쳐진 합성어다. 목재 수송의 역할이 줄어들며 사라질 뻔한 퍼핑빌리는 시민들의 보존 노력 덕택에 관광열차로 변신해 지금껏 석탄으로 땐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말 그대로 ‘칙칙폭폭’ 달리고 있다.

지금은 관광철도로 변화된 퍼핑빌리는 원래 762m의 저비용 협궤노선(표준궤간보다 좁은 1435mm 이하의 궤간) 4개 중 하나다. 1900년대 초 오지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빅토리아주에서 건설했다. 현재 관광기차가 운행되는 벨그레이브와 젬브루크의 이 구간은 1900년 12월 18일에 개통돼 운영되다 1953년 빅토리아주 정부가 운영손실을 이유로 노선을 폐쇄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1955년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해 결국 운행이 중단되게 됐다. 그러나 퍼핑빌리는 주민들의 사랑과 열정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됐다.

철로를 살리자는 지역여론이 일면서 퍼핑빌리보존협의회가 발족, 호주 각지에서 퍼핑빌리 복원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퍼핑빌리보존협의회가 주축이 된 수 천여 명의 민간봉사대는 밤낮으로 산사태 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고, 마침내 1998년 10월에 젬브루크까지 전 노선을 개통하게 됐다. 퍼핑빌리는 결국 지역을 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땀과 노력이 만들어낸 장엄한 결과물인 셈이다.

2008년 4월부터 1년 동안 멜버른과 빅토리아주를 찾은 해외 관광객만 모두 6만 여 명. 1년 전보다 무려 52%나 증가했다. 멜버른은 순식간에 연간 3000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폐철도 위에 놓인 기차 1대가 대도시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수입이 늘면서 자연히 도시인구도 늘고 있다.

운영주체인 퍼핑빌리 레일웨이(Puffing Billy Railway)에 따르면 연평균 수입은 286만 달러 규모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8억6000만 원 정도다. 관광 기차 운영만으로 벌어들이는 단일 수입으로는 상당한 규모다. 여기에다 관광객들이 멜버른 일대에서 체류하면서 이용하는 숙박업소나 음식점 등에서 벌어들이는 부가수익까지 포함한다면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수치다.

그러나 운영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퍼핑빌리에 종사하는 인원이 650명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수입 28억6000만원은 인건비는 고사하고 감가상각비조차 되지 않을 적은 금액이다.

그렇다면 과연 퍼핑빌리를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힘 역시 지역주민들에게서 나온다. 퍼핑빌리에서는 운전이나 정비 등 기술을 요하는 핵심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든 일을 도맡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한 달에 1∼2회씩 이곳에 나와 역사 청소, 기념품판매, 안내, 간단한 철로보수 등 다양한 일을 돕고 있다. 물론, 보수는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 다만 1년에 한 차례 가족들과 함께 퍼핑빌리 열차를 무료로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주민들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다시 생명을 얻은 퍼핑빌리는 오늘도 수 십여 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을 살려준 멜버른 시민들에게 보답하고 있다.

쓰레기 매립장이 
친환경 공동체 생태공원으로 탈바꿈

호주 세레스 생태공원
지역 축제 중심지며 생태환경 유기농 교육의 중심 역할
직원 150명·자원봉사자 150명…지역 사랑이 핵심 동력

▲ “현재는 후원을 받으며 운영하고 있지만, 매장 수가 6개가 되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점차 정부 지원없이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고자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홈리스 청소년들만을 포커스로 삼고 있지만, 규모가 커지면 사회적 약자(소년원 출소생, 젊은 장애인 등) 계층까지 확대할 생각이다.”

■ 쓰레기매립장에서 파티를?!
매주 수요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이웃들이 모여 벼룩시장을 열고, 그 시간에 맞춰 자전거 리메이킹 수업, 유기농 식물 판매 및 단체간 워크숍, 그 지역의 유기농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 노천카페가 활성화된다. 그야말로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마을의 ‘에코파티’인 셈이다.

도심 한 가운데서 펼쳐지는 이 에코파티가 열리는 곳은 바로 친환경공동체공원 세레스(CERES;Center for Environment and Research in Environmental Strategies)이다.

호주 세레스(CERES) 생태공원은 1982년 멜버른 브런즈윅(Brunswick) 의회가 10에이커(약 12만평)의 땅을 10년간 지역사회에 임대해 주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일대는 공장 지역이었고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이 지역에 살고 있던 공장근로자들은 하루 아침에 실직자로 전락했다. 지역민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친환경적 여건 조성을 고민하던 정부는 이 지역에서 환경 및 사회정의 문제를 대해 고민하던 사람들에게 쓰레기 하치장을 임대해 주고 공원을 조성토록 했다. 그 결과 세레스 공원은 지금 이 지역사회의 환경 교육과 유기농 교육, 지역 축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생태환경 및 유기농 교육은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을 추구하는 세레스 비전의 핵심이다.

세레스의 정규 근무자는 150명, 자원봉사자가 150명이다. 세레스 안의 유기농 카페와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해 얻는 수익으로 운영비를 마련한다. 주(州) 정부 지원율은 매년 다르지만 전체 운영비의 5% 내외로 비중이 크지 않다. 퍼핑빌리 증기기관차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자원봉사의 비중이 가장 크다. 구청직원, 교사, 은행원 등 다양한 직업군별로, 또는 아동, 청소년, 주부, 장애인, 노약자 등 다양한 계층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자원봉사자에게 지급되는 비용은 단 1원도 없다. 세레스 안의 카페에서 식사를 할 경우 일부 할인해주는 정도의 혜택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활동을 자청하는 이유는 지역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30여 년 전, 쓰레기매립장이었던 이곳은 지역사회커뮤니티가 꾸려지면서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활기가 넘치는 ‘에코 오아시스’가 되었다.

■ 청소년들을 위한 착한 카페 STREAT
스트리트(STREAT)는 호주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집이 없거나 불우한 환경에 있는 홈리스(Homeless) 청소년들에게 장기간 취업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 위한 곳이다. 스트리트의 창시자이자 현 책임자인 레베카 스코트는 베트남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카페(KOTO)를 보고 호주에도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2009년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리 선진사회라 할지라도 기초생활보장이 안 되는 취약계층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호주에도 가정불화, 가정폭력, 알콜중독, 마약, 도박중독, 정신적인 문제 등 때문에 홈리스(노숙인)인 사람들이 10만 명이 넘는다. 정부는 집이 없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사회문제 발생의 원인을 치료하고 사회문제 때문에 생겨난 홈리스 청소년들에 대한 대책마련은 스트리트에서 맡는다.

다른 시민사회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소개받은 홈리스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6개월동안 교육, 상담, 직업훈련 등을 제공받는다. 교육과정은 무료로 진행되며, 카페를 운영해 얻어지는 수익금과 후원자들이 보내는 기부금을 전액 재투자하고 있다. 특히, 가입상담과 치료상담을 위해 전문 정신분석학자에게 지급되는 비용이 크게 발생하는 만큼, 운영하는 카페의 분점을 늘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곳은 개인의 작은 생각의 씨앗(아이디어) 하나가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큰 나무를 이루고 인재 양성이라는 열매를 맺은 사례로 전 세계에 소개되고 있다.

▲ 미군부대 보급용 선로로 사용되었던 송탄 군용철도. 예전엔 철로 양 옆 가까운 거리에 주택들이 있었다. 사진은 국제교류센터 앞으로 지금은 보도블럭으로 정비되었다.

■ 이제는 평택을 혁신할 차례이다
평택은 역사 문화 자산 풍부… 도시 곳곳에 혁신 사례 만들 수 있어

사회혁신과 공공 혁신은 정부와 시민단체가 함께 추진해야 성공
반환받는 알파탄약고는 도시 정체성 상징적 공간으로 가치 충분 
‘송탄군용철도’도 퍼핑빌리지처럼 관광자원화 창의적 검토 필요해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은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들이 사회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자발적인 노력에 의하여 혁신적이고 효과적인 방법들을 고안, 해결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사회혁신이 발생하는 영역은 매우 다양하다.

사회적 기업, 공공정책, 디자인, 도시개발, 사회운동, 지역사회 개발에서 활발히 일어난다. 그렇기에 사회혁신은 정부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이루어내기가 어렵고 시민사회가 계기를 만들어주거나, 정부와 같이 추진해나갈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사회혁신의 개념을 수용하고 있고, 일부 지방정부에도 추진기구가 존재하며 특히,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발히 연구 · 추진되고 있다. 사회혁신은 특정 도시의 몇몇 사례가 아닌 세계적으로 정책과 제도, 기구와 기금, 연구와 네트워크로 구체화되고 있다.

한편, 공공혁신(Publc Innovation)은 거버넌스적 사고와 방법으로 추진된다. 거버넌스가 관심을 갖는 정책이 공공혁신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서비스 수요를 수행토록 목표를 재설계하고 기구를 재조정하고, 운영방법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공공혁신이다. 그래서 사회구성원 간 통합적인 연대나 합의의 메커니즘 작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원 서비스 경쟁이라든지 지방정부간의 로컬거버넌스 · 국제기구간 글로벌 거버넌스 협력 등이 우리나라 공공혁신의 사례에 속한다.

국내에도 추억의 상징인 폐철로를 활용해 관광자원화하는 사례가 있다. 전북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페이퍼코리아선)이 대표적인 예이다. 군산역과 조촌동 사이에 연결된 기찻길로 1944년에 개통되어 당시 신문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사(社)의 제품과 원료를 군산역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제지회사의 이름을 인용해 불린다. 철로변에 바짝 들어선 살림집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열차가 통과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TV에 소개되어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였다. 2008년부터 열차 운행은 중단되었고 철길은 남아서 관광객을 맞는다. 강원도 문경과 정선의 ‘레일바이크’도 폐철로를 활용했으며, 한강변 폐철로 자전거길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평택에도 ‘송탄 군용철도’가 시내 한복판을 지난다. 그리고 고덕 안재홍 생가 옆에는 ‘알파탄약고’가 공간재사용의 손길을 기다린다. 먼저 송탄 군용철도는 1970년대에 경부선에서 가지를 치고 나와 미군부대 보급용 선로로 사용되었다. 신장육교 아래를 지나 미군부대 후문으로 부대 안까지 철로가 깔려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열차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

멜버른의 트램(Tram)처럼 관광형 노면전차로 활용하거나 아직도 시내를 관통하는 철로의 역사성과 특별함에 대해 마을 주민들이 타 지역에 적극 홍보하는 이벤트를 펼친다면 송탄의 폐철로도 얼마든지 혁신사례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단, 향수만을 추구하는 단순한 개념에서 창의적 활용이라는 적극적인 관점으로의 전환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 평택 이전계획에 따라 고덕국제신도시가 들어서는데 이 곳 중앙에 알파탄약고가 있다. 팽성읍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K-6)와 신장동 오산기지(K-55) 사이에 있는 알파탄약고는 미군들의 탄약이나 포탄을 저장해두었던 곳이다. 293,000㎡로 축구장 면적의 30배인 이곳은 현재 미 공군이 사용하고 있지만 미군기지 이전과 함께 국방부로 반환된다. 평택시와 시민단체들이 노력했지만 탄약고 자리를 전체보전 즉, 원형보전하지 못하고 일부만이 보전 확정된 상태다. 어쨌든 이곳 역시 도시정체성의 상징적 공간이며 근현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곳이다.

평택은 우리나라 중심도시로서 기능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 도시이다. 위로 수도 서울과 가깝고 아래로 영남 · 호남지방과 자유롭게 이어진다. 서쪽으로 평택항이 있어 세계와 연결된다. 평택농악의 발생지이며 안재홍, 원심창, 원균 등 역사인물들의 고향이라는 역사 · 문화적 자산도 갖추고 있다. 삼성, LG 등 대기업 입주로 경제 역량도 갖추었다. 평택 시민 스스로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도시 곳곳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혁신사례로 국내 · 외에 소개될 수 있을 것이다.

방유미

평택시민아카데미 운영팀장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