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희 경 머니투데이 부국장



‘가치를 알면 가격에 휘둘리지 않는다.’ 주식시장의 단기 흐름만 뒤쫓다 랠리에 올라타지 못하거나 반대로 팔 시점을 놓치는 투자자들이 곱씹어볼 만한 경구다. 하지만 어느 국가 증시에서든 쏠림현상이 자주 나타난 데서 보듯 일반투자자들이 가격의 단기적인 변동에서 한발 물러서있기란 쉽지 않다.

이를 두고 인간의 뇌가 최근 정보에 더 가중치를 두도록 진화해온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설문조사도 적지 않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에 소개된 '디시전리서치'의 서베이에 따르면 투자자들의 기대수익률은 증시가 상승한 뒤 높아지고, 하락하면 내려가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조사 직전 한달 간의 증시 움직임이 1년 수익률 전망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투자자가 양떼처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찰스 맨스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교수가 미국 아마추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근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전체의 40%를 웃돈 가운데 흐름이 반전될 것으로 예상하거나 증시가 불규칙적이어서 예측하기 어렵다고 답한 이들이 각각 33%, 25%에 달했다.

전자가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증시의 예측불가능성을 인정하는 이들도 장기투자의 결실을 놓칠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한다. 곧 가격에 휘둘리는 실수를 피하려면 무엇보다 투자대상의 가치를 찬찬히 따져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이성적인’의사결정은 투자의 세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품을 구매하고 직업을 선택하거나 직장을 옮길 때 심지어 평생의 반려자를 정할 때도 나타난다. 파격적인 가격할인에 현혹돼 충동적인 구매를 하고, 당장의 인기나 높은 몸값에 이끌려 자신에 맞지 않는 직장을 택했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때로 가혹한 결과를 안겨주는 이런 결정을 피하려면 역시 가치탐구에서 출발하는 게 상책일 것이다.

사실 행복이나 슬픔, 생명이나 죽음의 가격까지 분석하는 보고서가 나오지만 가격이 가치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단적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는 1인당 국민소득과 비례하지 않는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보다 행복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지만 어느 단계에선 불만족도가 더 클 수 있다. 1만원이 주는 행복감이 소득계층별로 달라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에두아르도 포터가 쓴 '모든 것의 가격'에 따르면 미국인의 행복도는 경제발전의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인들은 유럽사람들보다 잘 살지만 행복감이 엇비슷했는데, 그 이유의 하나로 소득 상위 20%의 부가 상대적으로 크게 늘어나 소득불균형이 심화됐다는 점이 꼽혔다.

물질적인 부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여가시간이나 깨끗한 환경 등이 행복감을 높여준다는 점이 또다른 이유다. 미국은 물질적 풍요와 생산성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쪽을 택한 반면 유럽은 생산성 향상을 토대로 여가와 집안일을 돌보는 시간을 늘렸다고 한다.

이는 행복은 돈이 아닌 다른 형태의 통화, 곧 사랑이나 시간 등으로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행복지수가 소득수준이 훨씬 낮은 국가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되는 것도 그간 여가나 환경 등을 희생해가며 돈을 중심으로 경제적인 번영을 추구해온 결과라고 풀이할 수 있다.

가격으로 정당화되지 않는 가치를 천착하는 노력은 성급한 결정이 야기하는 실패 위험을 줄이는 길이다.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시장 흐름을 정확히 파악했더라도 포지션을 갖지 않으면 부를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치분석을 한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

* 이 칼럼은 <평택시민신문>과 기사 제휴를 맺은 <머니투데이> 3월23일자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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