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면 머니투데이더벨 대표


“예술가는 상아탑 속에서 살며 동료 인간들의 고통과 투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생각에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다. 예술가라는 사실이 인간의 의무로부터 그를 면제시켜 줄까. 오히려 예술가는 특별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특별한 감수성과 지각력을 갖고 태어났으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예술가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첼로 연주를 가장 잘 했던 파블로 카잘스가 자신의 생애를 구술해 엮은 책 ‘나의 기쁨과 슬픔'에서 저 악명 높은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목도하면서 느낀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를 언급한 내용입니다.

일본의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9년 2월 이스라엘의 최고 문학상인 예루살렘상을 수상합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에 대한 반발로 수상 거부까지 고민하다 선 자리에서 그 유명한 수상소감 '벽과 알'을 얘기합니다.

“내가 소설을 쓸 때 늘 마음속에 새겨두는 말이 있다. ‘혹시 여기에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르더라도 나는 알의 편에 설 것이다. 우리는 모두 더없이 소중한 영혼과 그것을 감싸는 깨지기 쉬운 껍질을 가진 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저마다 높고 단단한 벽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시스템'이라는 벽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그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 우리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여 멸시당하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책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을 배경으로 공지영 이외수 김제동 김미화처럼 비정치인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종합편성채널 출범 등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밝히고, 정치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카잘스의 지적처럼 소설가와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인간의 기본 의무로부터 그들을 면제해 주지 않는 한 사회현안에 대한 견해 표명은 당연합니다. 특히 이들이 일반인들과 다른 감수성과 지각력을 갖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한미 FTA나 종합편성채널 출범은 분명 이들 눈에는 거대한 ‘벽'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하루키의 논법으로 말하자면 한미 FTA나 종편은 옳고 그름의 문제 이전에 단단한 ‘벽'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당연 ‘알'의 편에 서게 될 것이고, FTA와 종편이라는 ‘시스템'에 다수가 멸시당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종을 울릴 것입니다.
문제는 예전에도 작가나 예술가, 연예인들의 사회 현안에 대한 경종이 있었지만 사회적 파급력은 미미했던 데 비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소설가나 연예인이 정치가와 언론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은 이른바 ‘진영의 논리'에 매몰된 정치권과 언론계의 탓이기도 하지만 SNS의 확산과 대중화가 가져온 필연입니다. 공지영이 종편에 출연한 김연아와 인순이를 비판한 게 옳고 그르냐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개념’이 있고 없고도 본질적 문제가 아닙니다.
소설가 공지영과 이외수, 연예인 김제동과 김미화를 비판하기에 앞서 엄청난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트위터에 올린 글의 천박함을 비판하고, 투표참여 인증샷을 수사한다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들 네 사람의 팔로어만 200만 명이 넘습니다. 이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유료독자와 버금가는 숫자입니다. 지금 권력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평택시민신문>과 제휴를 맺은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12일에 실렸습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