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용 머니투데이더벨 편집국장



무릇 지위가 있는 자는 ‘격(格)’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재물로 지위를 쌓은 부자도 그렇다. 큰 부자에 대해서는 ‘격’을 재는 잣대도 엄격하다. ‘격’은 사회적 행위에 의해 평가된다.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교신하는지, 주변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지가 초점이다. 격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하게 되면 사회는 부자를 버린다. 그가 쌓은 부(富)는 천박한 것이 된다. 감시자들이 등장하고 비판과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그 때부터 그는 예상치 못한 비용을 치르게 된다. 대중에 널리 알려진 큰 부자가 대중으로부터 소외되는 것 자체가 가장 견디기 힘든 징벌이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조급증에 시달리게 된다. 부정한 권력과는 유착해야 하고, 맑은 권력으로부터는 매를 맞아야 한다.

옛 성현은 부자들이 재물과 관련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료한 지침을 설파했다.
“처음 대부(大夫)가 되어 말과 수레를 지니게 된 자는 닭이나 돼지를 키우지 않고, 경대부(卿·大夫)로서 겨울에 얼음을 캐 두었다 저장해 놓고 제사에 쓰는 자는 소나 양을 키우지 않으며, 제후의 지위에 있는 자는 백성으로부터 재물을 긁어 모으는 신하를 키우지 않는다.”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경구다. 대학은 대부가 되어 말과 수레를 지닐 정도의 재물만 갖게 돼도 가난한 자를 돌아보라고 가르쳤다. 닭이나 돼지를 직접 키우면 득이 될 게 뻔하지만 지위와 재물이 없어 그 일을 업으로 삼는 자에게 양보하라는 것. 작은 이득을 취하는 것 보다 ‘격’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얼음을 저장해 놓고 쓸 정도의 부자는 소와 양을 키우지 않는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후가 되면 자신은 물론 아랫사람의 행위까지 책임을 져야 하니 부자로서 ‘격’을 지키는 일이 무겁지 않을 수 없다.

2500년 전에 설파된 도리이나 현재에 대입해도 생생하기 그지없다. 자본의 축적으로 옛적 경·대부에 비할 바 아닌 큰 부자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닭과 돼지, 소나 양을 키우는 일이 너무도 자주 목격된다. 2012년 한국의 부자들이 키우는 '닭과 돼지'는 치졸할 정도로 다양하다.

재벌가 자손들의 ‘격’을 잃은 사업 가운데 대표격은 빵집과 찻집이다. 이밖에도 순대, 떡볶이, 돈까스에서 설렁탕, 비빔밥에 이르기 까지 거부들이 동네 상권에 뛰어들어 기르는 ‘닭과 돼지’가 적지 않다.

‘소나 양’쯤 되는 사업 역시 곳곳에서 손을 뻗치고 있다. 부동산 임대업, 축산업, 온천업, 청과물도매업, 수면용품 제조업 등 굳이 이런 데서 돈을 더 벌어야 하나 싶은 일들이 수두룩하다. 이 중에는 사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 등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격’이 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부와 지위를 지닌 자가 ‘닭과 돼지' 또는 ‘소나 양'을 키워 재물을 늘리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득을 취하면 그는 사회와 척을 지게 되고, 비난과 감시에 시달리며, 불안과 분노로 스스로를 상하게 한다. 번 돈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게 될 뿐 아니라 결국 제대로 일군 재물조차 지키지 못하게 된다.

이 자명한 이치는 수천 년이 흐르는 동안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그동안 명멸해간 부자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지금도 부자들은 뜨고 진다.

세계를 둘러보자. 존경 받는 큰 부자 가운데 ‘닭과 돼지'를 기르는 이가 어디에 있나. 온전히 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부를 거머쥔 부자로서 누대에 걸쳐 그 부를 지켜냈다면, 과연 그와 그 집안, 그 조직이 ’닭과 돼지’ 또는 '소나 양'을 키운 적이 있던가.  

* 이 칼럼은 <머니투데이더벨> 1월27일자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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