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 논설주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여자의 원한이 무섭다는 섬뜩한 속담이다. 여름철인 음력 5월과 6월에 서리가 내리다니, 기후변화가 날씨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크게 놀랄 일이다. 은유적 표현이어서 망정이지 혹 이런 일이 실제 벌어진다면 어쩔 셈인가? 안될 것이다. 조심들 하라.

이렇게 뚱딴지같은 속담 타령이나 하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300억 원 가량 되는 거금을 횡령하고 탈세한 혐의로 최근 구속된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한예진) 이사장 이야기가 여자의 한(恨) 속담을 끌고 왔다. 요즘 ‘스토리텔링’이라고,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가 무성한 판에 김학인 구속 기사가 그대로 한편의 이야기 같으니 한번 되짚어 보자꾸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최측근이라는 정용욱(전 방통위 정책보좌역) 씨에게 금품을 준 의혹을 받고 있는 김 씨의 사건 주변에 등장하는 예닐곱 명 여성들 얘기다. 상식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의 그의 다중(多重)적 애정 전선에 상당수 남성들의 선망(羨望)이 모아졌다는 소주집 수준 ‘뒷담화’는 아직도 쟁쟁하다.

강남의 성형병원장 조선족 임 모 여인이 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다. 최시중 위원장의 '양아들' 혹은 '정 차관'으로 불렸던 정용욱 씨와 최시중 위원장 부부의 동정이 임 여인 이름과 함께 자주 등장한다. 병원을 열 때 경제적으로 큰 보탬을 줬을 정도로 김 씨와는 각별했다고 한다.

야당 한 인사는 임 원장의 출신 대학이나 개원(開院) 과정 등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과 임 원장이 방송에 자주 출연했던 것이 권력의 입김에 의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학인씨 회사 ‘한예진’은 방송 연예 관련 ‘사설(私設)’ 학원이다. 그의 친구 정 씨의 ‘양아버지’인 최시중 위원장은 당시 방송사 목줄을 쥐고 흔드는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김 씨의 국회의원 선거 운동을 돕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무속인이 등장한다. 그 무속인의 딸이 나중에 김 씨 회사(한예진)의 자금관리를 했다. ‘무속인’은 무당의 다른 호칭. 김 씨와 가족처럼 지내던 이 모녀는 김 씨의 ‘여성문제’ 때문에 돌아섰다고 했다. 그들은 김 씨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16억 원 상당 한식당을 받아낸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서 한예진의 전 여직원이 출연한다. 한 때 김 씨와 ‘가까운’ 사이였다가 퇴사한 그 여인은 무속인 모녀와 함께 김 씨를 공격한다. 또 유명 종교인의 딸, 여배우, 유명 탤런트의 아내 등 김 씨의 ‘창밖의 여자’들이 언제든지 한여름 서릿발을 드리울 소지를 품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수사 관계자는 이 구린내 흥건한 ‘난타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이성 관계 마무리의 잘못이라고 귀띔하기도 한다. 비자금, 비밀장부 등 단골 메뉴도 여느 사건들처럼 등장한다.

그 잘 나가던 분들, 그 힘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주지육림(酒池肉林), 남들의 ‘정중한 환대’가 자신의 능력과 인격을 향한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리라.

치사(恥事)한 이야기를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런 비리에는 필시 비용이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펜과 혀의 능력이 달려 이론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일이 이런 의외의 사례로 간단히 설명이 되는 것이다. ‘이야기의 힘’이다.

오뉴월 서리는 최근에 또 있었다. 부산의 ‘여자 영감님’ 얘기다. 요즘 좀 세련된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검사의 호칭은 ‘영감님’이었다. 벤츠와 샤넬을 사랑한 여검사 영감님 얘기에 등장하는 ‘사랑의 힘’ 또한 많은 호사가들의 뒷담화 재료로 손색없었다.

여검사와 변호사, 그 변호사의 전 애인인 대학 강사 등 사건 당사자들 간의 ‘단순한 치정극’으로 결론 내려진 이 사건도 역시 한 여인의 원한 서린 호소가 발단이었다. 50대 부장판사도 ‘곁가지’로 등장한다. ‘결론’과는 별도로, 대한민국 법률이 펼쳐지는 현장의 진정성을 뿌리부터 뒤흔들어버리는 모양새를 온 국민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오뉴월 서릿발이다. 

희극적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비극이기도 하다. 공연계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일러 ‘블랙 코미디’라고 한다. 열불 참을 수 없긴 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차라리 치정(癡情)으로 이해해 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 우리 국민이 이렇게 초라해졌을까?

공짜 점심 없듯, 비리엔 꼭 대가가 따른다. 그 비용은 여러 형태로 청구된다. 냉정하고 처절하게, 수백 곱절로.

비리인들이여, 억울한가? 매일 쌓이는 국민의 억울한 바를 생각해 보라. 기껏 저런 이들이 우리 사회를 ‘이끄는’ 이들인가. 국민의 한(恨)은 서리가 아니라 쓰나미로 올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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