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 논설주간

이제까지는 ‘자기 부모 이름도 한자로 못 쓰는’이란 말이 한자에 어두운 사람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바뀌고 있다. ‘자기 아이들 이름도 한자로 못쓰는’이란 말이 한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를 이르는 관형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30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주제에 관해 얘기하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아 그렇구나, 이렇게 시간이 가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이제 자기 부모 이름을 한자로 못 쓰던 세대가 부모 세대로 ‘승급’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 학원 다니는 딸이 자기 이름의 한자와 그 훈(새김)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받았다며 아빠의 도움을 요청했다. 한자사전커녕 국어사전도 없는 집에서 아이의 이름자를 쓰고 그 뜻을 알아내는 것은 골든벨 울리기 퀴즈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인터넷 신세를 지긴 했는데, 자전 찾는 방법을 몰라 또 한 번 당황했다는 실토였다. 

점점 한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세대의 층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관계 기구의 조사 결과 이런 상황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교육이 그 간격을 메우지 못하니 이는 당연한 결과다.   

유난히도 지금 30~40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자신들이 한자 없이 큰 세대여서 ‘문자 없는 사람’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겪을 수밖에 없었던 여러 불편이나 ‘설움’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라고 생각한다. ‘보상심리’라고나 할까. 그들의 상관이나 선배들은 한자를 조금은 이해하는 계층이다.

그런 분위기에 힘입은 것인지 한자 급수 시험이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스펙 관리에 나선 부모(특히 엄마) 덕분에 요즘 아이들은 한자 ‘열공’ 중이다. 또 글로벌 판세에서 중국의 위세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 이들이 중국 또는 중국어에 접근하는 계단쯤으로 한자를 자녀들에게 강권하는 양상이라고 한다.
그 부모들의 해결책은 역시 한 가지, 학원에 보내는 것이다. 동네마다 한자학원이 성시다. 저마다 이러저러한 비방으로 급수시험에 합격시켜 준다는 ‘공약’을 내걸고 열심히들 가르친다. 그러나 그 성과는 미지수다. 오히려 ‘한자는 지겹다’는 생각만 키워주고 있지는 않은지, 그 교육과정 등을 점검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급수시험만 끝나면 상당수 아이들은 한자책을 덮는다. 지겹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 시험만 끝나면 그만, 아이들은 한자를 모두 잊는다. 더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그 까닭이 궁금하고 걱정스럽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기는 어렵다.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들의 상당수가 한자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인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이들을 책망할 수도 없는 것이, 이 나이 무렵의 ‘한자 선생님’들 중에는 한자를 제대로 접해보지 않은 이들이 많다. 초중고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한자를 익힐 기회는 없었다.

자녀의 한자 교육이 아쉬운 젊은 부모들과 그 선생님들도 한자와 관련한 인연에서는 대동소이한 상황인 것이다. 성장과정, 교육과정을 잠깐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프랜차이즈 한자학원 등에서 몇 주 연수를 받는 것으로 ‘한자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골목과 상가의 한자 학원과 그 선생님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자연 실망하는 이들도 많겠다.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간다. 안 한 것 보다는 낫겠지 위안 삼기에는 너무 심각하다.

한자를 배웠다한들 어디서 그 한자를 읽고, 확인하고, 응용할 것인가? 두 번째 문제다. 신문에도 교과서에도, 그 어디에도 한자는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한자를 왕따시켜 버렸다. 배우고 나면 그뿐, 그 한자는 다 잊고 만다. 한자급수 몇 급, 증명은 있으되 정작 한자는 모른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한자를 공부한 것이 기대만큼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교육당국의 책임이다. 이를 보고만 있었던 기성세대들의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절실한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절실한 젊은 부모 세대에게서 문제점과 개선책 요구가 나오지 않고 있음을 필자는 걱정한다. 학원에만 맡기고 할 일 다했노라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인가. 동료들끼리, 또래들끼리 진지하게 논의하고 발언할 것을 권하고 싶다.

해결책 하나.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하려면 부모가 늘 책을 봐야 한다. 한자도 마찬가지다. 한자는 영어나 국어처럼 언어이고 생활이다. 궁리해보면, 부모가 한자를 생활화하는 것이 비방이다.
남에게 미루지 말고 직접 서점에 가야한다. 기왕 한자에 접한 상황, 직접 공부하면 자녀들과 함께 ‘문자 있는’ 사람이 된다. ‘책임 있는’ 부모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또 자신의 지식생활에 혁명이 온다. 글눈과 말귀가 새롭게 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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