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 논설주간

“서울대 다닌 적도 없는 사람이, 그것도 서울법대를 다녔다고 사기 치다 들통 났다며. 요즘 세상에도 그런 ××가 있네.”
“하여튼 정치하는 ×들이란. 쯧쯧, 믿을게 없어.”

재보선 전날인 10월25일 오후 서울의 지하철에서 들은 얘기, 비교적 잘 차려입은 40대 후반 여성들이었다. 영리한 ‘그들’의 선거운동은 이런 효과를 노렸겠다. ‘그 사람’은 지금 서울시장인 당시 박원순 후보다.

‘정치가를 믿을 수 없다’는 그 한탄이 틀린 건 아니리라. 그러나 한탄을 불러온 그 이야기는, 아니다. 되레 그런 말을 생산한 쪽이 화살을 맞아야 했다. 말을 비틀면 이렇게 ‘사실상’의 거짓말이 된다. 그러나 “하여간 서울법대는 아니지 않느냐? 내가 거짓말 했느냐?”고 눈에 불을 키고 억지를 쓰면 상대는 할 말을 잃게 된다.

10월27일, 인터넷 뉴스 페이지들은 박 시장의 첫 업무 등을 묘사한 신문과 방송의 ‘용비어천가’들로 빼곡했다. 물론 언론의 당연한 업무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판세’에 따른 자기 회사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가늠하는 잣대가 속뜻임을 상당수 시민들은 곧잘 읽어 낸다. 선거의 결과가 그걸 말했다. 

어떻게든 ‘좌파 박원순’을 망가뜨리려 힘쓰던 그 입들의 ‘세련된’ 논리는 다 어디 갔을까? 전력 질주하던 그 힘을 채 다스리지 못한 것일까? 꼼꼼히 살피니 ‘박원순 월급 전액 기부 거짓말 가능성 높다’ ‘종친초(종북 친북 촛불군중) 오너 서울 장악!’이라는 ‘안티 박’ 성격의 제목도 아직 눈에 띄기는 했다.

이런 말과 글, 신기한 논리를 생산하는 이들도 실은 그 실체를 안다. 예를 들자면 ‘후보 박원순’이 서울법대에 다녔다고 어디엔가 적히게 된 까닭을 안다. 그러나 딴청을 부리고 정색하며 너스레를 떤다. 왜? 독자, 시청자가 오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소위 흑색선전이다.

그 배후에는 당연히 ‘정치가들’이 있다. 정치의 문법이 그렇게 굳어져 있는 것을 더 어떻게 하겠는가? 구제불능으로 치고 한 구석 쯤에 일단 놓아두자.

언론은 그들의 고객인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누가 그러더라’하며 그 말을 전하고 확대재생산한다. 때로 분명한 거짓이나 악의적인 왜곡, 과장임을 알면서도 짐짓 ‘누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고 강변한다. ‘누가 말한’ 그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이미 언론의 일이 아니다.

글이, 사실의 표현이 남을 해치려는 뜻을 품으면 이미 악마의 도구다. 시민을 좌절하게 하는 고문기계가 되기도 한다. ‘냄비 속 개구리’ 얘기, 천천히 온도를 높이면 삶겨 죽을 지경이 되어도 웃는다고 했던가. 우리의 말귀와 글눈을 더 밝히고 맑혀야 할 필요다. 불의의 세력이 짓는 꼼수와 모략을 단박에 박살낼 수 있도록.

도올 김용옥 교수의 교육방송 고전강좌가 외압으로 중단됐단다. ‘단군 이래 최대의 모욕’이라며 김 교수는 시위의 팻말을 들었다. 작가이며 연출가인 김상수 씨는 얼마 전 세상의 정의 없음을 직시하는 연극 ‘택시택시’를 공연했다. 줄거리를 설명 듣고 한 기자가 “우리 신문은 정의나 원칙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던 말에 작가는 내내 황당해 했다. 그 모욕감과 황당함은 독자이고 시청자인 우리 시민들의 몫이기도 하다. ‘나’를 우롱하는 행실에 대한 정직한 감정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애써 못 본 척 해왔거나 그 느낌을 숨겼다. 아니면 눈이 흐려진 것이다. 독재가 고개를 들면 인간이 이렇게 초라해진다. 아직 우리는 ‘박정희 독재 시대’를 살고 있는가?

‘박정희 치하에서 서울대를 다니다 그만 둔’ 박원순 새 서울시장도 이제는 정치인이다. ‘정치하는 ×들’의 그 대열에 끼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터, 권력 곁에는 항상 제 이익만 챙기는 다양한 ‘어둠의 세력’들이 있다. 많다.

그가 사악한 옛 정치 문법의 시험에 드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눈 크게 뜨고 감시할 것이다. ‘친구 박원순’ 마저 잃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부탁하건데, 그 문법책을 착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내용으로 완전히 새로 써 주었으면 좋겠다. 완전히 새로운 필진으로 ‘큰 책’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 평택시민과도 무관할 수 없는, 서울의 선거가 갖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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