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 영향력 있는 신문... 독일 언론의 중추

이에 본지는 김기수국장의 독일 연수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1.독일의 지역언론
2.독일의 지방자치
3.독일의 시민운동
연수단 일행 12명은 지난 7월 27일 오후 한국을 출발해 28일 오후 6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나와있던 베르린자유대학에서 언론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한국언론재단 심영섭 통신원의 통역과 안내로 일행은 렌트카를 타고 아우트호반을 2시간 반 정도 질주한 후 연수예정지역인 에어크라트시로 이동했다. 밤 10시가 가까워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아직 해는 남아있었다. 독일은 위도가 높아 해가 늦게 지는데, 여름에는 썸머타임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밤 11시가 되어야 해가 지는 지역이다. 일행은 에어크라트시의 예정된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인 29일 에어크라트시장이 주관하는 환영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독일 연수기간 동안 에어크라트시의 민원과장인 크뢰거씨와 그의 비서가 우리 일행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각종 편의제공과 안내를 맡아 주었다. 이번 연수도 콘라드 아데나워재단의 강사로 한국에 강연차 온 크뢰거씨의 주선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동양에서 온 우리일행에게 이처럼 친절을 베푼 그의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에어크라트시는 인구 5만의 작은 자치시(自治市)로, 인구 50만 규모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주도(州都)인 인근 뒤셀도르프의 위성도시라고도 볼 수 있다. 뒤셀도르프의 베드타운적 성격을 띠고 있는 도시로 고층빌딩 하나없이,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주택단지들이 잘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주변에는 첨단 생명공학 공단 등 고부가가치 기업들이 많이 입주해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29일 오전 10시 에어크라트 시장실에서 아르노 베르너(Arno Werner)시장이 진행한 간단한 환영식을 마치고 우리는 이 지역 지역신문으로 일간으로 발행되는 베스트도이체 차이퉁(Westdeutsche Zeitung)사를 방문했다. 베스트도이체 차이퉁은 뒤셀도르프와 에어크라트시가 소속되어 있는 메트만군과 인근 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으로 총발행부수가 18만부에 달한다. 한국과 비교한다면, 지역신문이라기 보다는 광역신문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도(道)단위의 일간지보다는 포괄범위가 적고 한국의 시나 군단위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보다는 포괄범위가 훨씬 넓다. 뒤셀도르프인근에는 이러한 종류의 신문이 3개 발행되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이러한 광역신문이 일반적인 흐름이라고 한다.
독일 신문의 경우 전국지로는 보수적인 성향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디벨트, 진보적 성향의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 쥐도도이체 차이퉁, 녹색당 계열의 신문으로 한겨레신문의 모델이 되었던 디 타게스차이퉁, 옛 공산당인 민사당 계열의 노이에스 도이칠란드 등 10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더 읽히는 신문은 역시 지역신문이다. 베스트도이체 차이퉁 처럼 몇 개 군단위를 묶어 발행되는 신문이 독일에는 100여개 이상 있으며, 이런 지역신문들이 독일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영향력이 있는 신문들이다. 중앙지가 신문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한국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이다. 지방자치 역사가 오랜 독일은 지역언론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 반면,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가 오랜기간 지속된 한국의 경우 중앙일간지가 활성화되어 있다. 지방자치의 시작과 더불어 활성화되기 시작한 한국의 지역언론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상당한 우여곡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독일의 경우 지역신문의 역사가 100여년에 달하는데,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지역신문 처럼 인구 5만에서 10만단위의 시·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논리인 상호 경쟁과 집중현상에 따라 지금은 이들 지역신문은 대부분 사라지고 베스트도이체 차이퉁 같이 몇 개 지역을 포괄사는 광역신문으로 흡수·통폐합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에어크라트시에 관한 소식은 이러한 광역신문의 에어크라트 지역판(地域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한 개의 광역신문이 몇 개의 지역판을 발행하는 식이다.
1개 시·군을 중심으로 주간으로 발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 지역신문 현실에서 독일의 이러한 광역화 흐름은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지역신문은 신문으로서 지역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나가야 하는 신문 본래의 목적에 더해 경쟁과 자본의 집중이라는 자본주의적 경쟁의 논리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짐을 떠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일 신문 시장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베스트도이체 차이퉁의 홍보담당자인 토비아스 그레이셔(Tobias Graeser)씨의 설명에 의하면, 독일의 신문시장은 최근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많은 거대 신문기업들이 도산하거나 흡수·합병이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통독 이후 경기침체에 따라 광고시장의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이에 따라 신문 시장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비용 절감을 위한 경쟁지간의 상호 협력관계 구축이다. 이를 테면, 베스트도이체 차이퉁도 경쟁지 중의 하나인 발행부수 40만부에 달하는 리이니쉐 포스트(Rheinische Post)지를 자신의 인쇄소에서 인쇄하고 있었다. 또한 신문 배달도 라이니쉐 포스트와 공동으로 하고 있었고, 전산시설을 같이 운영하고 홍보 영업도 함께 하고 있었다. 다만 편집과 광고, 독자관리는 따로 운영해 신문의 독자성을 살려간다.
경쟁지간의 출혈 경쟁 속에 상대 신문의 지국장을 살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독일식 합리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일행은 베스트도이체 차이퉁사 방문을 마치고, 에어크라트 시청에서 이 지역 3개 신문사 및 1개 방송사 기자들과 토론회를 가졌다. 베스트도이체 차이퉁의 에어크라트 주재기자와 라이니쉐 포스트 편집부국장, 또다른 신문인 노이에라인 차이퉁(Neue Rhein Zeitung)의 계약직 기자, 그리고 이 지역 방송국의 기자와 가진 토론회는 기자 윤리와 최근 신문 보도의 새로운 흐름이 되고 있는 퍼블릭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 등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독일의 기자들도 한국의 기자들이 갖는 고민과 유사한 고민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이들은 언론의 공정성에 대해 상당한 중점을 두면서도 시민들을 독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기사발굴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독일 지역신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사는 연예관련 기사라고 한다. 그 다음이 스포츠관련 기사이고 가장 비 인기기사는 문화관련기사라고 한다. 또한 정치에 관한 심층기사나 분석기사도 잘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정치기사는 대체로 시사주간지가 담당한다고 한다.
독일의 생활정보신문 시장도 우리의 큰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우리 일행은 한국의 생활정보지적 성격을 갖는 이 지역 주간신문인 '로칼 안자이거(Lokal Anzeiger)'를 31일 방문해 이 신문사 임직원들과 2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신문은 광고와 기사의 비율이 약 7 : 3 정도를 차지하는데, 기사 내용은 지역 행사소식과 지역 기업소개, 가족이야기, 부음, 쇼핑 정보 등 이 지역에 한정된 기사만을 취급한다. 이 신문의 자이페르트(Jeifert) 사장은 '30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우리와 같은 생활정보 중심 주간지를 처음 일간지 등이 경시했으나 이제는 일반 신문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경쟁자는 지역일간지라고 말하면서도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지역에 밀착한 신문이 결국 승리한다는 논리였다. 이들은 주 1회 신문을 발행하며 배포는 배포 대행사를 통해 집집마다 직접 무가지로 배달해 준다.
독일 생활정보신문이 주 1회 발행되는 것은 약간 의외였다. 지역 광고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며 주 5회씩 발행되는 한국의 생활정보지의 기세에 눌려 고전하고 있는 한국의 지역신문의 현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 독일을 방문할 때에는 독일 방문을 통해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지역신문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받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독일 지역신문의 현실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1개 시·군 단위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신문들이 대부분 통폐합돼 광역 일간지로 변해 있는 현실을 보며 한국 지역신문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했다. 87년 민주화 투쟁과 그 뒤이은 지방자치의 발전과 함께 경영의 어려움 속에서도 주민의 알권리 충족과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한국 지역신문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실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결국 한국 지역신문의 장래는 지역언론 종사자들이 얼마나 언론의 정도(正道)를 걸으며 독자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 이와 함께 경영의 합리화를 통해 중앙지, 도일간지, 생활정보신문과 대별되는 자신만의 영역을 제대로 구축할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이번 독일 연수는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 기회였다.
김기수 <본지 발행인 겸 편집국장 designtimesp=18732>
<독일연수기 designtimesp=187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