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발행 편집인

또 한해가 간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희망과 감격으로 시작했던 대망의 2000년이었던 만큼 나름대로 느끼는 감회도 각별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땅에 사는 평범한 국민이라면 년초에 가졌던 설레임을 간직한 채 한해를 마무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같다. 증시 폭락과 극심한 경기침체는 언급하지 말자. 은행구조 조정으로 감원 위협에 시달리며 한겨울 추위에 노천에서 밤샘 농성하던 은행원들 모습도 떠올리지 말자. 우리들 일상의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시내 상가와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와 샐러리맨, 농사짓는 농민, 사업하는 자영업자 모두들 꽁꽁 얼어붙은 지역경제만큼 몸도 마음도 얼어붙었다. 희망을 노래하며 넉넉한 연말을 맞이하기에는 우리 모두 상처받고 지쳐있다. 그래서 한해를 보내고 다시 한해를 맞이하는 일이 시큰둥하고 무덤덤하기만 하다.

그러나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무언가 감회와 상념에 젖게 하는 연말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연말연시는 인류가 만든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얽히고 설키고 맺힌 마음 속의 매듭을 조금이라도 풀어낸다면 새해를 맞는 마음이 그만큼은 가벼워지리라 생각된다.
거창한 사회문제를 논의하기보다는 지난 1년간 평택시민신문을 발행하고 편집하며 느낀 소회를 두서 없이 밝혀보고 싶다.

국회의원 선거 때가 나름대로는 어려웠던 시기였던 것 같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선거관련 기사와 논평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가까웠던 모 후보에 관한 지역내 비판적 여론을 보도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 후 여기저기서 꽤나 정신적 시달림을 당했는데 편가르기가 극심한 선거판을 보면서 선거에 한번 잘못 끼어 들면 승패를 떠나 '4년이 고달프다'는 지역에서 유행하던 말이 실감나기도 했다. 좋은 경험이었다.
민감한 시정관련 비판기사에 과민하게 대응하는 공무원들의 태도에는 간혹 곤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기사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청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매도하는 말을 들을 때는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많은 독자들이 구독료를 보내 줄 때는 정말 기뻤고, 구독료를 내주는 독자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희열과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사회 일부에서 코스탁 열풍이 기승을 부리며 수십 수백억원을 하루아침에 거머쥐는 동안 대부분의 일상인이 그러하듯 빠듯한 지역신문 살림살이 속에서 독자 한사람이 내주는 3만원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좋아했다.

경제가 어렵고 나라 정치가 삐걱거려도 평범한 시민에게는 일상의 삶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의식주 걱정 덜하면서 화목한 가정 일구고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주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시간 내어 봉사하며 살아간다면 이 보다 더 멋있는 삶이 있을까. 어려워도 웃음을 잃지 않고 다툼과 분쟁이 있어도 서로 화해하고 양보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있다면 세밑 우리네 마음은 스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해를 보내며 아쉬운 것은 지역사회 지도층들이 평범한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지역사회, 살고 싶고 인간미 넘치는 지역사회에 대한 전망을 어느 만큼 주었느냐 하는 점이다. 시장이든 국회의원이든 시의원이든 나름대로 지역을 위해 한해동안 열심히 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나 위신을 떠나 진정으로 지역을 위해 낮은 마음으로 봉사하는 자세로 임했는지 한번씩 자문해 보라고 묻고 싶다. 지역은 지금 겉으로는 평택항 개발로 장미빛 모습을 띠고 있을지 모르지만, 학연으로 지연으로 지역으로 정당 정파로 갈기갈기 나뉘어지고 찢겨져 있다. 한해를 보내는 시민들의 마음이 더욱 얼어붙은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역 언론인으로서, 평택시민들에게 지역 정서 통합과 평택인으로서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제 역할을 못 한 점 시민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지역 사회 지도자들의 새해 '통합'과 '화합'의 지도력을 기대해 본다.

더욱 예리해 지고 날카로워지는 지역신문이 되기 위해 내년 한해도 열심히 뛰겠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주변 이웃의 이야기를 담는데 노력하고 지역민이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독자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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