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in 평택人, 한 지역서 택시기사 40년 송일섭씨

건강하지, 양보운전하지, 친절하지
자식들 출가해 손주들 재롱 보고
디카 배우면서 컴맹서 탈출까지
요즘 같은 인생 죽~ 계속되겠죠
‘송탄의 송털보!’ ‘엥! 웬 털보?’ 40여 년간 택시 운전기사로 운수업계에서 일익을 담당한 털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털보! 가장 재미있게 산다는 털보! TV 이산가족 상봉 때 생모를 찾았다는 털보! 지금까지 40여년, 앞으로 20년은 더 운전하겠다는 털보! 요즘은 사진과 컴퓨터로 인생의 전환기를 이루는 털보다. 송탄에서 ‘송털보’를 보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유명세를 갖고 있다.
1남1녀 자녀들로 속 안 썩고. 가르쳐 출가해 행복한 가정 꾸리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잘 하고. 얼마 안 있으면 세상밖에 나올 복덩이 손자까지 네 명의 손자, 손녀가 있고. 이렇게 다복한 가정을 이룬 자신만큼 행복한 인생 있으면 나와 보라고 자부하는 독곡동 현대연립의 한 남자! 송일섭(63) 개인택시 기사다.
살아온 인생 굴곡이 누구에겐들 없으리요만 송털보가 이렇게 다복한 행복을 추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워낙 가난했던 데다 부인 원옥자씨도 마찬가지지만 어머니가 몇 명은 되었다. 자라면서 가족 간의 가슴 아픈 사연과 과정이 많았던 송털보 부부. ‘우리대에서 끝내자’ 마음 먹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부부간은 깨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평생 살았다. 자식들에게도 인생을 살아가는 철칙 같은 교훈으로 가르쳤다.
또 하나 인생 철칙은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 큰 사고를 내 금고형으로 교도소에 간 적이 있을 때 깨달았다. 1년여의 수감생활동안 송일섭 씨는 ‘죄를 지으면 안 된다. 남한테 손가락질을 받으면 안 된다’라는 것을 몸으로 정신으로 마음으로 배웠다.
1년 동안 체득한 이 마음은 인생을 바꿔 놨다. 평생 남한테 마음 상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자식들에게도 밥은 굶어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송털보는 자신한다. ‘적이 없다’고. 지금은 시커먼 수염을 깎아버렸지만 한 동안 송일섭 씨는 수염을 길게 기른 모습으로 운전했다. 젊은 사람이 왜? 요즘도 부족하지만 운전문화가 없었던 시절에 택시운전 기사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기사 새끼들 다 그래’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수염을 기른 자신의 모습은 다른 사람의 눈에 확 띈다. 택시를 타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단 번에 기억하기 때문에. 그래서 일부러 길렀다. ‘기사 새끼들’이 아니라 ‘털보 기사님’이라는 ‘멋쟁이 택시 운전기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송털보 택시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노인, 산모, 장애인, 짐이 많은 손님들이 더 많다. 이용객들에게서 말의 말을 타고 ‘아! 그 털보 기사! 참 친절해’라고 소문이 퍼졌다. 심지어 필리핀에서 온 시누 남편은 송일섭이라는 이름보다는 ‘송털보’라는 이름을 들고 와 찾을 정도였다.
기술도 없고 머리에 든 것이 없어 시작했다는 운전은 자신의 돈벌이다. 우스개로 타이어만 굴러가면 돈이 들어왔다. 40여 년간 운전으로 가족 먹여 살리며 살아왔다.
오랜 기간 운전을 해 왓으니 교통문제나 개선책에 대해 뭔가 기대할 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요청했다. 어! 그런데 대답은 대책이 없단다.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도로는 한정되어 있고 차들은 수도 없이 많아졌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택시들의 양이 엄청 늘었다. 평택만 보더라도 수십 대 정도에서 이제는 회사택시까지 포함해 1800여대로 늘어나고 있다. 다른 차량까지 보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도로가 확보되는 시간보다 차량이 늘어나는 것이 훨씬 더 빠른 세상이 된 것이다.
"40여 년간 운전하면서 내린 결론은 '내가 양보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빨리 가려고 하다보니 사고가 나지요. 천천히 가고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됩니다. 빨리가도 5분이고 늦게 가도 5분 늦습니다. 하지만 5분의 안전이 중요하지요. 이는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또 "일본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철저합니다. 일본인들을 태우고 공항으로 간 적이 많습니다. 차가 많고 막혀 좀 빨리갈라 치면 100명이면 100명이 모두 서두르지 말라고 합니다. 심지어 다른 비행기 타면 된다고 하면서 추월하는 것을 못하게 합니다..'
송털보는 이런 안전운전의 완벽성이 자신의 40여 년 무사고를 지켰다고 한다. 사고 나면 사망히거나 크게 다치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하니까 그 전에 안전사고를 철저히 지켜내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리고 이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양보 운전' 이란다. 5분의 순간이 평생을 지켜내는 순간이다.
놀기도 좋아하고 술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송털보가 1년 전부터 사진 찍는 것에 빠졌다. 하나 더 있다면 사진을 통해 컴맹의 문턱을 넘었다.
'절친' 김성용 평택시사진작가협회 전지부장의 권유로 시작한 사진이 지금은 사진담당일 정도로 어디 어느곳에서나 셔터를 눌러댄다. 카페에 올리기도 하고 모델(?)에게 전달해 주기도 하고 합성에 영상까지 실력이 많이 늘었다. 사진을 통해 요즘은 이야기 거리도 생산해 낸다.
영어 단어 하나도 모르는 송털보가 순 영어 턴지인 사진과 컴퓨터를 할라니 오죽이나 답답할까? 하지만 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가까지 8시간에서 10시간 컴퓨터에 앉아 있기가 다반사다. 심지어 꼬박 밤을 새는 날도 여러 날이다. 하나하나 알아갈 때 마다 느끼는 성취감의 맛이 술맛과 견주어 볼 때 딱! 그맛이다. 큭큭!!!
정년이 없으니 앞으로 20년은 더 운전하겠다는 송털보는 좀 더 실력있는 사진찍기를 위해 그애말로 정진할 셈이다. 인생 60에 또 하나의 재미에 빠진 것이다.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군대 가기 전 못 찾은 생모도 찾았고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손자 손녀들 재롱도 보면서 마음 넓고 착하며 고마운 부인 원옥자 씨와 행복하게 살아보는 것이다. 한가지 기자의 바람이 있다면 운전기사로서의 멋있는 송털보와 멋있는 송 사진작가를 20년 뒤에 한 번 만났으면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