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칼럼

▲ 논설주간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다. 과학적으로도 입증된다. 술 먹은 이 운전석에 앉히고 시험주로를 달리게 하는 시험 결과, TV에서 수십 번 똑똑히 봤다. 기어이 피를 뿌려 길에서 이 ‘진리’를 입증하는 사례, 매일 발생한다. 한 해 1천명 가까운 희생자가 난다. 하루 평균 세 명 이상 애먼 사람을 음주운전자가 죽인다. 이유 없이 살해되는 것이다.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라는 국민계도용 표어를 퍼뜨려 이만큼이나 음주운전의 폐해를 알린 것은 나라다. 수십 년 걸렸다. 아직 음주운전이 뿌리 뽑히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범죄행위라는 점은 다 안다. 심지어 음주운전자 당사자도 안다.   

음주운전을 했다. 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는 뺑소니를 쳤다. ‘뺑소니 음주운전 살인행위자’다. 정상 참작? 사고지점이 자동차전용도로였다고?

결론부터 얘기하자. 조석준 기상청장, 그 이가 정말 ‘사람’이라면 스스로 백배사죄하고 즉각 물러나는 것이 옳다. 가족과 이웃, 친구들을 더 치욕스럽게 하면 안 된다. 더구나 그는 ‘친정’인 언론계 전부를 모독하고 있다.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라는 표어를 땅에 묻어야 할 상황을 만든 ‘죄’도 크다. 더 주저하지 않고 물러나야 옳다.

정부 인사계통 사람들이 다소간의 착각으로 자신을 발탁한 것을 ‘세상이 용서한 것’으로 간주하는 어리석음을 그는 저질렀다. 다시 차분히 생각해 보라. 도대체 말이 되는지? 천벌이 무섭지 않을까?

아마 당시 그 방송사의 사회부장과 시경캡(중고참 사건기자)이 새벽부터 부지런히 전화를 했을 것이다. 다른 방송사와 신문사의 비슷한 직위 ‘동료’들에게 이러저러한 일이 생겼으니 ‘챙겨달라’고 말이다. 수사기관들은 ‘협조’를 자청(自請)했기 쉽다. 가해자 측과 함께 피해자 측에 ‘힘’을 가했을 수도 있다. 재판까지도 일사천리였으리라. 말이 되는가? 

믿기 어렵지만, 그때는 보도되지만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셈해보니 필자가 사건기자로 일하던 때였다. 이런 상상이 가능한 경험을 가진 필자, 심히 부끄럽다. 인상 좋고 방송 잘하던 조석준 기자가 왜 갑자기 화면에서 사라졌는지, 그때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잊었다. 기상청장 됐다고 해서 내심 반가웠다. 그런데 그가 이런 ‘범법자’였다니.

정의나 원칙, 법이 아닌 ‘영향력’이 사회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기자나 언론계가 그토록 큰 힘을 발휘한 예는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없었고, 없을 것이다. 야합(野合)이었다. 대부분 시스템 운용이 ‘힘과 정보를 독점한’ 들개들의 잔치였다. 조석준 사례는 그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언론은 독재의 파트너였다. 대충 협잡(挾雜)이었다.

한참 전 유행했던 재담(才談) 하나 소개한다. 농담 빗댄 얘기인데 실은 참 매섭다. 세상 사는데 꼭 필요한 국어와 산수의 기초가 무엇일까? ‘국어의 기초’는 주제파악(主題把握)이고, ‘산수의 기초’는 제 분수(分數)를 아는 것이란다. 웃어넘긴 말이었는데 ‘기상청장 조석준’이란 인물을 생각하다 다시 떠올렸다.

주제파악도 안된, 제 분수를 모르는 이가 고위 공직자가 됐단다. 그런 이가 내가 낸 세금을, 국가의 녹을 먹는단다.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에 큰 누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다 안고 가겠다’고 했다 한다. ‘이제 국민에게 봉사해 평생의 마음의 빚을 갚겠다’고 했다 한다. 그러나 그의 말이 맑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뭔가에 툭 걸렸다는 점만을 인지한 채 귀가했다’고 뺑소니 음주운전 사고 상황을, 즉 사람이 자기가 운전하는 차에 죽는 순간을 설명했다 한다.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가 없었다면, 그는 벌금이나 합의금 따위의 책임도 지지 않았을 터다. 뺑소니의 성공이다. 모든 뺑소니 범죄자들이 바라는 바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발각됐다. 그 범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간의 벌금으로 ‘용서’를 받았다. 거의 모든 시민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단언하지만 그의 ’뺑소니 상황‘ 설명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질이 매우 좋지 못한’ 범죄행위였다.

정부에 아쉬운 점이 있다. 조석준 전 기자를, 이런 여러 상황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위직에 발탁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이색적인 인사였던 만큼 그 흔한 공적 사항이나 어떤 부문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든지 하는 언급 등 국민에 대한 소명이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점,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을 막는 것임을 모를까?   

숙맥불변(菽麥不辨)이란 말이 있다. 콩인지 보리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느냐는 말이다. 조석준 기상청장은 거기 나오지 말았어야 어진 사람이었다. 또 정부 인사계통 인사들에게도 이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민으로서의 실망의 표현이다.

그가 전문지식으로 돈도 많이 벌고, 묵묵히 자기 분야에서 공덕을 쌓을 것을 바란다. 그가 진정 봉사할 멋진 방법이다. 음주운전을 절대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봉사의 방법이겠다. 따로 음주운전 피해자를 위한 봉사를 한다면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좀 열없기는 하겠지만 꾸벅 절하고 스스로 무대를 내려와야 할 것이다. 그나마 미운 정 고운 정의 동료 기자들이 이렇게 당부할 때가 호기(好機)다. 남은 여정(旅程), 명예를 지킬 다음 기회는 없으리라. 밉지만, 무대 아래서 박수 보내며 기꺼이 한잔 사겠다. 상식은 힘이 세다. 상식에 어긋나면, 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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