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덕(德)이란 무엇인가? 한자사전은 크다, 베풀다는 뜻과 함께 도덕, 은덕(恩德), 행복, 선행, 절조(節操), 가르침, 현자(賢者), 정의 따위의 뜻을 보여준다. ‘절개(節槪)와 지조(志操)를 바탕으로 하는 어질고 정의로운 이들의 큰 마음’ 정도로 해석해봄직한 단어지만, 결코 몇 마디로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포괄적인 낱말이다.

‘덕’은 애당초 그런 국회의원들에게 주문하지 않았던 품목이다. 그런데 ‘부덕(不德)의 소치(所致)’라며, 이번에도 전혀 상관도 없는 덕을 팔고 나섰다. 염치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모두들 뜻을 모우는 밉상 정치인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덕’을 애지중지 했을까.

‘대표’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 얘기다. ‘자연산’에 대한 관심이 덕이 없어서 생긴 일이란다. 좀 비틀자면, 불가항력(不可抗力)이며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속뜻도 숨어있는 듯하다. 말썽이 생겼으니 ‘유감 표명’은 하지만, ‘덕의 차원(次元)’이 아닌 평균적인 잣대로 보자면 별 일 아니라는 것인가?   

망발(妄發) 또는 망언 끝에 수습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면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 같은 이들이 으레 ‘부덕의 소치’라는 아리송한 말로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흐지부지 덮고 지나간다.

사리(事理)와 함께 말과 글의 뜻을 꼬장꼬장 따지는 책무를 가진 언론인의 직업병인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자기 독자들에게 이를 ‘사과(謝過)’로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보도하는 뭇 언론인들의 무신경도 또한 예뻐 보이지만은 않는다. 기자들이 한자의 말뜻에 익숙하지 못해서일까?

이번 사태에는 그 ‘부덕의 소치’를 방패로 들고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느 날 낮에 갑자기 필자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폭주하고, 웹페이지 방문자가 평소의 10배를 넘는 현상이 벌어졌다. 지난 8월에 썼던 ‘부덕의 소치 용어 사용법-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반듯이 할 것!’이라는 칼럼에 새삼스럽게 지인들과 독자들의 관심이 몰린 것이었다.

상황을 알아보고는 동료들과 함께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뻥 터지고 말았다. 한 치도 어김없이 그 정치인도 ‘부덕의 소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선 것이다. 이 가면을 쓰면 편리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결과였을까?

덕은 민주주의의 정치인이 국민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임금이 다스리던 시대의 용어다. 왕이 좁쌀 같은 신민(臣民)들에게 베풀어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없이 뻐기면서 “짐(朕)이 덕이 없는 까닭에 대(代) 이을 아들이 없으니, 신민들을 위해 새 장가를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쓰는 것이 격(格)에 맞는 문법이다. 권력이나 돈을 가지고 행세께나 한다는 이들이 나름 겸손을 가장하는 거만한 수사법(修辭法)이다.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칼럼에 쓴 얘기지만 다시 인용한다.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죽이거나 다치게 한 범죄자가 “내가 부덕한 소치로 이런 짓을 저질러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했다면, 이 말이 심히 잘못 쓰였음을 알 수 있을 터다. 또 주문한 자장면은 내놓지 않고 철가방 왈(曰), ‘부덕의 소치’로 탕수육을 대접하지 못해 ‘유감’이라 했다면 누군들 뻥 터지지 않겠는가.

나름 보람은 있었을 터다. 여당의 주요인사쯤 되면 식(食)생활뿐 아니라 룸생활에서도 ‘자연산’ 웰빙의 품격을 따지는 고상한 취향을 가진다는 점을 널리 자랑했으니 홍보도 그런 좋은 홍보가 따로 있었을까?

당연히 의식주의 주(住)생활 말이었겠지? 돈은 더 들어도 유기농을 택하는 것 같은 자기희생의 애국적 자세가 생산자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겠고. 일부러 소음(騷音)을 일으킨다는 노이즈마케팅이었을까? ‘통큰치킨’도 일부러 그랬다는 설이 있지 않나?

요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명(題名)이 유행한다고 한다. 같은 어법으로 물어본다. 덕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부덕의 소치’를 애용하는 내로라하는 우리 사회의 선택된 인물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언론에도 같은 질문을 드려 본다. 추가 질문 하나 더, ‘부덕의 소치’라는 그들의 황당한 술수(術數)를 앵무새처럼 받아 적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건방진 속임수 용어를 그대로 옮겨 적어 독자의 이성을 무디게 하는 것이 보도(報道)인가?

필자는 이제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이 정치적 용어 ‘부덕의 소치’를 우리 독자들과 함께 더 이상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민망한 주제로 글 쓰는 일, 참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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