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in 평택人, 포승의용소방대 문현호 대장

“휘~”
낙엽을 쓸어가는 바람이 아침햇살과 맞물려 쌀쌀함보다 포근함이 더 느껴지던 지난 금요일. 코스모스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포승읍 내기리에 들어섰다. 울긋불긋 단풍물이 들어가는 산을 마주하고 들을 벗 삼아 주렁주렁 감이 달린 주인공의 집. 외부인 경계를 늦추지 않던 진돗개와 긴장감이 감돌 찰나, ‘허허’ 웃는 너털웃음이 기분 좋은 포승의용소방대 문현호(60) 대장을 만났다.

“먼 길 오셨네.” 건네는 한마디에 피로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감쪽같다. 거실엔 손주들 사진이 빼곡히 걸려있어 문 씨의 나이를 짐작케 한다. “43살 때 처음 의용소방대를 시작했지. 그땐 나도 젊었으니까. 하하. 벌써 17년이 지나, 18년이 다 되어가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의 입에서 옛 추억담들이 하나하나 나오기 시작했다. 불과 함께하는 위험한 일은 119소방대원이 나서고 의용소방대원들은 뒤를 지키다보니 위험천만한 순간은 없었지만 안타까운 일들은 셀 수 없었다.

아직 시골길까지 도로포장이 안 되어 있을 때다. 급한 전화를 받고 홍원리로 출동했던 대원들. 울퉁불퉁하고 좁은 시골길을 대형 소방차가 들어가질 못해 작은 차로 물을 실어 날랐다. 물을 아무리 부어도 꺼지지 않고 불은 점점 세졌지만 직접 들어갈 수는 없고…. 끝내 까맣게 타버린 집을 보며 문 씨는 다음엔 꼭 일찍 도움을 주리라 다짐했다. 3~4년 전 안중에 있는 공장 하나가 폭발했을 때엔 지역에 있는 의용소방대원들이 동원돼 밤낮으로 사건현장을 지켰단다.

문 씨는 포승의용소방대원으로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마을을 아낌없이 지키리라” 다짐했다. 평소엔 농사를 짓고 소방서에서 호출이 오면 바로 뛰어나갔다. “추운 겨울 방한복도 없이 마을 곳곳을 순찰하고 비상근무를 설 땐 정말 힘들었지.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작은 불이라도 나면 펌프질해서 물을 길어 불을 끄기도 했어. 지금이야 늙었지만 그땐 젊었으니까 힘들어도 하나도 안 힘들었어.” 세월이 문 씨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몇 년 전부턴 평택소방서의용소방대 연합회장과 포승의용소방대 대장을 겸직하고 있단다. “이제 나이 60이니 올해까지만 하고 물려줘야지.” 편안한 미소가 얼굴 가득 퍼진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의용소방대가 언제부터 생겨났게? 꽤 오랜 역사가 있어. 소방서에 물어보든가 한번 찾아봐요.”
  
의용소방대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초기까지 자연부락 단위의 자위 소방 활동이 자생적으로 실시되어오다 세종 19년 경상감사의 주청으로 주민 자위활동이 허락됐다.

지방 의용금화조직이 공인되어 각 동리에 재난이 있을 땐 청·장년들이 자력으로 방재활동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에 의용소방대의 시작이란다.  

“그동안 함께 활동했었던 의용소방대가 얼추 3년 전부터 남-녀로 나뉘었어요. 이제는 여성의용소방대원분들이 더 활발해. 요즘엔 화재산불조심 캠페인, 홍보활동 등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육도 받아요. 추석 땐 돌아가면서 당직 서기도 하고 정월대보름엔 순찰을 돌고 꽤 보람되는 일이에요.”

내년엔 모두 훌훌 털어버린 ‘농부’로 돌아간다지만, 오늘도 혹시나 자신을 찾는 전화에 귀를 쫑긋 세우며 일을 보는 문 씨. “5년 더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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