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원 시민기자의 음식 이야기 ④도토리묵과 묵밥

가을철 산길을 걷다 보면 도토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장난감이 부족하던 시절 팽이를 만들어 놀던 친숙한 열매.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한 조상들의 슬픔이 담겨있는 구황식품. 하지만 이제는 묵이나 묵밥재료로 사용되며 자연식품, 저칼로리 식품으로 사랑 받고 있다.
도토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의 식량자원으로 이용되었는데 우리나라도 암사동에서 발견된 신석기 주거지에서 도토리가 20여 알 발견 되었다. 문헌에는 조선 초기 태종 17년 ‘향약구급방’에 기록이 남아 있다. 돼지밤이란 뜻의 저의율(猪矣栗)로 표기 되었으며 훗날 도토리라 불렀다.
도토리는 배고픈 시절을 이겨 내기 위해 먹던 구황식품 중 하나다. 우리나라 산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등 참나무의 열매로 탄수화물이 많이 포함되어 구황식품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구황식품이 아닌 건강식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토리는 60~80%가 녹말이고 타닌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폴리페놀, 아콘산 등이 우리 몸에 좋은 작용을 한다. 도토리의 타닌 성분은 위 점막을 보호해 주고 소화를 돕는다. 또 체내 점막조직의 표면을 수축시켜 주기 때문에 설사를 멈추게 하는 효과도 있다.
지혈작용도 있어 한방에서는 토혈이나 치질, 혈통을 다스린다고 했다. 도토리의 아콘산은 인체 내의 유해성 중금속이나 유해물질을 흡수해 몸 밖으로 배출하는 작용을 한다.
도토리는 다이어트에도 좋다. 도토리로 만든 대표적인 음식 도토리묵은 80%가 수분이기 때문에 먹고 나면 배는 부르지만 칼로리가 낮다. 폴리페놀 성분은 항비만작용이나 지방대사 조절작용이 있기 때문에 몸 안에 지방을 밖으로 배출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활성산소에 의한 산화를 막아 오래전부터 암 예방에도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왔으며 피로회복 및 숙취에도 좋다고 알려졌다.
도토리는 맛이 쓰고 떫기 때문에 그냥 먹을 수 없어 가루를 내어 물에 담가서 떫은맛을 우려낸다. 떪은 맛을 내는 타닌은 수용성으로 물에 녹기 때문이다. 타닌이 녹은 윗물을 버리고 남은 앙금을 모아 물을 넉넉히 붓고 풀 쑤듯이 끓여서 적당한 그릇에 담아 식히면 이것이 바로 도토리 묵이다.
여름엔 도토리 묵밥이 제격
도토리묵 하면 생각나는 것은 묵밥이다. 냉면과 함께 여름철 인기 있는 음식으로 대접에 푸짐하게 담아주는 묵밥 한 그릇은 무더위에 지친 입맛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말랑말랑한 묵 위에 양념장만 얹어도 훌륭한데 김치, 야채, 고명과 시원한 육수가 함께 하니 맛도 풍부하고 여름철에 제격이다. 묵밥을 여름철에만 시원하게 즐기라는 법은 없다. 따끈한 방에 앉아 온육수로 즐기는 묵밥은 추운 겨울 즐기는 별미가 된다.
묵밥에는 도토리묵을 비롯해 메밀묵, 청포묵, 올망대묵등이 사용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도토리묵과 메밀묵이다. 메밀묵은 여름철 장기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날이 선선해지는 가을이나 겨울에 적당하다. 하지만 지역마다 특색이 달라 계절에 관계없이 메밀묵을 팔기도 한다.
묵을 먹기 좋게 채를 썰어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잘 익은 김치나 채소를 넣고 차가운 육수를 부어 갖은 양념으로 간을 맞추면 묵밥이 된다. 육수는 취향에 맞게 쇠고기, 다시마, 멸치를 이용해 만들면 된다. 김치에 미리 참기름을 넣고 버무려 놓으면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묵밥위에 잘게 부셔 놓은 김이나 깨를 뿌려 주어도 좋다.
방송에 도토리로 만든 식품이 건강식으로 소개되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음식이 되었다. 여름철에는 소화기능을 높이고 입맛을 돋우기 때문에 도토리로 만든 식품을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도토리 안에 들어 있는 타닌 성분은 과하면 해가 되기도 한다.
열린한의원 김의근 원장은 “도토리는 성질이 따듯해서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며 “특히 여성들이 다이어트 식품으로 도토리묵을 애용하는데 과다 섭취시 변비로 고생할 수 있으며 몸에 필요한 철분이 위에서 타닌과 결합해 철분결핍성 빈혈 및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