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세안재홍 기념사업회 4회 학술대회

민세 안재홍의 정치사상과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는 학술대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는 민세안재홍 기념사업회(회장:김진현)가 주관하고 국가보훈처·평택시가 후원했다.


서울대 하영선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21세기 신문명의 새 표준은 더 이상 민족주의나 세계주의의 배타적 잣대가 아니라 두 주의를 동시에 품는 복합주의의 잣대다. 일제시기의 대표적 언론인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민세 안재홍은 이미 1930년대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조선의 살길을 민족주의와 국제(세계)주의를 결합한 민세주의에서 찾고 있다. 민세의 복합화 사상은 당대의 국내외 정치 사회역량과 성공적으로 결합되기에는 시대를 앞서 가는 한계에 부딪쳤었다. 그러나 21세기의 복합화주의는 경제위기 이후 질서에서 역사적 실천 가능성을 맞이했다”며 민세의 사회통합, 열린 민족주의 정신을 21세기 한국의 미래비전으로 승화시켜나갈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학술대회 발표문의 요지를 싣는다. (편집자 주)

 


■ 제1발제

민세의 다시리 이념은
21세기 국가경영 지표이자    
우리말 철학하기 선구적 실천
 

▲ 정 윤 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민세는 방법적으로 언어는 생활이념이라 생각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말 속에 담긴 정치적 가치들을 독창적으로 해석했다. 다섯은 우리말로 다사리, 즉 다스림의 원리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말하게 하여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모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어 건강한 복지사회를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민족 고유의 정치개념 혹은 민주주의로 제시한 것이다.


다사리의 정치철학은 첫째 인본주의, 둘째 나에서 나라, 나라에서 누리로 이어지는 자유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다사리 사상의 궁극적 이상은 원진미선(圓眞美善)으로 요약할 수 있는바, 이는 우주 대자연의 궁극적 가치이며, 인류사회의 종국적인 이상이요, 목표로 해방이후 국가건설과정에서는 신민주주의적 신민족주의의 기본이념이다. 다사리 이념은 우리말 철학하기의 선구적 사례로 민세는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민족고유의 정치론과 국가론을 제시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일제 총독정치의 허상을 고발했다. 또한 민세의 원진미선(圓眞美善) 철학은 편협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우주적 생명사상에 입각하여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여기에 해방공간에서 급진적인 혁명이 아닌 점진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한다고 주장한 점은 당시의 국제적 형편을 감안했던 성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사리 이념은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경영에 참고할만한 것으로 향후 한국자유민주주의의 정치적 문제점을 극복 건강한 민주정치가 정착하는데도 꼭 필요한 것이다.

 

■ 제2발제

1930년대 국제정치인식은
역사의식과 비평정신에 바탕
최선에 다가서는 차선의 실천

▲ 윤대식 충북대 우암연구소 전임교수

벽상관(壁上觀)이란 직접 관여하지 않고 앉아서 성공과 실패를 구경한다는 뜻이다. 안재홍의 벽상관은 식민지시대 국외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속수무책의 방관이라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숨 가쁘게 전개되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좌시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역량부재를 한탄한 것일 수도 있고, 지식인으로 대중들에게 현상을 설명하고 계도해야 한다는 책무의 이행일 수도 있다.


해방이전 민세의 사설 자료 등을 검토해 볼 때, 민족주의 진영의 지도자들은 조선의 독립과 해방이 보편적 역사법칙상의 당위적인 것이고 개별 민족사의 추세로도 당위적인 것임을 논리적으로 파악했다고 본다. 당시 안재홍과 민족주의 진영 지도자들은 국제정세에 어둡고 무지했던 것이 아니라 국제정세가 조선의 식민지배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상황의 타개가 역사법칙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임을 명확히 인지했던 것이다. 당시 국내민족지도자들에게 역사의 귀결점은 분명했다. 그러나 당시 열강들이 역사의 정당한 궤도를 벗어난 질서의 재구축이라는 허망한 목표에 전력하고 있었고 이를 바라보는 안재홍은 그들 모두에게 경멸과 냉소를 보여주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민세의 1930년 국제정치논평은 1920년대부터 언론인 사학자로서 활동했던 그의 뛰어난 역사의식과 비평정신에 바탕을 두었기에 정치적 실천지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최선의 차선책이라는 그의 좌우명처럼 식민통치라는 공간적 한계 속에서의 비타협정신의 실천이라는 최선에 다가서는 차선의 실천이라는 치열함도 내재되어있다.

 


■ 제3발제

남북통일 전제조건으로
한국의 군사·경제 우위와
민주역량 축적 강조

 

▲ 김인식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

안재홍은 한민족 분단의 원인이 미소라는 외세의 결정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념, 사상, 체제가 서로 다른 미국과 소련의 전 세계적 대립의 첨단부로 되어있는 국제세력의 연장체로, 민족통일에는 미소의 협조가 절대적이며 특히 소련의 양보가 대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민세는 민족분단의 원인을 분석하고 민족통일론의 가능성을 전망하면서 그 방안으로 무장적 평화해결론, 민주주의 보루론을 내놓았다.


무장적평화해결론은 국제사회에서 미국 블록이 소련 블록에 군사력을 비롯한 제 분야에서 절대 우위를 확보하고 이에 상응하여 남한이 북한에 우세를 점함으로써 소련이 평화해결의 길로 나서도록 유인한다는 방안이었다. 이때 무장은 군사력뿐 아니라 정치력, 경제력을 동반한 민주사회의 결속력을 의미하였다. 민주주의 보루론도 대한민국을 향한 충고로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강조하고 있다.


안재홍은 UN총회가 인정한 대한민국의 적법성이 정통성으로 이어지려면 대한민국이 민족사의 과제를 이행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민중의 지지를 받아 민주역량을 결집시키고 통일 민주국가의 주도력이 되는 정체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민세가 볼 때 제헌의회기 대한민국 정부는 정체성이 취약하다고 생각했고 그 대안으로 진보적 민족주의 진영을 대한민국 민주화의 주도세력으로 설정했다.


안재홍은 이전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간우파와 납북협상을 추진했던 재야우익세력을 중심으로 재야당적 민족주의 진영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이를 통해 여당의 일당독재를 막고 대한민국의 민주역량을 축적하여 민족통일의 주도력과 주체조건을 조성하려 하였다.

정리=황우갑/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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