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2009 약사


◇1996년 <평택시민신문> 창간
9월24일 : 평택시민신문 창간호 발행(타블로이드 배판/4면). 초대 발행인 박남규(전 평택신문 편집국장). 1990년대 초 창간돼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평택신문, 평송신문 등 평택지역 지역신문의 후신으로 ‘지방자치 시대 평택시민의 동반자’ 역할을 자임하며 창간됨.

◇1997년
1월-4월 : 격주간으로 12호 발간됨.
5월 : 발행인 변경(2대 발행·편집인 전진규)
8월-9월 : 15호 발간
11월 : 편집국장 등 보강(편집국장 김기수·정경부장 이종규)
12월 12일 : 16호 발간(98년 3월 20호까지 격주간 타블로이드 배판)

◇1998년
1월 14일 : 평택항 첫 화물선 입항(광양 리더호)
3월 : 21호부터 8면으로 증면발행(격주간)
4월 : 평택항운노조 설립 움직임 확산
6월4일 : 2회 지방선거 김선기 시장 당선(재선)
8월8일 :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23여억 원 피해
8월 : 30호부터 1면 8면 컬러 발행 시작
9월 : <평택시민신문후원회> 결성(후원회장:강정환)

◇1999년
6월 : 45호 발간 이후 11월까지 휴간
12월 : 29일 복간호 46호 발행(1면·8면 칼러/1만부)

◇2000년 법인 전환으로 본격적 신문 발행 시작
1월 : 발행인 변경(발행·편집인 김기수)
3월 : 법인 전환(대표이사 김기수, 주주 10명 이사 9명 감사 1명)
5월 : 27일 평택의 역사와 문화기행 연재시작(김해규 선생)
5월 : 평택동에서 비전동으로 사무실 이전
9월 : 63호부터 월 3회 순간 발행 시작

◇2001년
4월 : <평택시민신문>홈페이지(www.pttimes.com)개통
5월 : 격주간 또는 순간에서 주간발행 시작(타블로이드 배판/8면)
9월 : 지령 100호 발행

◇2002년
2월 : ‘평택의 지명이야기’ 연재 시작.
6월 : ‘6·5동시지방선거 평택시장후보 초청토론회’ 시민단체와 공동 주최 및 보도
9월 : 김기수 본지 발행인 겸 편집국장 독일 지역신문 시찰.
      귀국 후 4회 보도
10월 : 지령150호 발간 및 시민주 증자 모집
10월 : 첫 창간기념행사 가짐 ‘창간 6주년’

◇ 2003년
6월 : ‘미2사단 평택이전 어떻게 볼 것인가?’ 의정부·동두천시 취재 4회보도(양용동 기자)
9월 : 김기수 편집국장 한국기자협회주최 경남 마산 토론회 토론자 참석<‘지역사회 관-언 유착 어떻게 끊을 것인가’>
10월 : 지방자치예산감시방안을 주제로 한 ‘시민예산학교’ 평택흥사단과 공동주최
10월 : 창간7주년기념식 및 미군기지평택이전관련 시민여론조사. 
12월 : 일본 오키나와미군기지 특별취재 후 2회 보도(양용동기자)

◇ 2004년
4월 : 17대국회의원선거 후보자초청토론회 주최
5월 : 바른지역언론연대 본사주관 상반기 연수 (장소:무봉산수련원)
5월 : 6·5재보궐선거 평택시장후보 초청토론회 주최
6월 : 6·5재보궐선거 평택시장후보 초청토론회 시민단체와 주최
6월 : 국회의원 전문 모니터 <여의도통신> 창립. 이사 회원사로 가입
10월 : 245호부터 12면 증면발행 및 섹션화 시작
10월 : 창간8주년 기념식 및 미군기지이전 관련 2차 여론조사

◇2005년
4월 :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채택
4월 : 순천향대신문방송학과 신문제작 실습지원
4월 : 지면평가위원회 구성 (위원 5명)
8월 :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따른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 신문 선정
10월 : 창간 9주년 특집호 발행(28면)
11월 : ‘제1회 평택시민신문배 바둑대회’ 개최

◇2006년
1월 : 지역신문 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 신문으로 2년 연속선정
2월 : 합정동으로 사무실 이전
3월 : 미디어제작국 신설
5월 : ‘제1회 평택시민신문배 클럽대항 볼링대회’ 개최
6월 : 김기수 발행인 <바른지역언론연대> 제4대 회장 취임
9월 : 평택항 활성화 위한 중국 상해항 등 집중 기획취재
10월 : 제6기 임시주주총회 개최
       회사가 발행할 주식의 총수를 5천주에서 1만주로 변경
11월 : 평택촌놈투자전략연구소(대표 정오영)와 마케팅 제휴 계약체결. 창간 10주년 특집호 (36면) 지령 346호 발행

◇2007년
2월 : 지역신문 발전기금 우선 지원 대상 신문으로 3년 연속선정
3월 : 제7기 정기주주총회 개최
5월 : 2016 전망 수립 위한 경영컨설팅 수행
6월 : ‘사랑의 연탄나눔은행’ 활동 시작
6월 : 제2회 볼링대회개최
6월 : 생활폐기물재활용정책 관련 일본 기획취재
8월 :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공생방안 영국등 기획취재
8월 : 김기수 국장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지역신문 연수
10월 : ‘제1회 평택시민신문사기 배드민턴 대회’ 개최
11월 : 새로운 도약위한 특별증자 진행

◇ 2008년
2월 : 지역신문 발전기금 우선 지원 대상 신문으로 4년 연속선정
2월 : 평택항 경계문제 연구회 구성 및 활동
3월 : 30일 ‘제1회 평택시민신문사기 직장테니스대회’ 개최
4월 : 평택시민신문 산악회 결성(대장 최인규 이사)
5월 : 2008년도 연탄 나눔은행 발족식
5월 : 친환경 유기 농업 확산 방안 마련 위한 쿠바 기획 취재
6월 : 제3회 평택시민신문배 볼링대회 개최
6월 : 29일 제4회 평택시민신문배 바둑대회 개최
        (KBS바둑왕전과 함께 진행)
6월 : 쌍방향 매체를 지향하며 시민기자제 운용(연중)
6월 :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공동 추진(평택시립도서관/평택의제21)
7월 : ‘제1회 평택시민신문 주최 가족·학교신문 만들기 대회’ 
11월 : 지자체 갈등 해법 모색 위한 미국 연수 실시
12월 : 지령 450호 발행

◇ 2009년
2월 : 지역신문 발전기금 우선 지원 대상 신문으로 5년 연속선정
3월 : 평택의 역사산책 연재 시작(김해규·장연환 선생)
6월 : 제5회 평택시민신문사배 바둑대회 개최
7월 : 제2회 평택시 가족·학교신문 만들기 대회 개최
8월 : 전면적 지면 개편 단행
10월 : 물 부족 시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기획 취재(프랑스 등)
10월 : 생명의 도시 숲 가꾸기 해외 기획취재(캐나다)
10월 : 사회적 기업과 지역 커뮤니티 해외 기획취재(벨기에 등)
11월 : 제3회 평택시민신문사기 배드민턴 대회 개최
11월 : 제5회 평택시민신문사배 클럽대항 볼링대회 개최
12월 : 2일 창간 13주년 및 지령 500호 기념호 발행
12월 : 4일 창간 13주년 및 지령 500호 기념식 진행

 

초창기 경영편집어려움 딛고 주간 발행 정착

■ 1996
지역언론 맥 이으며 9월 창간
송탄관광특구 지정 쟁점으로

<평택시민신문>은 1995년 5월 옛 평택군과 평택시, 송탄시가 하나로 통합된 이후 1년 여가 지난 96년 9월에 창간되었다. 96년 창간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안중신문, 평택신문, 평송신문 등의 뒤를 잇는 평택 지역언론의 맥을 잇는 신문으로 인정되었다. 초대 발행인 박남규씨는 구 평택신문의 편집국장으로 오래 재직했었다. 평택시민신문이 첫 발행된 96년도에는 송탄관광특구 지정 문제가 하반기 주요 쟁점사안으로 부각됐다.

 

■ 1997
발행인 교체 등 우여곡절
통합 시청사 위치선정 현안

1997년은 평택시민신문의 발행인이 박남규씨에서 전진규씨로 교체되고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연말에 새롭게 진용이 갖추어 지면서 신문 발행을 새롭게 시작하는 한해였다. 지역적으로는 95년 3개 시군 통합 이후 통합 평택시청사의 위치 선정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하고, 안성시가 평택-안성 톨게이트에서 ‘평택’자를 철거해 양 도시간의 앙금을 남기게 한 해였다. 또한 연말 IMF 경제 난국을 맞아 경제살리기에 평택시민이 모두 나섰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 1998
격주간 발행 현안 집중보도
평택항에 화물선 첫 입항

1998년부터 비교적 <평택시민신문>이 발행주기를 격주간으로 갖추면서 지역현안에 대한 보도도 체계적·집중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는데, 98년도는 평택항에 최초로 화물선이 입항하면서 평택항 시대의 개막을 본격적으로 알린 첫 해라고 볼 수 있다. 이어 인천항운노조에서 평택항운노조를 분리시키기 위한 평택항운노조 설립 움직임이 확산돼 지역내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또한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돼 김선기 시장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 해였고, 에바다 농아원 원장의 공금횡령 사건으로 비롯된 재단이사진 선임 갈등이 본격화된 첫해이기도 했다.


평택시민신문은 98년도 10대 뉴스를 선정하며 △평택항운노조 설립파문 확산 △6·4 동시 지방선거 실시와 김선기 시장 재선 △에바다 사태 혼미 계속 △집중호우피해 등을 다루었다.

 

■ 1999


6개월 휴간 아픔…연말 복간
민세 기념사업 운동 시작

1999년은 평택시민신문이 하반기에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6개월간 휴간하는 아픔이 있던 해였다. 이 어려움을 딛고 <평택시민신문>은 대망의 2000년을 앞둔 연말에 다시 복간호를 내며 이후 한 번도 휴간이나 결호를 낸 적 없이 지금까지 꿋꿋하게 신문을 발간해 오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평택항운노조 설립을 잠정 합의한 것이 기억될 만한 이슈였으며, 2009년 현재 평택의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부각된 민세 안재홍 선생을 기리는 기념사업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 해였고, 안중공단 백지화로 공업용수관이 무용지물화해 국가재정 20억 원이 땅속에 사장될 우려가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또한 추팔공단 분양률이 저조하다는 것과 쌍용자동차 파업 관련 기사등 주로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지역경제관련 기사가 많았다.

 

■ 2000
주식회사 전환…발행인 김기수씨
서해대교 개통·에바다 사태 파문

2000년은 창간 후 3년여 기간의 모색기와 부침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도약하는 첫 해로 기억될 만하다. 1월에 발행인이 김기수 현 발행인으로 변경된 이후 3월에 자본금 5천 만 원의 주식회사로 전환돼 열악한 지역신문의 재정적 안정을 함께 모색할 10명의 이사진이 구성되었다. 이어 5월에는 평택동의 옥탑방 3평 남짓한 더부살이 살림에서 비전동 20여 평의 사무실로 옮기는 비전동 시대를 열며 사무실 이전 기념식을 가졌다.


이 시기 평택지역 사회는 4·13총선에서 민주당 원유철·정장선후보가 갑·을 선거구에서 당선돼 세대교체와 정치권의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나타났고, 평택지역에서도 총선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운동도 거세게 일었다. 또한 민자사업자의 참여 포기로 개발이 불투명한 평택항 2단계 동측부두 3선석이 정부개발사업으로 확정돼 활성화의 계기가 마련됐다.


이밖에도 에바다 사태, 포승공단 산업폐기물 소각장 파문, 집중호우 피해, 민세 안재홍선생 기념사업회 창립, 서해대교 개통 등이  2000년도 평택시민신문 10대 뉴스에 선정됐다.

 

■ 2001
주간 발행…5년만에 지령 100호
시의회 의장 뇌물공여 법정구속

2001년도는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본격적인 주간발행 체제를 갖춰 9월에 드디어 지령 100호를 발행하게 된 해였다. 이 시기 평택사회는 매우 요동쳤다. 무엇보다 다이옥신 파문으로 평택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금호환경 사태가 발생했고, 현재까지도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평택항과 당진항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다. 또한 평택시의회가 시 의장 선출을 둘러싸고 현직 시의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법정 구속돼 시의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해였고, 이마트 개장으로 재래상권 위축이 본격화된 반면, 평택항에서 카페리가 취항해 평택항의 미래를 밝게 해 준 해였다.


2000년도 <평택시민신문> 10대 뉴스 제목은 다음과 같다.
△금호환경사태 △‘당진항 분리 지정’ △시의장 구속 등 시의회 비리파문 △에바다사태 혼미계속 △평택호 예술관 개관과 백남준비디오아트특별전 △이마트개점과 재래상권 위축 △쌀값하락과 평택쌀살리기운동 △장애인복지회관 신축부지 확정 △평택항 카페리 취항 △주한미군공여지 41만평 추가 확정 

 

■ 2002
평택 지명 이야기 연재 시작
안중읍 승격…최은창 옹 타계

2002년은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5년이 넘게 연재되고 책으로도 출판된 한광여중 김해규 선생님의 ‘평택의 지명 이야기’가 2월부터 연재된 해이다. 신문사로서는 지령 150호를 넘기며 안정적 운영을 이어가면서 증자를 통해 시민주를 모집하고 연말에는 창간 6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창간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다. 이후 창간 기념행사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002년 평택사회 역시 역동적인 한해였다. 지역의 가장 큰 이슈였던 금호환경 다이옥신 오염문제가 환경부의 개입으로 해결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정치권에서는 6·13지방선거에서 김선기 시장이 허남훈 전 환경처 장관을 누르고 3선에 성공했으나 공무원을 동원한 사전 선거운동혐의로 기소돼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편, 사회적으로는 평택항 개항과 포승국가공단의 배후도시로 각광받는 안중면이 읍으로 승격돼 서부지역의 거점도시로 부각되었으며, 평택∼음성 간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되고, 평택농악 큰 별 최은창 옹이 별세했다. 

 

미군기지 이전 여론조사 선거후보 초청 토론

■ 2003


미군기지 이전 전국현안 떠올라
평택시민 여론조사 결과 발표

2003년은 용산미군기지와 전방2사단을 모두 평택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이 평택지역을 뒤흔든 최대의 현안으로 부각된 한해였다. LPP(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의해 송탄과 팽성 땅 74만평이 미군기지로 추가 제공되는 상황에서 4월과 6월 용산기지 뿐 아니라 전방 2사단까지 평택으로 이전키로 한·미 당국이 합의하고 약 320만평이 더 제공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평택 사회는 극심한 찬·반 양론에 휩싸이고 팽성읍 대추리 주민들과 ‘미군지지확장반대 대책위’를 중심으로 평택이전을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가 계속됐다.


김선기 전 시장이 2004년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시장직을 사퇴했으나,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총선행보는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이밖에도 <평택시민신문>은 △경기도의 일방적 국제평화도시 발표 △재건축 및 투기 바람 ‘광풍’ △현덕면 하수종말처리장 주민반발 △쌍용차 해외매각 본격화 △평택해양수산청 개청 △에바다 사태 해결 실마리 찾아 등을 2003년도 주요 뉴스로 선정했다.

 

■ 2004
국회의원·시장 후보 초청 토론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 격화

2004년은 평택시민에게는 정말 다사다난했고 긴 한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진행된 미군기지 평택이전은 한해 내내 지역사회를 요동치게 했고, 국회의원선거와 시장 재선거 등 굵직한 두 개의 선거를 치르며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기도 했다.


또한 온 나라의 경기침체 영향으로 서민들의 주머니가 꽁꽁 얼어붙으며 IMF보다 더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사벌 개발 등 대규모 택지개발 발표로 지주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지역개발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지기도 했다. 지하철 개통이 눈앞에 다가오고, 고속철 평택유치가 확정되는 등 미래 평택을 위한 소중한 전기가 마련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 한해였다.


무엇보다 평택항 경계분쟁에서 패소함으로써 2004년은 평택으로서는 매우 뼈아픈 기억이 남는 한해였다. 한마디로 2004년은 적어도 평택의 향후 10여년 이상을 규정할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한 한 해였다고 볼 수 있다.

 

▶평택항 경계분쟁 패소=무엇보다 가장 뼈아픈 것은 9월23일 헌법재판소에서 당진군과의 평택항 경계분쟁에서 패소한 것이다. 서부두 관할권이 당진군에게 있다는 판결로 평택은 헌재 패소에 따른 책임론이 대두함과 동시에 향후 건설될 내항을 당진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차분히 2차 경계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타났다. 또한 평택시와 당진군이 상생협약을 체결하려하자 지역시민사회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은 열린 우리당, 시장은 한나라당=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태 이후 치러진 4·15총선에서 평택은 열린 우리당의 정장선 후보와 우제항 후보가 각각 한나라당의 김홍규 후보와 원유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어 열린 김선기 전 시장의 당선무효형 확정 이후 치러진 시장 재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송명호 후보가 열린 우리당의 윤주학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미군기지 반대운동 격화=미군기지 평택 확장이전을 반대하는 팽성과 서탄주민, 시민단체 중심의 평택시민들의 반대운동도 한해 내내 거센 물살을 탔다. 특히 미군기지이전에 따른 특별법 공청회가 무산된 이후 국방부와 미군기지수용예정지 주민들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된 양상을 보였다.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와 시민단체들이 미군기지이전에 따른 평택지원특별법 공청회를 무산시킨 날(9월1일)부터 시작한 촛불행사가 어느덧 12월9일 100일째를 맞이했다.


미군기지반대에 선 주민들은 용산기지 이전 국회 통과에도 불구하고 “미군기지 확장을 막기 위해서라면 100이 아니라 1000일이 되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히고 있어 내년도의 거센 격랑을 예고했다.

 

<평택시민신문>은 총선과 시장 재선거에서 후보자 초청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양대 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정확하고 공정한 선거 정보를 전달하는 한편,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서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평택시민이 더 많다는 2번째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해 정부 당국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본사가 소속되어 있는 전국 40여개의 풀뿌리 지역언론 네트워크인 (사)바른지역언론연대의 연수를 본사가 유치해 평택 무봉산수련원에서 연수를 갖기도 했다.

 

■ 2005
지역신문 우선지원대상사 선정
전철 개통…기지 반대 촛불집회

2005년 역시 현안이 많았다. 미군기지 평택이전 문제는 여전히 평택사회의 가장 중요한 뉴스거리였다.
특히 연말 국방부의 수용재결에 의한 매수절차가 마무리되며 팽성지역 토지에 대한 강제수용을 눈앞에 두고  있어 긴장감이 높아가는 한편, 미군기지 이전 특별법에 의한 지역진흥계획과 국제평화도시 계획안이 발표되어 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비판도 일어났다. 또한 전철개통으로 서울까지 생활권역이 되면서 시민들의 생활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땅값 폭등으로 지역사회가 개발 기대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평택시민신문>이 선정한 10대 뉴스를 중심으로 2005년을 돌아 보자

 

▶기지확장 반대운동 갈수록 확대=미군기지 토지수용에 반대하는 운동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어 2006년초로 예상되는 정부의 ‘강제수용’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팽성지역 토지 수용반대 주민 촛불집회가 다음해 1월14일 500일 맞았다. 7월10일에는 대추리 일대에서 전국에서 운집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미군기지 확장반대 제1차 범국민 평화대행진이 개최되었고, 이날 경찰의 과잉 폭력진압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또한 12월11일에는 평택역 앞에서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약 5000여명이 모여 제2차 평화대행진을 진행한 바 있다. 한편, 강제수용에 반대하는 평택사회 1000인 선언이 발표되어 강제수용에 반대하는 지역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해 지고 있다.


▶평택지원 특별법 공포 및 지역진흥계획 발표=2004년 연말 제정된 평택지원 특별법이 4월1일 시행령 제정으로 시행에 들어갔으나 지역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냉냉했다. 특별법에서 밝히고 있는 평택지원 사업에 정부 재정 지원의 강제조항이 없어 정부의 평택지원 의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러한 가운데 12월5일 지역진흥계획 확정안이 발표되었다. 총 18조8천억 원에 달하는 큰 규모다. 또한 22일에는 고덕면 일대 539만평에 달하는 국제평화도시안도 발표되었다. 시 당국과 정부는 평택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지역진흥계획은 실제 정부지원규모는 2조원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이미 확정된 계획을 짜깁기하거나 민간이나 공공부분의 사업으로 정부의 실제 지원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일었다.


▶시, 각종 기관과 잇따른 전략적 협약체결=2005년도에는 유난히 평택시가 체결한 각종 협약이 많았다.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도시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한 포석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협약의 실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많았다.


9월15일 토지공사와 ‘난개발방지 및 계획적 개발을 위한 평택시 지역종합개발사업’ 기본협약체결 조인식을 가졌다. 9월27일에는 미국 미주리주립대와 교류협력 체결식을 갖고 각각 도시개발, 농생명분야 등 다방면의 협력을 추진키로 했다. 또한 11월4일에는 중국 대련시의 화흥기업집단유한공사와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에 앞서 5월18일에는 경계분쟁 등으로 소원했던 당진군 상생발전 협약식을 갖고 평택항을 중심으로 공동발전을 도모키로 했다.

 

한편, <평택시민신문>은 4월에 지역언론으로서의 윤리성과 정체성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을 채택하고 지면평가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김기수 발행인이 (사)바른지역언론연대 부회장 및 대외협력위원장에 선임되어 지역언론의 대외 연대활동을 강화해 나갔다. 8월에는 지역신문육성지원특별법에 따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 국가기금을 우선 지원받을 수 있는 2005년도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되면서 기획취재 등에서 국고를 지원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
11월에는 <제1회 평택시민신문사배 바둑대회>를 개최하고 지령 300호를 돌파하였다.

 

■ 2006
사무실 이전 미디어제작국 신설
지역개발사업 잇달아 발표돼

2006년 국가 사회적으로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 지역경제 역시 매우 어려운 한해를 보냈다.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2006년도 상반기 평택을 달군 지역언론의 주요 뉴스가 되었고, 특히 5월 대추분교 행정대집행을 전후해 미군기지 평택이전 문제는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정부는 기지 이전을 늦출 수 없다며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았지만, 정작 연말에는 미군기지 평택이전이 5년간 늦추어진다는 이율배반적인 발표를 해 평택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편, 국제평화신도시, 18조8천억 원의 지역개발계획이 사업 첫해를 맞아 본격화되면서 지역사회는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혼란과 지역개발사업으로 인한 도시개발 호재라는 상충되는 가치가 혼재하는 사회가 되었다.

 

<평택시민신문>이 선정한 10대 뉴스를 통해 2006년 한해를 되돌아보자.
△주민에게 상처 남긴 기지이전 사업 △지방선거 4선·민노당 의원 최초 배출 △평택항 개발 난항 항만우선 정책으로 선회해야 △인구 성장세 계속…매월 1000명씩 늘어 △국방부, 기지이전 5년 연기 시사 △쌍용차 파업과 노조 간부들 비리로 구속 △안성천 하천 정비로 홍수피해 해방 △평택농악 지역을 넘어 세계무대로 풍덩 △역동적 잠재력 도시브랜드 ‘슈퍼평택’ 선포 △국제화지구지정과 쏟아지는 민간개발 추진 등이었다. 이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주민에게 상처 남긴 기지이전 사업=미군기지 이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국방부는 4월 두 차례에 걸쳐 경찰병력과 용역을 앞세워 주민들을 고립시킨 뒤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역으로 통하는 농수로를 모두 폐쇄했다. 또한 5월4일에는 1만2천여 명의 경찰과 3000여명의 군 병력을 동원해 대추분교를 철거하고 주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설치했다.

 

▶국제화지구지정과 쏟아지는 민간개발 추진=건교부가 9월 528만평을 국제화계획지구로 지정한다고 발표하자 지역사회는 기대와 우려, 주민 반대 등으로 술렁댔다. 옛 도심의 슬럼화 방지 대책 필요성도 제기됐지만, 각종 민간제안 도시개발 사업도 활발히 추진됐다. 평택 용이지구가 토지보상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고, 모산지구, 영신지구, 안중화양지구, 세교지구 등 구시가지와 연접된 지역 곳곳에서 조합을 결성해 도시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소사벌지구는 7월 말 경기도로부터 개발계획승인이 된 이후 토지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1월부터 개별보상 통지와 함께 토지보상에 들어갔다. 이처럼 지역 곳곳이 개발의 물결에 휩싸임과 동시에 땅값도 덩달아 고공행진을 지속한 한해가 2006년이다.

 

한편, <평택시민신문>은 1월 2년 연속으로 문화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지역신문 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됐고, 2월에는 사무실을 비전동에서 현재의 합정동 사무실로 이전하며 개소식을 가졌다. 3월에는 미디어제작국을 신설하고, 5월에는 제1회 평택시민신문사배 클럽대항 볼링대회를 개최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6월에는 김기수 발행인이 (사)바른지역언론연대 제4대 회장에 취임해 임기 3년의 회장 업무를 시작했다.


이어 9월에는 평택항 활성화를 위해 중국 상해항등 중국의 주요 항만을 집중 취재 보도해 주목을 받았으며, 11월에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특집호 발행과 더불어 창간 10주년 기념식을 성황리에 개최하며 명실상부한 평택지역의 대표언론으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

 


지발위 지원 5년 연속 선정 재도약 기틀 다져


■ 2007
사랑의 연탄나눔은행 사업 시작
인구 40만 돌파…토종극장 문닫아

600년 만에 찾아온다는 황금돼지해가 시작된 2007년 새해 벽두부터 평택지역은 숨 가쁘게 시작됐다. 협상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따른 수용지역 주민들이 국방부와 마주 앉아 협상을 시작했고, 대추리와 도두2리 마을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런가 하면 한미자유무역 협상이후 평택쌀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상륙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이렇게 시작된 평택의 한해는 미군기지 이전 관련 평택지원 특별법의 시행령 개정이라는 성과와 ‘황해경제자유구역지정’이라는 소식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평택시민신문>이 두 차례의 편집회의를 통해 선정한 10대 뉴스는 다음과 같다. △특별법 개정안 시행령 등 통과 △인구 40만 명 돌파 △이주 협상과 미군기지 공사 기공식 △공업물량 배정과 평택지방공사 설립 △‘알파탄약고’ 시민 제안으로 일부 존치 △솟대로 희망 본 실버문화 전국서도 ‘으뜸’ △계획인구 80만 명 결정에 도시개발 멈칫 △ 황해 경제자유구역 지정 △토종극장 역사 속으로 사라져 △슈퍼오닝 농특산물 판매 약진 등이다.

 

▶인구 40만명 돌파=평택시 인구가 6월25일 40만 명을 넘어섰다. 1995년 5월10일 3개  시군 통합 당시 34만6142명이던 인구가 12년 1개월15일 만에 5만3858명 증가한 것이다. 2004년까지 인구증가율이 2% 미만으로 연 5천명 늘어나는데 머물던 인구는 안중읍 현화택지지구, 장당ㆍ이충택지지구가 분양에 들어가면서 2005년부터 3% 중반대의 증가율을 보이며 40만대 고지에 올라섰다. 11월말 현재 인구는 40만1763명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앙동이 가장 인구가 많은 법정동이 됐으며, 그 뒤를 안중읍, 2006년까지 관내 최대인구를 자랑했던 비전2동은 3위로 떨어졌다. 앞으로 소사벌택지지구개발, 고덕국제화지구개발, 황해경제자유구역 추가 지정 등 대규모 개발이 잇따라 예정돼 있어 2010년대엔 인구 80만 시대를 맞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 최근의 경기침체로 이러한 전망이 현실화될지 염려가 커지고 있다.


▶이주 협상과 미군기지 공사 기공식=4년여 동안 진통을 거듭해 오던 미군기지 확장이전 문제가 2월 중순 정부(국방부)와 팽성읍 대추리 주민들의 합의로 일단락 마무리됐다.


양측은 40일 동안 12차례나 만나 이주협상을 벌인 뒤 2월13일 이주단지조성과 생계유지대책 등 24개항에 합의했다. 이후 국방부는 곧바로 마을을 철거하고 기지성토공사를 시작했다. 기지확장 공사를 진입로를 개설한 국방부는 11월13일, 말끔히 깎아낸 대추마을 터 복판에서 김장수 국방부 장관과 버시바우 주미대사 등 1200여명을 초청한 뒤 미군기지건설 기공식을 가졌다.

 

▶황해 경제자유구역 지정=12월21일 경기도와 충청남도가 신청한 황해경제자유구역이 대구·경북, 전북과 함께 추가로 지정됐다.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민간평가단의 평가결과 황해경제자유구역은 외자유치를 위한 지자체 단위의 인센티브(지방세 감면, 임대단지 조성, 토지 무상임대) 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종극장 역사 속으로 사라져= 9월 30일 오후 7시 상영을 끝으로 평택극장이 간판을 내리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던 토종극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로써 반세기가 넘도록 시민과 함께 울고 웃으며 애환을 함께 했던 단관 토종극장은 추억 속에만 남아있게 됐다. 평택의 토종극장 역사는 옛 송탄시에서 50년대 초 서정극장(현 캐피털호텔 자리)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이후 삼보극장(현 중앙시장 내), 제일극장(현 송북극장 옆) 잇따라 문을 열었다. 옛 평택시에 극장이 들어선 것은 평택극장이 개관한 60년대 초반.


이후 지난 8월 문을 닫은 중앙시네마타운이 83년에 개관하고, 이어 평안극장, 박애병원 옆쪽으로 비디오 극장으로 불리던 태양극장, 국도극장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토종극장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전철 개통(2005년 1월)과 롯데시네마, 프리머스 등 현대식 복합 상영관이 문을 열면서 휘청거리다 시내 인근에 또 다른 대형 극장 체인이 개관하자 회복불능의 상황이 됐다.

 

한편, 평택시민신문은 2007년도에도 3년 연속으로 지역신문 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되었으며, 5월에는 비전 2016 전망 수립을 위한 경영컨설팅을 수행해 향후 일간지로 발전할 수 있는 전망을 세우나갔다.


또한 6월에는 사랑의 연탄나눔은행 운동을 평택시사회복지협의회와 ‘연탄길’과 함께 공동주관하며 나눔의 실천에도 앞장서가고 있으며, 각종 현안에 대한 심층 보도에 더해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공존방안 모색, 생활폐기물재처리 방안 효율화 등을 위한 해외 기획취재와 미국의 지역언론 현황 연수 등 지역 현안과 지역언론 발전을 위한 각종 취재와 연수를 실시해 신문의 질적 수준과 경쟁력을 키워갔다.


또한 11월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특별증자를 실시해 자본금을 2억8천여만원으로 늘렸고, 12월에는 지령 400호를 발행하게 되었다.

 

■ 2008
한도시 한책 읽기 운동 시작
쌍용차 위기 지역경제 침체

2008년도에는 장밋빛 미래를 위해 질주하던 ‘평택호’에 여기저기서 빨간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 한해였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으로 새롭게 들어선 정부 정책의 변화와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지역사회의 각종 추진 현안들에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한 한해로 이 여파가 2009년인 현재까지 미치고 있어 지역사회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한해가 되었다. 특히, 쌍용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과 고덕신도시의 개발 지연설 등으로 뒤숭숭한 한해를 보내게 되었다. 정치영역에서는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 결과 원유철(평택갑 한나라당), 정장선(평택을 민주당)의원이 3선 고지에 성공했고, 송명호 시장은 소사벌지구 개발과 관련된 토지의 도로 편입과 관련된 ‘특혜 시비’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평택시민신문>은 2008년도 한해의 주요 뉴스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다.
△시민들 원유철·정장선 3선 중진 의원 선택 △평택 미술계 대부 죽리 조성락 화백 별세 △고덕신도시 등 지역개발 연기 도미노 △쌍용차 본격 위기 시작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축산농가 홍역 △시민독서운동 ‘한 책 하나 되는 평택’ 출범 △‘즐겁게 투명하게’ 기부문화의 새로운 흐름 △기지이전 또다시 연기…일부지역 술렁 △지명이야기 완간 등 향토사 정리 성과 △도로개설문제로 송명호시장 곤혹 치러 등이다. 이중 일부를 살펴보자.

 

▶평택 미술계 대부 죽리 조성락 화백 별세=평생을 담백하고 은은한 색으로 목화만을 고집했던 동양화가 죽리 조성락 화백이 5월24일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평택 미술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평택미술계의 산증인이라고 불린 죽리는 47년간 뒤돌아보지 않는 동양화의 외길인생을 걸어왔으며 77세 타계 전까지 고령의 연령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는 작품 활동과 평택 미술계 성장에 큰 힘이 되어 왔으며 그 공로가 인정, 평택시에서는 최초로 문화예술인장으로 영결식이 올려졌다.

 

▶고덕신도시 등 지역개발 연기 도미노=세계금융시장의 불안과 국내 부동산시장의 불안 등의 여파로 인해 어느 지역보다 개발사업이 많았던 평택이 잔뜩 움츠려지고 있다. 청북택지지구의 미분양 사태는 건설회사의 공사 중단으로 이어졌고, 예전 같으면 벌써 공사착공에 들어갔어야 할 소사벌지구도 조용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덕국제신도시의 보상도 연말에서 2009년 하반기로 연기되는 등 지역의 각종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를 두고 인구유입원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평택에서 택지공급을 무리하게 했다는 분석과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의견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중에 평택시는 신장동 일원과 안정리 일원을 뉴타운지구로 지정했다. 다음해에는 남평택과 안중읍 구시가지 일원을 뉴타운지구로 추가시킬 예정이다.

 

▶ 쌍용차 본격 위기 시작=쌍용자동차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으며, 연말부터 지역사회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상반기 경유가의 고공행진으로 극심한 판매부진에 시달리다 국제 금융 위기의 여파에 휩쓸리며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했다. 노조는 현재의 위기상황이 모기업인 상하이차가 기술유출에만 골몰하고, 애초 약속했던 1조2천억 원 투자나 독립경영, 독자 브랜드 유지, 신차개발 등에는 무관심한 결과에서 비롯됐다고 회사측을 비난하고 있다. 상하이차는 한국정부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자금지원 약속부터 지키라는 냉담한 반응에 앞날은 더욱 불투명한 상황이다. 평택 최대의 기업이 휘청거리면서 지역경제 역시 한파에 떨고 있다. 쌍용차는 결국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돼 지역사회의 최대 이슈로 부각되게 된다.


 
▶‘즐겁게 투명하게’ 기부문화의 새로운 흐름=지역사회에 새로운 기부문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평택시사회복지협의회·쌍용자동차 연탄길과 <평택시민신문>이 공동으로 발족한 평택연탄나눔은행은 2007년 4500만 원, 2008년 5천만 원의 기부금을 모으며 대표적인 사회복지기금으로 자리 잡았다. 또 관내 23개 사회복지시설·기관·단체가 연합해 처음 시도한 제1회 평택시민 나눔문화축제는 4천만 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아내며 주목을 받았다. 평택연탄나눔은행과 나눔문화축제는 지역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평택시민신문>은 지역현안에 대한 적극 보도와 함께 2월 제2차 평택항 경계분쟁에 대비한 연구모임인 ‘평택항 경계문제 연구회’를 구성해 연구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3월에는 직장대항 테니스 대회를 신설해, 바둑대회·볼링대회·배드민턴대회에 이어 테니스 대회까지 개최하게 돼 생활체육대회를 4개 종목으로 확대해 지역 생활체육 활성화에 앞장섰다.


6월에 개최된 제4회 평택시민신문사배 바둑대회는 KBS의 바둑왕전과 함께 진행돼 바둑대회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또한, 6월부터는 쌍방향 언론을 추구하며 시민기자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평택지역에서 책을 일고 토론하며 지역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평택시립도서관과 평택의제21과 함께 전개하기 시작했다. 7월에는 미래 독자들인 지역의 학생들과 가족을 위한 제1회 평택시 가족·학교신문 신문 만들기 대회를 개최했다.

 

■ 2009
시민기자 활성화 지면개편
쌍용차 정리해고 장기 파업

2009년은 쌍용자동차 법정관리와 장기 파업으로 인한 여파가 지역사회를 크게 강타한 한해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로 인한 국내 경기 침체와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더해져 쌍용차 대주주인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고, 2600여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노사가 극심한 대립을 겪으며 77일의 장기파업이 진행됐다. 다행히 노사정 대타협으로 파국은 피했으나 장기파업에 따른 후유증과 2000여명이 넘는 희망퇴직자들과 해고자들로 인해 지역경제에 큰 그림자를 남기게 되었다. 또한 고덕신도시 사업이 지연되고 보상이 년내에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해져 고덕신도시 사업 연내 추진 여부가 큰 이슈로 부각됐다. 다행히 지역 정치권의 미군기지 이전과 연계한 적극 대응으로 연내 보상이 가닥을 잡았으나, 연말이 되어 다시 재 연기 내지 백지화 등이 거론되면서 지역사회 여론이 술렁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평택역 민자역사인 에이케이(AK)백화점과 합정동 롯데마트, 장당동 홈플러스 등 대형 매장이 동시에 개점해 지역 상권이 극심한 침체에 빠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론, 평택항의 랜드마크인 마린센터가 준공돼 평택항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실크로드 메이어스 포럼과 G2 포럼등 대형 행사들이 평택에서 열려 지역발전에 희망적 계기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한해이기도 했다.

 

<평택시민신문>은 올 한해도 5년 연속 지역신문발전 기금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되는 등 지난해에 이어 지역 현안에 대한 일상적 보도에 더해 시민기자제도가 정착되고, 신문 지면이 대폭적으로 개편되어 독자들에게 더 친근한 신문으로 다가서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시민기자제도를 통해 역량 있고 전문성 있는 필진이 보강되면서 지면이 더 풍부해졌다.

 

■ 지령 500호를 맞으며
평택시민신문은 지난 13년간 지역사회의 변화 한 가운데 있으면서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해 왔다. 올해는 어려운 경기침체 국면에서, 쌍용차의 대타협을 위해 주민과 함께 힘을 모았으며, 고덕신도시 사업의 연내 실시를 위해서 정치권·시민과 함께 힘을 모으기도 했다. 이와 같이 평택시민신문은 평택시민의 편에 서서 지역 발전과 지역 사회의 통합을 위해 노력을 해 왔다. 이제 창간 13주년과 뜻 깊은 지령 500호 발행을 맞아 앞으로 더 분발하고 더 정진하고, 더 시민과 가까이 하는 신문으로 성장할 것을 다짐해 본다. 지금까지 평택시민은 어려움을 잘 극복해 오고 갈등과 대립의 요소들을 지역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만드는 슬기를 보여주어 왔다. 앞으로도 평택시민신문은 부족한 역량을 보강하면서 지역의 발전과 지역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성원과 적극적인 지도 편달을 당부 드린다.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