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찬 선 머니투데이 기자

옛날 농촌 마을의 한 집에서 불이 나 기르던 돼지도 타 죽었다. 집 주인은 평생 모은 가재도구가 한 줌의 재로 변한 것을 보고 무척 애통해 했다. 울 다 지친 그는 불에 구워진 돼지를 발견하고 한 입 먹어보고 기가 막히게 맛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위로하기 위해 왔던 동네 사람들도 한 점씩 뜯어 먹었다. 그 뒤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맛있게 구운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 일부러 불을 놓은 것이다. 빈대를 잡는 것도 아니고, 구운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 방화를 하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원인(실화, 失火)과 결과(구워진 돼지고기)에 혼란을 일으켜 돼지고기를 익히기 위해 잘못된 처방을 내린, 인지함정의 대표적인 예다.


바보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느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맥나마라 오류’는 그런 의문을 가시게 한다. 베트남 전쟁을 기획하고 진두지휘한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장관은 1962년 베트남을 방문, “우리의 계량 평가는 미국이 승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5만8000여명의 미군 전사자를 내고 폭탄을 비 오듯 퍼부었지만 ‘절대 질 수 없는 전쟁’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이는 맥나마라가 정글과 ‘베트남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등, 전쟁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요소를 제대로 계량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첫째, 쉽게 측정되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임의의 값을 매겼다. 가사노동이나 부모의 간병 및 봉사활동처럼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지만 시장가격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것을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GDP(국내총생산) 산출과 똑같은 오류다. 독일이 영국보다 잘 사는 이유는 영국은 텃밭이 딸린 주택에 살면서 야채를 키워 먹지만, 독일은 아무것도 없는 아파트에 살아 모든 것을 시장에서 사야 하기 때문이라는 비아냥도 비슷한 지적이다.


둘째, 쉽게 측정되지 않자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했다. 잘 익은 포도를 따 먹으려다 실패한 여우가 저건 틀림없이 시고 맛도 없을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셋째, 측정하기 어렵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무시했다. 사냥꾼에 몰린 타조나 꿩이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으면 머리를 모래 속에 박는 것과 비슷한 자멸행위다. 첫돌이 갓 지난 아기에게 장난감을 줬다가 옆으로 치워놓으면 그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버드대학교 조교수와 포드자동차 사장을 지낼 정도로 똑똑했던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저지른 것은 ‘거울이미지의 함정’에 빠진 탓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려고 할 때 거울이미지 함정에 빠지고, 일을 그르치게 된다. 이런 경향은 성공한 경험이 강한 사람이 환경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성공법칙’을 고수하려고 할 때 쉽게 나타난다.


거울이미지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상대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정이입(感情移入)이 필요하다. 바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상대방이 옳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겸손과 내가 옳고 옳은 것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열정과 자신감이 동시에 필요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부인이 죽은 뒤 음악도 잃고, 7명의 아이를 군인처럼 키웠던 폰 트랩 대령의 거울을 깨뜨린 것은 마리아의 자유분방한 열정과 사랑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3분기 GDP가 2.9% 성장했고, 경제 위기 때 892까지 폭락했던 코스피도 1500선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지표만으로 볼 때는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처럼, 위기가 완전히 극복됐는지는 의문표가 붙어 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사색(思索)도 깊어간다. 2010년을 준비하는 지금,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거울이미지 함정에 빠지는 맥나마라 오류에서 벗어나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사색에 빠져보자. 정말 중요한 문제를 측정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내가 변하면 마누라와 애들도 바뀌며, 사회와 나라도 변한다. 

이 글은 기사 제휴를 맺고 있는 <머니투데이>에 함께 실립니다.

홍 찬 선 머니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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