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 한 책 읽기 릴레이 기고 - 54

▲ 김해규<한광중학교 교사>

김 해 규<한광중학교 교사>

나의 유년시절은 참 궁핍했다. 골방 구석에 놓인 쌀독은 항상 바닥을 보였고 쌀밥은 명절에나 맛보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전기불은 고사하고 버스도 들어오지 않아서 초등학교에 가려면 십리가 넘는 길을 걸어 다녀야 하였다. 휘적휘적 학교에서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풀이 무성한 고구마 밭과 그물손질, 겨울에는 해태양식이었다. 모든 것이 귀했던 시절을 더욱 못 견디게 한 것은 읽을거리의 부족이었다. 나는 읽을거리가 그리울 때마다 국사책과 국어책을 뒤적였다. 교회에 열심히 나간 것도 들을 거리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종례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도서목록을 한 장씩 나눠주셨다. 구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동그라미를 쳐서 다음 날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책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나는 어머니를 졸랐다. 조르다 제풀에 지쳐 풀죽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어머니는 구입을 허락해주셨다. 도서목록에는 말로만 들었던 책들이 수두룩했다. 선생님은 이제 4학년이 되었으니 위인전을 한 권 읽으면 좋겠다고 권유하셨다. 위인전, 그래 위인전을 읽자! 도서목록을 흩어 내려가는 동공 안으로 ‘워싱턴’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수 없이 들어왔던 미국건국의 아버지 워싱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진하게 동그라미를 쳤다.

며칠 후 책을 받아든 나는 아연실색하였다. 내가 구입했던 책은 미국독립의 아버지 워싱턴전기가 아니라 흑인교육운동가 ‘부커 톨러버 워싱턴’의 전기였기 때문이다. 숫기라고는 도통 없었던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바꿔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책보에 싸서 집으로 가져온 부커 워싱턴 전기는 방구석에 내던져졌다. 하지만 오랜 책 갈증은 귀하게 얻은 책을 오래 방치할 형편이 못되었다. 나는 등잔불 아래에서 콧구멍이 시커멓도록 읽고 또 읽었다.

갈급했던 책 갈증은 6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완전히 해소되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등교한 교실에는 100권의 학급문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와, 이게 뭐예요? 환호성을 지르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서울의 자매학교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서가에는 단군, 광개토왕, 을지문덕에서 이순신, 박정희, 장개석, 처칠까지 동서양의 위인전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그날부터 탐독(耽讀)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때론 책의 분실을 막으려는 담임선생님과 숨바꼭질도 불사하였다. 집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엄명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5학년 말에 가설된 전기는 탐독의 밤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그렇게 3개월 남짓, 나는 학급문고의 책들을 모두 독파하고도 성이 차지 않아서 이웃 반을 기웃거렸다.

초등학교 시절의 탐독은 문학과 역사에 남다른 재능을 주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국어와 역사 과목만큼은 한 번만 들어도 술술 외워질 만큼 재미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진학할 때 사범대 그것도 역사교육과에 원서를 낸 것도 탐독의 영향이었다. 역사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역사를 연구하게 된 것 역시 부커 워싱턴 전기와 6학년 2학기 시절의 탐독이 가져다준 혜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며칠 전 아이들을 위해 수 십 만원 어치의 책을 구입하였다. 인터넷서점과 시립도서관, 시내책방을 들락거리며 작성한 도서목록으로 구입한 책이다. 아이들에게 비싼 옷, 비싼 음식을 사주는 것은 정말 아깝지만 책을 사주는 것은 아깝지 않다. 우리아이들이 책을 탐하여 생각과 마음이 크게 자란다면 까짓 거 몇 십만 원쯤 아까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어제의 내가 부커 톨러버 워싱턴 전기와 백여 권의 위인전을 통하여 역사교사가 되고 향토사가가 되었듯이, 우리 아이들이 새로 구입한 책을 통하여 자신만의 세상을 꿈꾸고 세상의 희망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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