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순범
연세기획 대표
원효와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가기위한 경로는 몇 가지 가설이 있지만  경주-상주-보은-청주-직산-당항성(평택항)으로 이어지는 길이 가장 빠르고 편한 길로서 가장 유력한 경로라 한다. 여기서 당항진(黨項津)을 지금의 당진(黨津)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으나 잘못된 억측이며 고서에 의하면 남양(지금의 현덕, 포승, 남양일대)의 어느 포구로서 현재의 화성 남양의 당성으로 추정되기도 하였지만 당성의 발굴조사 결과 신라가 이 일대를 장악한 6세기 중반의 유물들이 발견되지 않아 설득력을 잃고 있다.

 또한 원효가 배를 타기위해 도착하여 득도하였다는 직산(?山)은 발굴조사나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지금의 성환읍 근처의 직산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신라시대에는 다른 지명(蛇山)으로 불리웠고 고려 이후에 직산(稷山)으로 개명되었기 때문에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심복사 주변의 현덕면 황산리의 ‘직산장터(안중장터)’, 안중읍 대반3리가 ‘직산말’이라 불리웠고, 황산리 앞에 까지 배가 드나들어 수많은 왕래가 있었다(평택의 마을과 지명이야기, 김해규)고 하며 신라시대의 것으로 밝혀진 현덕의 덕목리 산성, 심복사의 석조비로자나불상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몇 가지의 설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경주에서 당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안성천 주변과 현덕(신왕나루, 구진나루 등), 평택항 일대를 거쳐 간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여러 가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전문 학자들과 지역의 향토사가들에 의해 좀 더 체계적인 조사와 학술연구를 통하여 확고한 이론을 정립을 해야 할 것이다.

깊이 있는 학술연구의 필요성은 우리 지역의 역사를 밝히는 것에 더 나아가 신라가 평택항 일대를 장악한 6세기 중반이후부터 장보고가 청해진(완도)을 거점으로 해상왕국을 이루기 이전까지(장보고 이후 해상활동의 양상이 바뀐다고 함) 가장 활성화된 국제교역항인 평택항 일대를 쟁취하기 위한 삼국간의 처절했던 역사, 즉 한반도의 역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 기간이 우리가 관심을 갖는 원효, 혜초라는 인물이 평택 땅을 밟은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역사학자 E. H.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끝임 없는 대화‘라는 말의 의미는 현재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과거가 다르게 해석된다는 의미에 더하여 과거역사와 선인들의 개척정신에서 우리의 미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그랬을 때만이 죽어있는 역사가 아닌 살아서 생동하는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현 시대의 요구가 역사인식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역사적 사실의 가공이나 왜곡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한 진리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혜초가 평택에서 당나라로 출발했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는 덜 중요할 수도 있다. 혜초나 원효에 대한 연고를 주장할 수 있는 지역이나 도시가 얼마든지 더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보다 먼저, 왜 주장하느냐 하는 것이다.
좁은 틀에서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이 세계와 삶을 함께 하였던 선인의 개척정신과 문명교류, 국제교류의 대명사인 실크로드라는 이미지를 평택시와 접목하고 평택항이 실크로드의 출발지였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선점함으로써, 국제화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평택시와 평택항의 브랜드로 삼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그런데 국제교류, 국제화 중심도시가 된다는 것은 무엇이고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교통수단이나 통신기술이 열악한 과거에는 중국 더 나아가 천축이나 대식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설혹 알았다 해도 거기서 일어난 일을 알려면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크로드나 혜초가 중요하게 부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어떠한가? 천축, 대식에서 만이 아니라 아메리카, 유럽, 심지어 북극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그것도 동영상으로 직접 보고 듣고 있다. 현재 평택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 속에는 전 세계의 모든 물건, 음식, 문화가 알건 모르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주변에는 각국의 외국인이 수없이 다니고 있고 결혼, 취업, 관광을 위해 들어온 외국인과 같이 생활하고 있으며 전세계가 이미 하나의 생활권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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