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는 효명중학교에 부임하시어 효명종합고등학교를 정년 퇴임하시기까지 근 30년간을 효명에서 교편을 잡으셨습니다. 평교사를 고집하시며 학생들의 교육에만 전념하신 선생님께서는 효명중학교의 출발기인 1955년 5월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는 불우한 아이들, 나이 먹고도 제 이름 석 자도 볼 줄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효명의 뿌리는 1952년에 서정동성당 주임으로 부임하신 유수철 도미니꼬 신부님에 의하여 내려졌습니다. 6·25동란 후 5개 면이 걸쳐 있는 교회 관내에, 중등교육 시설이 하나도 없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신 신부님과 뜻을 같이 하신 김경하, 이석종, 박대용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봉사로 1953년 5월 21일 효명고등공민학교로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한 마음으로 교육에 투신하신 선생님께서는 새벽에 힘차게 떠오르는 해가 만상을 비추듯, 효명의 아들딸들이 이 땅의 어두움을 물리쳐 광명으로 이끄는 빛이 되도록 정신적 지주가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초등학교를 나온 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2,3년씩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셨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효명의 역사이셨습니다. 성당 마루바닥 가운데를 휘장으로 가리고 공부했던 초창기 효명으로부터, K-55 비행장의 창고를 청소해 주고 얻은 시멘트로 벽돌을 찍어 교실을 만들며 꿈에 부풀었던 유아기, 그리고 오늘날의 장성한 효명중학교와 효명종합고등학교를 지켜보신 분이셨습니다.

한편, 학교의 문예지, 신문 등 모든 원고의 교정을 도맡아 하셨던 선생님께서는 날카롭고 치밀하고 정확하고 엄하신 분이셨습니다. 1984년 8월에 교단에서 물러나신 후에도 학교에서 발송된 초대장, 안내문이라면 빠짐없이 살펴보시곤 급히 학교로 찾아와 꼬집으셨기에 후배교사들을 무척 긴장케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아니, 학교에 국어 선생이 몇인데 이런 글을 내 보낸단 말이요? 그래, '아뢸 말씀은 다름이 아니오라'로 시작해 놓고선 거기에 대응하는 서술어가 없단 말이요?" 하시면서 안내문을 내미셨습니다. 거기에는 맞춤법, 띄어쓰기, 교정부호 등 문법 설명 확실한, 선생님 특유의 일필휘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국어 선생님이 선생님의 제자이니, 선생님께서 잘못 가르치신 거지요." 하는 버릇없는 제자들을 하회탈의 웃음으로 너그럽게 받아주신 분이셨습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퇴직금에서 선뜻 100만원을 떼어 효명교직원동문회에 기탁하시면서 장학회를 만들도록 당부하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없는 학생들을 걱정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에도 효명장학회 기금 중에는 선생님의 뜨거운 사랑이 스며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정신적 가르침만큼이나 물질적 도움의 필요성도 몸소 강조하신 분이셨습니다.

선생님, 이젠 아무 걱정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이젠 저희들이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께서는 황폐했던 이 지역 교육에 앞장 서셨고, 제자를 사랑하셨으며, 효명 역사의 증인이셨고,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효명이 이 땅의 빛이 되기를 기도하시며, 교육에 열정을 다 쏟으신 선생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효명의 빛이 되셨습니다. 모든 효명인은 선생님을 오래 기억하며 그리워할 것입니다.

스승의 날도 가까워 옵니다. 올해도 선생님 내외분을 모실 줄 알았었는데……. '너무 늦었어…….'하시던 말씀만 귓가에 맴돕니다. 이번 스승의 날엔 선생님의 빈자리가 너무 클 것 같습니다.
2002년 4월에 제자 정연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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