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현(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갈수록 태산인 우리의 장묘문화"에 동감하며

정말 큰일이다. 매년 여의도 만한 크기의 땅이 묘지로 둔갑하고 있다는 근심 어린 전언(傳言)이다. 아니 이렇게만 추상적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주말이면 이따금 가까운 산에라도 올라 보라. 여기 파이고 저기 헤쳐진 산지가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그리 된지가 꽤 여러 해 지났건만 매장문화의 악습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을 모르니 안타까워 내뱉는 말이다.

물론 요 근래 대도시를 중심으로 약간의 진전은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를 가지고 괄목할만한 개선이라고 추켜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눈으로 감지되는 좀더 획기적인 변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누구라도 내가 먼저라며 발벗고 나서야할 때가 된 것이다.

지난 1998년 말 통계로 전국의 묘지는 이미 총 2,000여만 기를 넘겼다고 추정되며, 해마다 20여만 기의 봉분이 새로이 생겨나고 있다 한다. 이런 추세라면 가까운 장래에 시신을 묻을래야 파묻을 수도 없는 묘지난이 금세 전국방방곡곡에 불어닥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야말로 전 국토가 묘지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국토는 사람 숫자에 비해 비좁기 짝이 없다. 산 사람이 발붙이고 누리는 땅보다 죽어서 차지하는 면적이 외려 넓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는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우리 나라만이 겪는 유일한 경우란다. 금싸라기 같은 단 한 평의 땅이라도 후손을 위해 써야 마땅하거늘, 죽은 자가 조상이라는 이름으로 귀한 영토를 이처럼 쓸모 없이 만들고서야 어찌 세세토록 존경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매장으로 인한 우려는 비단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장묘(葬墓)를 두고 생각하는 대다수 국민의 우호의식이 보기보다 심각하다. 바로 인륜지대사 중의 하나라는 인식 위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니 실로 난감할 뿐이다. 문제는 후손들이 당하는 고달픔과 고통도 그것이려니와, 아름다운 산야가 온통 파헤쳐져 심각한 환경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는 형국이니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현안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장묘제도의 과감한 개선밖에는 뾰족한 방도가 없다. 우선은 자발적으로 묘지의 수요를 대폭 줄이는 것이 첩경이다. 그렇지만 많은 백성들은 아직도 매장을 선호하고 화장을 꺼리고 있기에 묘지의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제일 난제는 솔선수범을 모르는 지도층의 몰지각한 행동거지다. 외국의 경우와는 너무도 다르다. 동서고금을 통해서도 이렇게 무분별한 적이 없었다. 지도층이 먼저 나서서 높은 신분이나 과시하듯 묘역을 호화롭게 조성하고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려는 경향이 문제의 핵심이다. 국민들의 의식개혁은 기실 지배계층의 그것을 흉내내려는 바 큰 줄을 뒤늦게나마 몸소 깨달아 알아야 한다.

다음은 뿌리 깊은 전통의식의 타파다. 죽은 자를 산 자와 같이 섬기는 사후 생명중시에 대한 유교적 의식과, 땅의 형세에 따라 그 기운이 달리 뻗치기에 묘지위치가 후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풍수설을 속히 극복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은 현학적인 접근이 될 수는 있겠으나 장묘문화의 개선을 위해서는, 지금으로부터 2,400여년 전에 미리 앞서 간소한 장례를 주창했던 선각자 묵자(墨子)의 사상을 오늘에 되살려 볼 필요가 있다. 묵자는 벌써 오래 전 유가를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장묘개혁을 위해 다음과 같이 유가의 잘못을 지적한다. 즉 유가는 네 가지 점에서 온 세상을 망쳐 놓았는 바, 첫째는 천(天)을 믿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장례를 번거롭게 치르는 일이고, 셋째로 음악을 포함한 퇴폐향락 풍조를 조장했으며, 넷째는 운명을 믿어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육체는 비록 죽더라도 영혼만은 영원히 존재하기에 조상이 자식의 재산낭비와 고생스러움을 더 이상 바라지 않았을 것이란 설명이다.

묵자는 이에 멈추지 않고 장례의 간소함을 주장하는 절장(節葬)을 비롯한 구세(救世)의 10대 표어를 실천하고 교육하기 위해서, 300명 내외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묵가집단을 만들고, 스스로가 그 첫 번째 대표가 된다. 이것은 오늘날의 시민단체와 비슷한 품새로 그 활동내용을 보건대 종교성을 띤 평화유지단체로 보인다. 놀랍게도 이것이 바로 필자가 묵자야말로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었다고 머뭇거림 없이 거들며 감탄하는 대목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근대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결국 유교의 전통가례는커녕 가정의례준칙으로 상기(喪期)를 대폭 줄여 선포했지만, 현재는 이것마저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세태가 급변하고 있지 않은가. 강력히 반문하건대 예(禮)도 시대감각과 사회의 여건에 따라 당연히 변해야 마땅하거늘, 도대체 아직도 매장만을 고집하는 이들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인가?

전통과 관습에 관련된 장묘문화의 개선은 어느 일개인의 의식개혁만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특히나 이와 같은 현안은 인간의 정서와 심정에 관계되는 문제이므로, 법으로 강제하기보다는 시민단체나 종교단체의 시민운동으로 개혁을 유도해 가야할 것이나,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무작정 기다려서도 곤란하다고 본다.

따라서 일정기간이 지난 분묘는 공고를 거쳐 과감히 정리함과 동시에, 화장을 적극 권장하여 실천하도록 행정 당국이 앞장서 현실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화장시설을 서둘러 정비하는 등의 노력을 병행해야할 것이다. 요컨대 아주 오래 전 장묘제도의 개혁을 위해 내놓은 이른바, '묵자의 절장론(節葬論)'이 오늘날 우리의 장묘문화 개선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조하식, 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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