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집행 과정에 이해 당사자 반드시 참여시켜야

<기획기사 싣는 순서>
1. 국내 환경 갈등 사례 및 원인 진단
2. 미국 현지취재1-리제네시스 사례 분석
3. 미국 현지취재2-SEDC사례 분석
4. 미국 현지취재3-포토맥강 및 체서피크만 파트너쉽
5. 미국 현지취재4-ADR 제도 및 사례 분석
6. 평택 지역 갈등 해결 방향 제언

최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개발로 인한 환경갈등이 급증하고 있다. 경부고속철 천선상 구간 통과를 둘러싼 갈등처럼 생태계 보전과 환경보호를 위한 순수 환경갈등이 있는가 하면, 평택의 미군기지이전 갈등이나 제주해군기지 유치갈등, 산업단지나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갈등처럼 중앙정부, 지자체, 시민단체, 주민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복합갈등의 양상을 띠는 것들도 많다. 이러한 환경갈등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이해당사자간의 불신과 가치관의 차이로 논쟁이나 협의과정이 부족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심각한 대립양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나 지자체의 갈등해결 역량이 취약하고 갈등 문제를 제대로 풀어낼 전문가도 거의 없어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급증하는 지역사회 환경갈등의 양상을 짚어 보고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해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와 미국을 중심으로 기획 취재를 진행했다. 금호환경 소각장 갈등과 미군기지이전으로 인한 갈등을 겪은 바 있는 평택사회는 고덕국제신도시, 경제자유구역 개발을 둘러싼 주민과의 갈등이 현존하고 있고, 각종 개발이 폭발적으로 예정되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갈등으로 번질 사안도 많이 있다.

또한 상호 협력해야할 인근 지자체와의 대립과 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평택호 수질개선문제나 진위천 상수원 문제 등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번 기획취재가 그간의 평택지역사회의 갈등 양상을 되짚어 보고, 바람직한 갈등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독자와 함께 고민해 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편집자주>

▲ 최근 대표적인 환경갈등 사례로 부각되고 있는 인천 계양산 골프장 건설 갈등 현장이다. 계양산 입구에 롯데건설(주)이 친환경 개발을 하겠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대한민국은 갈등 공화국’

최근 발생한 지방자치단체의 환경 관련 갈등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무수히 많다. 이 중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만 열거해 보자. 무엇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 관련 갈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앙정부, 이명박 정부의 핵심공약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잠복상태이므로 논외로 치자. 얼마 전에는 새만금 갯벌 관련 갈등과 경부고속철 천성산 통과 구간 관련 갈등도 있었다.

최근에 진행 중인 대표적인 갈등으로는 인천 계양산 골프장 건설 관련 갈등, 부천 화장장 건설 관련 갈등, 고리 원전 1호기 연장운행 갈등, 제주 영리병원 설립 추진 관련 갈등,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과 관련된 지자체간의 갈등, 국립서울병원 재건축 위치 관련 갈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밖에 각종 도시개발과 관련된 갈등 등을 포함하면 온 나라가 개발과 환경, 주민의 이해관계가 얽힌 ‘갈등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중 갈등의 전개 양상과 관련해 시사점을 던져 주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 인천시민의 대표적 휴식공간을 골프장으로 내줄 수 없다며 ‘나무 위 시위’를 벌인 윤인중 목사가 취재진에게 골프장 건설 반대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 계양산 골프장 건설관련 갈등=최근의 대표적 환경갈등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안이다. 롯데건설(주)이 계양산 북사면의 개발제한 구역 내의 사유지(롯데 신격호 회장 소유)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건설하려 하자,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주민이 중심이 되어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계양구청 주민 80%가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고 이곳이 인천시민의 허파와 같은 곳이므로 이곳에 시민자연공원을 조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롯데건설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산업 발전 명분으로 골프장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계양구청장이 새로 들어선 이후 전임자와 달리 신임 구청장이 골프장 건설을 적극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소나무 숲 등산로에서 210일 동안 ‘나무위 시위’를 벌이고 있고, 현재도 인천시가 롯데측이 제시한 사전환경성 검토 초안의 공람을 공고하자 반대측 주민들의 ‘릴레이 단식’이 지속되고 있다.

지자체(광역 및 기초)가 개발 욕구에 따라 사업주에 우호적으로 기울고, 갈등 상황을 방치함으로써 주민 간, 주민과 기업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할 인천광역시는 조정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리 1호기 연장 운행 갈등=1978년 처음으로 상업가동에 들어간 고리1호기 원자력 발전소가 2007년 30년 수명을 다하게 되면서, 발전소의 수명 연장 여부를 놓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주민, 중앙부처, 지자체, 주민 단체 등 주요 이해 관계자간에 갈등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기장군이 지역주민과 연계해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양상을 띠었으나, 다행히 2007년 한수원과 주민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파국을 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개입을 회피하여 사업주인 한수원이 주민과의 협상을 주도하고 중앙정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제주 영리병원 추진 관련 갈등=정부의 의료선진화 의지에 발맞춰 제주특별자치도가 중심이 되어 영리병원 허용 입법화를 추진하자,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영리병원 저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반대운동을 전개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에 제주지사는 여론조사를 통해 영리병원 추진 여부를 결정하자고 제안했으나, 그 결과는 영리병원 추진 반대 측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 사안은 광역지자체가 중앙정부의 의지를 반영하여 반대 주민 및 시민사회와 대립한 경우로 갈등해소를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으나 반대 측의 승리로 귀결돼 국가 주요정책(의료 선진화) 추진에 제동이 걸린 사안이다.

이는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연대하는 경우에도 지역주민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경우 정책 실현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토공·주공 통합과련 지자체간 갈등=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의 일환으로 토공·주공 통합방안을 발표하자 지난 정부에서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양 기관이 이전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전북(전주)과 경남(진주)은 정부의 통합방안에 반대하는 한편, 통합본사를 자신의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발생하여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안은 정책간의 충돌(공기업 선진화&지역균형발전)이 갈등 발생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정부정책의 불확실성이 갈등 심화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갈등을 유발하고 해법은 지방정부의 합의에 위임하는 형국이나 지방정부가 연합해 정책수용을 거부하며 중앙정부에 대항할 태세도 나타나고 있다.

▶국립서울병원 재건축 위치 관련 갈등=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국립서울병원(소위 정신병원)이 노후화되어 재건축 필요성이 제기되자 이를 해결하는 방안(타 지역으로의 이전과 현 위치에서의 재건축)을 둘러싸고 보건복지가족부, 병원, 광진구, 지역주민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사안이다. 보건복지부는 별다른 이전 대안이 없으므로 재건축을 주장하지만, 광진구와 주민들은 지역발전에 저해된다며 이전을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 광진구가 신축을 위한 행정절차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중앙정부가 내린 결정을 지자체가 주민과 연합해 거부하고 있는 상황으로, 중앙정부는 명분은 있으나 지역사회의 이해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자체는 합법적인 행정절차를 통해, 주민은 주민반대운동을 통해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유일한 전략은 ‘버티기’ 뿐이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충돌할 경우 갈등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나, 중앙정부, 지자체,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논의구조 및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갈등관리 능력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다.

■ 중앙 및 지방정부가 갈등의 핵심 원인 제공자

위의 몇 가지 갈등 사례에서 가장 중요하게 나타나는 특징은 중앙정부가 대부분의 갈등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갈등 해결의 주체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중앙정부를 향한 갈등이 갈등의 핵심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과거 권위주의 체제의 중앙정부의 일방적 결정을 국민들이 수동적으로 따라야만 했던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주민, 지방정부가 중앙정부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은 중앙정부가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갈등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숙성되지 않은 정책 형성이 지역에서 갈등으로 발생하고 있으며(토공·주공·지자체의 갈등), 중앙정부의 일방적 개입(국립서울병원) 혹은 회피(토공·주공)전략으로는 갈등을 해결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지자체의 갈등회피 전략(계양산 사례)이 갈등심화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갈등 관리 및 조정 능력 부족이 거의 모든 갈등 문제의 핵심원인으로 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정책 형성 및 결정과정 흐름을 개괄한다면, 과거의 일강구조(중앙정부 중심)에서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2강 구조(중앙정부-국민대중)에서 중앙정부, 지방정부, 시민단체, 주민 등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다강(多强) 구조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이 다강 구조 속에서도 국민 개개인의 주장과 목소리가 존중되는, 즉, 시민(市民)이 정치적 의사결정의 주체로 등장하는 시민주권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과거의 일방주의적 정책결정 방식에 대한 환상 속에 권위적·일방적·비밀주의적 통치관행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남아 있어 갈등의 핵심 원인을 여전히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갈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법적·제도적 시스템이 미비되어 있고, 갈등을 해결할 사회적 인프라와 전문인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점도 갈등을 예방하거나 발생한 갈등을 사회적 합의 속에 신속하게 해결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 모두가 동의하는 대안적 해결책 마련이 최선

 따라서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다원화된 사회에 맞는 갈등 인식 및 갈등해결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필수조건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나 계층 뿐 아니라 정책 결정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까지도 참여시켜 상호 충분한 논의와 숙의를 통해 모두가 동의하고 만족할 수 있는 대안적 분쟁 해결책(alternative conflict resolution)을 마련하는 길만이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호부터는 미국 사회에서는 갈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시스템과 운영방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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