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가 / 신장동
비판과 비난은 구별해야 한다. 사회정의를 위한 공익적인 비판은 준열하게 꾸짖고 비판함으로서 개선효과가 있고 사회정화에 큰 도움이 된다. 말하자면 신문 사설이나 칼럼 같은 건 매우 필요한 꾸짖음이다. 가정에서 어버이가 자식 인성교육을 위해 때론 준엄하게 훈육(訓育)하는 것도 물론 이에 해당한다. 비판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깔고 올바른 논거와 예의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비난은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비화하기 마련이다. 이게 문제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남을?힐난하고 주위 사람에게 애꿎은 책망을 일삼는 부류가 문제다.?이 세상엔 칭찬도, 비난도 없는 무난한 사람이 많지만, 비난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만나면 조심을 하게 된다. 언제 엉뚱한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소중하게 써야 할 에너지를 하찮게 낭비하고 주위를 소란하고 불편하게?만든다.
대체로 칭찬에 익숙한 사람은 자신감이 왕성하고 너그럽고 현명하다. 주위 사람을 존중하는 예의와 겸손을 갖춘 사람이다.?주위를 밝고 부드럽게 만들고. 상쾌한 살맛으로 치장하는?재능이 있다.그런 반면, 비난에 익숙한 사람은 자기만이 잘난 줄로 착각을 하는 사람 같아서 매우 곤혹스럽다.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에게?흔히 볼 수가 있다.칭찬과 비난은, 그 결과는 엄청 다르게 나타난다.
칭찬은 주위 사람들을?기분 좋게 살맛나게 만들지만, 비난은 멀쩡한 세상을 금세 아비규환 지옥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칭찬과 비난의 에너지는 그렇게 큰 파동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칭찬을 들은 사람은 칭찬한 사람이 존경스럽고 고마운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칭찬은 만족스러운 엔도르핀을 만들고 즐거움과 함께 다른 칭찬을 불러 온다, 상승 시너지를?몰고 온다. 비난은 사람을 추(醜)하고 하찮게 만들고 분노 섞인 다른 비난을?불러 온다. 비난이라는 괘씸한 화살이 쏟아 나가면 그 비난은 부메랑이 되! 반드시 본인에게 돌아간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남의 험담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바탕이 잘못?된 사람 같아서 믿음성이 없고, 어리석어 보이고, 사려(思慮)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이런 이치를 안다면 남을 헐뜯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는 자해행위(自害行爲)란 걸 알게 된다. 비난은 어리석은 행위고 평지풍파를 만드는 고약한 맹독을 갖고 있다. 비난과 힐난(詰難)을 받은 사람은, 그것도 습관적으로 당하다 보면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어느새 적개심을 가지고 앙갚음을 하게 된다.
멀쩡한 사람을 분노와 비난으로 무장을 시키기 때문이다. 얼마나 고약하고 심각한 일인가.이런 이치를 알고도 부정적인 말을 계속한다면 천치바보거나 아니면 자기학대에 익숙한 사람일 게다. 삼가야 할 행위고, 비극적인 소치다. 참으로 못 마땅하고 기피할 사람이다.이런 사람에겐 대체로 번잡하고 해석 못할 자존심이 있어 올바른 소리를 주고 교정을 하기도 어렵다. 자기 인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고 수용을 못한다.
자기 생각만이 제일이라고 우기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원하지 않는 갈등과 싸움에 휘말리기 일쑤다.우리는 사람마다 성질 나름으로 살게 되고 그 영향권 아래서 사는 걸 보게 된다.
개인적인 한계고 어쩔 수 없는 팔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치열한 자기수양을 거친 사람은 물론 예외가 되겠지만, 까다로운 성질은 높은 교육과 많은 재산과는 상관이 없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사람은 결국 가지고 있는 성질과 품성에 따라 개인의 운명을 가름하고 행, 불행을 좌우하는 것 같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잘못?된?습관을 극복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