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흥사단 사무처장
토요일 아침 8시에 사무실을 출발하여 오전 9시 30분, 태안에 접어들자 “자원봉사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태안 주민 여러분 힘내십시오.” 등 도로 곳곳에 현수막이 나부낀다. 태안 오염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바램과 격려와 감사의 현수막이 늘어만 간다.
현지 주민들의 안내에 따라 기름제거 봉사지역으로 배정받은 태안군 모항항에 도착하자 관광버스 몇 대와 흰색, 먼저 도착한 흰색, 노란색 방제옷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우리를 반긴다. 갯내음속에서 기름 냄새가 느껴지는 착각에 빠진다. 장화와 방제옷을 지급받고 물때를 기다린다. 11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기름제거 작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주민들이 정성껏 마련한 이른 점심을 먹고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현장으로 투입됐다. 함께 봉사에 나선 흥사단 팀은 이번이 두 번째 기름제거 봉사활동이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평택 등 전국에서 150여명의 회원이 먼 지역은 새벽부터 서둘러 준비해 봉사에 나선 것이다. 생각과 달리 모항항 근처 가까운 해안가는 겉보기에는 깨끗해 보였다.
조금 멀리 나아가자 바닷가 암벽에 달라붙어 말라붙은 기름을 떼어내고 있는 일행이 보인다. 가재잡기식으로 발밑 돌조각을 들추자 돌조각에 들러붙은 조그만 기름 덩어리들이 나타난다. 지급받은 천 조각으로 닦아내자 시꺼먼 기름 자국이 묻어난다. 함께 참여한 평택시청소년쉼터의 입소생들도 말없이 기름덩어리를 닦아낸다. 처음엔 몰랐는데 역시나 아까 맡았던 기름 냄새가 목을 자극한다. 마스크도 준비했지만 가슴이 울렁거리고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의 자원봉사로 기름이 많이 제거되었구나!’ 안도의 생각에 젖어있는데 포크레인 한 대가 나타났다. 현지 주민들의 지휘 속에 포크레인이 100여평의 돌밭을 뒤집기 시작하자 기름에 절은 돌조각들과 흙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겉보기와는 달리 땅 밑의 오염은 심각했다. 양수 펌프와 소방호스로 바닷물을 끌어올려 씻어내자 시커먼 기름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돌조각을 닦아내고 물위에 뜬 기름기를 제거하기위해 100평 정도의 공간에 어림잡아 3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오후 4시 까지 강행군의 작업을 했다. 태안 전체로 하루 1,0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투입된다고 하니 오염제거 작업의 난망함이 눈에 선하다.
닦아내고 닦아내도 흘러나오는 기름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현장을 지휘하던 주민의 말에 따르면 파헤쳐진 흙과 돌무덤에서 나오는 기름기가 한 달 간은 계속되고 그때마다 기름을 제거해야 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 없는 기름제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나마 휴일이나 일요일에는 많은 봉사자들이 참가하지만 평일이나 토요일에는 참가자수가 많이 줄어 걱정이라고 한다.
중간 휴식시간! 주민들이 마련해준 간식을 먹으며 무심코 바다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한가한 어촌 풍경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풍경에 취해있을 즈음 휴식 시간이 끝나고 양수 펌프가 바닷물을 쏟아내며 시커먼 기름기를 쏟아내다. 다시 오염 현실로 돌아와 재앙을 일으킨 인간에 대한 원망과 봉사활동에 열심히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교차한다.
오후 4시 뒷정리와 함께 작업을 마치고 모항항으로 돌아와 빌려 쓴 장화며 방제복을 반납하는 시간! 새까맣게 그을린 주민대표가 확성기를 들고 봉사를 마치고 차례로 돌아오는 참가자들 한명 한명에게 간절한 감사의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자원봉사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주민들도 힘을 내어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승합차 실내 백미러로 고단함에 지쳐 잠든 일행의 모습이 눈에 띈다. 다른 차에 탑승하고 있지만 함께 간 우리 아들, 딸도 쉼터 아이들도 피곤함에 지쳐 곯아 떨어졌을 것이다. “왜 기름 오염사고가 일어났는지?”, “왜 닦아내야 하는지?”를 물었던 딸내미가 기특하게도 언니, 오빠, 자원봉사자들 속에 섞여 정성껏 돌조각을 닦고 물위에 기름기를 적셔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태안에서 배우자! 나 이외의 것에 관심을! 관심을 넘어 기부로, 기부를 넘어 참여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