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의 매니페스토 / 총선 예상 투표율이 50% 이하로 떨어진 진짜 이유

▲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 본부 이광재 사무 처장.
여의도통신 한향주/자료사진/2008. 2. 12/ jupiterian@ytongsin.com
오랫동안 혼자서 생활했던 내게는 작은 습관 한 가지가 있다. 손톱 반달 크기를 보고 행복해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건강을 체크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손톱 반달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손톱 반달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지는 날에는 종일 걱정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손톱 반달 크기로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합리적인 방법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손톱 반달과 건강 상태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 손톱 반달 크기가 큰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손톱 반달을 보며 건강을 체크한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의정계획서 제출한 후보에게 박수를
총선 예상 투표율이 50% 이하라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도대체 무엇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투표에 참여할 의욕을 상실하게 했으며, 그 뜨거웠던 선거혁명의 열기를 싸늘하게 식도록 한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너무나 쉽게 유권자의 책임의식 결여를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적지 않은 기성세대는 유년 시절에 장래 희망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아마도 절반 정도가 판사와 변호사, 나머지 절반 정도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더 이상 어린이들에게 정치인이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도, 희망의 대상도 아닐 것이다. 정치 영역은 지금 ‘그들만의 리그’로 철저하게 고립돼 있다.

우리 사회에 정치냉소주의가 팽배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정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릴없이 싸움질이나 하는,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민주주의를 지켜줬던 ‘사랑의 대상’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투표에 참여할 이유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퍼주기’식 선심성 공약들이 난무하고 선거 이후에는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 유권자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약속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는 정치인들의 잔치에 수동적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정치권은 대운하, 연금, 세제, 교육 등의 정책적 논쟁들은 슬금슬금 피해가고 있다. 그 대신에 혜택은 늘리고 넓히되 세금은 조금 걷겠다는, 무조건 개발하여 부동산 가격을 높여 주겠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양산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정치인이 내놓은 공약을 철썩 같이 신뢰하고 투표하는 유권자가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정치권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은 짠하기만 할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손톱 반달이 조금만 커지면 호들갑을 떨며 건강을 과신하며 자랑하고, 반면에 손톱 반달이 사라지는 날에는 하루 종일 걱정하며 투덜거리던 나의 모습과 같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총선 후보자들에게 의정활동계획서를 유권자 앞에 내 놓으라고 촉구한 것은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의정활동계획서를 내 놓았다는 것 자체가, 정치권의 건강성을 체크하는 보편적 잣대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나마 사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이자 증표라도 될 것이라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다. 

다행히 실천본부의 권고에 따라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은 275명의 예비후보들로 하여금 의정활동계획서를 공천심사과정에서 기본적인 서류로 제출하도록 했고, 나아가 유권자들에게 공개했다. 그런 진전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더욱이 후보들은 촌각을 다투며 지역주민을 만나야 하는 시간을 쪼개서 자신의 의정계획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건승을 빈다. 이런 것들이 정치권의 책임의식을 높이는,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본다. 과거의 화려한 경력과 말로만 하는 정치를 끝내겠다는 선언에 기꺼이 동참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니페스토는 고해성사와 책임선언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산수는 시장에 맡겨두어도 충분하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도 될 수 있고, 셋도 될 수 있는 무한대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곳이 정치권이다. 서로가 멀어지고 달라지는 사회양극화 현상,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내일에 대한 떨쳐낼 수 없는 불안감, 그에 대한 해소방안을 내 놓고 미래비전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유권자는 보고 싶어 한다.

기존에 있던 것을 가지고 진행해오던 일을 꾸준히 잘 해내는 것은 관료들의 몫이다. 그러나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가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다. 매니페스토. 고해성사라고도 하고 공적 책임선언이라고도 한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고 내일을 위한 책임선언을 하는 것이 매니페스토이다.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것들 중에서 지금에는 맞지 않은 것들이 무엇이며, 그래서 내일을 위해서는 이것을 버려야 하고 저것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 매니페스토이다.

오늘도 매니페스토 활동가들은 정치권의 움직임을 손톱 반달처럼 보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한다. 한국의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한 성숙한 민주주의, 신뢰공동체 구현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정치인이 좀더 많이 당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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