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세상 읽기 6-②

민세 안재홍 선생 기념 사업회 이사
동탁 조지훈 역주(1962/1996②) 현암사
본지는 평택사람이 전하는 좋은 책 나눠보기의 일환으로 7회에 걸쳐 평택시 각계에서 명망 있는 인사들이나 이웃이 추천하는 꼭 봐야 할 책들을 연재한다.
이 책들은 평택시립도서관 소식지‘겨울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실린 추천도서들이며 평택시민들이 한 번 쯤은 읽어봐야 할 도서로 판단해 평택시립도서관(관장 김용래)에서 제공받아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평택시립도서관은 도서관에서 추천하는 도서 외에 평택의 인사나 이웃이 추천하는 도서를 1월7일 특집 소식지부터 연재하고 있으며 향후 분기별로 1~2명씩 추천도서를 시민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편집자주>
2. “세상사는 원래 쓴 것이다.”
채근담은 전집 225장, 후집 134장, 전·후집 359장으로 정리된 수신서(修身書)이다. 구절마다 판단 내용이 다른 경구와 조심해야 할 마음의 욕심을 자제시키는 이야기들이다. 쉽게 풀이했다고는 하지만 역문과 원문, 대의·해설풀이가 매 페이지마다 음미하게 되어 있다.
한 겨울, 푸르고 하얀 하늘 허공중에 붉은 빛 까치밥(따지 않고 자연에 돌려보내는 감)들이 문득 보일 때 내면의 갈등이 잠시 화해와 조화를 이룬다. 정서상으로 시원하고 건전한 상태가 된다. 행복의 그림자를 붙들고 욕망과 목표를 향해 뛰다가 문득 멈춰 서서 되돌아 보면서 자연과 삶의 의미나 가치를 재확인 하게 하여 생명과 정신의 건강을 유지시켜 준다. 담담(淡淡)해지고 독선이나 아집이 아니라 냉정과 침착을 넘어서 흔들리는 생활세계 순간마다 평정심(平靜心)이나 부동심(不動心, atraxia)을 실천하게 된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다 말로는 표현되지는 못하며 정확히 전달되지도 못하는 것이 인간사이다. 이루 형언할 수 없고 복잡 다양한 감정내용을 글로서는 정확한 표현이 불가능한 게 생활이다. 그럴 때 꼬여 있는 심사를 뛰어 넘어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잡이하게 한다. 욕구대로 세상사가 돌아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개인적 심성이나 가치추구만이라도 화해와 조화의 세계(和而不同)로 인도한다.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내 판단과 다른 것이라도 받아들이게 하여 어느 쪽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논어·맹자 등 어려운 유학서(儒學書)나 지키기 힘든 윤리서(倫理書)나 다른 수신서(修身書)들 보다는 훨씬 구체적이다. “사람이 항상 나무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으면, 곧 백가지 일을 가히 이루리라(송대 왕신민:宋代 汪信民)”는 기본 전제를 유지한다면 담담한 맛이 참 맛이고 어려움은 늘 있는 것이니 참고 견디라고 한다. 난세의 처신술이다. 몸과 마음이 어려운 곤궁시대를 버티어내게 해주는 묘(妙)한 맛을 자연·도심(도의 마음)·수성(수신과 성찰)·섭세(세상사는 법) 등으로 설명한다.
서양 근대사회는 동물적·이기적 본성을 강화시키는 산업·경제로 시작하여 고삐 풀린 말처럼 달려왔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계약설도 자유·민주로 정리되었다. 시민사회의 자유·평등·박애라는 미명이나 표방가치로 서구적 산업화를 성취하기는 했다. 그러나 나약한 동물적 인간의 이기심을 숨기지는 못하였다. 그와는 달리 전통적인 동양 사회는 농경과 자연친화적인 단순 재상산적 세계를 지향해 왔던 전통이 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거나 재계약을 해야 할 필요가 생긴 시대가 되었다. 다른 살아있는 생명을 썩기 전에 먹어야만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미물이다. 스스로 잘 살아가는 줄 착각하다가도 아프거나 가녀린 갈증이라도 생기면 부족함이나 비어있음이 느껴지게 된다. 나이 들면 몸이 여기저기 아파지게 된다. 정신도 아프게 되면 병원에서 교정이나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정신도 아플 수 있는데도 인정하지 않고 안 그렇다고 고집부리는 허망한 자들이 오히려 많다. 세상의 온갖 태도는 말이나 선전에 살짝 속아버리는 이 시대에도 「채근담」은 여전히 필요하다. “세상사란 원래 쓴 것이다. 끝까지 그럴 수밖에 없다”라면서 일반 사고방식을 깨뜨리는 쓴 묘미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채근담」은 1970년대 파란색 견직의 하드카바장정으로 문고본 호화판형이라 무게감 있게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세로로 내려쓰기 판본에 식자인쇄와 시원한 여백이 있어 옛날 책의 느낌이 있었다. 20년 전 그림 그리는 후배에게 건너간 뒤 아직 건너오지 못한 예쁘고 귀한 책이었다.
어느 한 구절 들추어 본다. “세상 물결에 부대낌이 얕으면 그 더러움에 물드는 것도 얕고 세상일을 겪음이 깊으면 그 속임수의 재주도 깊다. 그러므로 군자는 능란하기 보다는 질박한 편이 나으며 곡진(曲盡)하기보다는 소탈(疎脫)한 편이 낫다” 군자는 수완가가 아니라 인격자라는 판정을 한다.
10년이면 세상이 변한다고들 한다. 세상은, 자연은, 인간은 변해도 도리(道理)는 변하지 않는다. 21세기 신문명이 도래한다고들 한다. 무엇이든지 나아진다고들 한다. 지금은 하루에 1조원을 수출하는 사회다. 10위권 경제 강소국이라고도 하지만 실질과 내면 속사정으로는 40~50위권이라는 지적도 있다. 도덕이나 예의염치는 그 이하일 수 도 있다.
호수물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흔들린다는 말이 있다. 2500년 전 시작된 동아시아 세계의 인문정신은 실제 인간세상에서는 늘 노력과 실천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개인이나 사회에는 명(名)과 분(分)이 합당해야 하며 격(格)과 품(品)이 유지되어야 제대로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사회 구성원 각각의 도덕적 심성과 품성도 문화와 교육이 담당할 몫이 더 늘어나는 세상이다. 세상사가 다소 삐긋거리면 제대로 정신 차리게 교정해주는 쓴 소리도 더 필요해진다. 이상한 말도 참 많은 세상이다. 주장도 많고 해석도 가지가지다. 쓸 말은 적고 안할 말이나 못할 말이 여전히 많은 이 시대에도 채근담은 늘 새겨 들을만한 말을 아직도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