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133

경제전문지 <파이낸셜뉴스> 10월 8일자 기사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한 교육기업이 수많은 대기업을 제치고 코스닥 시가총액 선두권을 유지하는 저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 회사의 김성오 사장(초중사업부)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고향 마산에서 약국을 운영했던 이색 경력의 소유자인 김 사장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인데, 도대체 그건 뭘까.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엄격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미자립 교회를 순회하며 전도하던 아버지의 봉급은 현금이 아니라 곡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료를 제때에 납부하지 못해 복도에서 벌을 서기도 했고, 영양실조에 걸리는 바람에 등교하지 못한 적도 있다. 마산고 시절 등록금이 비싼 대학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공부해서 들어간 곳이 바로 서울대 약대(약학과)였다. 봉천동 산동네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성북동으로 가정교사를 나갔는데, 집채만 한 대문을 들어설 때마다 잔뜩 주눅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가진 자에 대한 시기나 증오의 마음은 갖지 않았다. 도리어 저들에게도 뭔가 성공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배워 보자고 생각했다.”
난 손님을 ‘은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김 사장의 첫 번째 성공비결은 ‘긍정적 사고’인 셈이었다. 그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산시의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인 교방동에 4.5평짜리 약국을 개업하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가진 것이 별로 없었던 김 사장은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김 사장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졸업 당시 동기의 다수는 유학을 떠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제약회사 연구소로 진출했다. 그러나 나는 당장 먹고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약국을 열어야 했다. 그렇다고 번듯하게 약국을 차려줄 만큼 집안이 넉넉해진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시내 중심가는 임대료가 비싸서 보증금만 1000만원을 요구했다. 2부 이자를 주고 어렵게 빌린 600만원을 가지고 변두리에 4.5평짜리 약국을 열었다. 당시 약사법에 따라 지켜야 하는 최소 면적의 기준이 4.5평이었다. 빌린 돈 600만원 중에서 200만원으로 약장을 마련하고, 300만원으로 약을 사서 진열했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약장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빈 상자를 가져다가 약장을 채워 넣어야 했다. 약을 모두 채워 넣기까지는 꼬박 1년 6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김 사장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직업을 물으면, “약국을 (경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고 영세한 약국을 가지고 ‘경영’한다고 말하면 비웃음을 살 것이 뻔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약국 합니다”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약국을 ‘경영’합니다”라고 크게 외친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막막했다. 세대수가 적은 변두리이다 보니 골목에 손님(경영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환자’가 아니라 ‘손님’으로 규정했다)은커녕 행인도 보이지 않았다. 약국 문을 열었다는 소문이 났지만 초기에는 하루 종일 기다려도 20명의 손님이 고작이었다. 나는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약사의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은 데도 찾아준 그들을 ‘은인’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했다. 무엇보다 먼저 인사에 신경을 썼다. 손님이 15°로 절하면 나는 30°로, 손님이 30°로 절하면 나는 50°로, 손님이 50°로 절하면 나는 90°로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겉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섬김의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친절과 정성을 다했다.”
보통 서울 약대를 나온 약사들은 엘리트 의식 때문에 뻣뻣하다고 한다.
그들과 비교할 때 교방동 육일약국의 ‘김 약사’는 돌연변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 약사는 찾아오는 모든 손님의 이름을 외웠다. 이름 외우기에는 왕도가 없었다.
처음 방문한 손님의 이름을 조제차트에 적은 뒤 약을 지으면서 주술을 외우듯이 40~50회 반복했다.
“그리고 손님이 다시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어느 날 그 손님이 약국으로 들어서자마자 이름도 묻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조제차트를 가지고 나왔다. 그러면 대다수 손님은 자기 앞에 펼쳐진, 자신의 이름이 정확하게 적혀 있는 조제차트를 보고서 ‘와, 약사님 천재네요’라고 외친다. 그것은 감동했다는 방증이다. 같은 약국을 자주 가도 ‘환자분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받기만 했던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그렇게 놀라는 얼굴을 보면서 더 큰 감동을 받는 것은 바로 나다. ‘이 약사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비쳐지는 맑은 눈빛과 기뻐하는 표정을 쳐다보면 나 또한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 이름을 불러주기도 했다.”
육일약국 김 약사의 고객감동 일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다른 동네에서 찾아온 초행길 손님에게까지 친절을 베푼다. 약도나 메모를 들고서 집을 찾기 위해 헤매다가 실패하면 방문하는 곳 중의 하나가 약국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 대다수 약국은 귀찮아한다. 그러나 육일약국 김 약사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고객이 소중하면 고객을 찾아온 손님도 귀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파란 대문 집을 찾다가 포기하고 약국에 들어와 도움을 청하면 먼저 의자에 앉아 쉬게 한다. 그런 다음 백지에다 거의 ‘내비게이션’ 수준의 상세한 약도를 새로 그려준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일 경우에는 전화를 걸어서 손님을 모시고 가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그것도 어려우면 가운을 잠시 벗고 가이드가 되어 300~500m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기어이 파란 대문 집까지 다녀온다. 찾아오는 손님의 빈부귀천과 지위고하는 절대 따지지 않았다. 그것을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변함없이 실천했다. 그러면 반드시,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반응이 온다. 사흘 후 파란 대문 집 주인이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남과 뭔가 다르게 하려고 노력해
그런 손님은 단골이 되기 마련이다. 이사를 가더라도 약이 필요하면 절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육일약국을 찾아온다. 친절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 김 사장의 체험적 지론이다. 약국 전화 편히 쓰게 하기, 무료 주민 건강 상담, 양로원 노인 신세 한탄 들어주기 등 실제로 그가 실천한 작은 친절은 끝이 없을 정도이다.
“친절을 베풀면서 한 번도 되돌려 받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이왕 하는 일이니 남과 뭔가 다르게 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놓치지 않고 순간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진실한 마음이 통하자 손님이 한두 명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말 그대로 ‘물밀듯이’ 밀려 왔다. 심지어 내가 약을 짓는 동안 약국 앞에 단골 손님 10여명이 열을 지어 기다려 주기도 했다. 마산 시내에서 택시기사에게 ‘육일약국 갑시다’ 말하기만 해도 태워다 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교방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주민체육대회가 열리던 날 제1회 ‘주민이 주는 상’을 받았다. 솔직히 대통령상도, 노벨상도 부럽지 않았다.”
김 사장은 지역 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나눔을 실천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12년이 흘렀고, 나중에야 매출 규모가 200배나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롭게 뛰어든 교육사업에서도 그는 ‘육일약국 경영정신’으로 임하고 있고, 그 성과는 하나둘 가시화되고 있다. 사람들이 성공비결을 물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영원한 블루오션은 없다고 생각한다. 뭔가 될 것 같으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러면 이미 그것은 레드오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섭다고 도망가는 것도 해답은 될 수 없다.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작은 변화만 지속적으로 모색해도 블루오션은 끊임없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아주 미세하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김성오 사장의 이력
▲ 서울대 약학과 졸업
▲ 마산 육일약국 대표
▲ 서초 메가스터디학원 원장
▲ 영남산업 대표이사
▲ 메가스터디 부사장
▲ 엠베스트교육 대표이사
저서: <육일약국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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