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131

'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1519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4일 COEX 인터콘티넨탈호텔 다이아몬드룸에서 함성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가 ‘2007년 대선 감상법’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독자들의 교양 쌓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함성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솔직히 옛날에는 대통령이 통치하기 편했다. 사회가 대단히 단순했고 권력을 지향하는 세력이 적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컨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부의 지지만 얻고도 권력을 회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군인 출신 인사들이 자연스럽게 장관 자리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덩달아 육군사관학교라는 ‘명문대학’이 출현했다. 그후 박 전 대통령은 막강해진 군부를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지지세력을 발굴했는데, 그들이 바로 관료였다. 이번에는 관료가 장관 자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서울대학교가 ‘명문대학’으로 부상했다. 그것은 ‘대통령+군부’ 패러다임이 ‘대통령+관료’ 패러다임으로 변화했다는 상징적 풍경이다. 당시에 형성된 이 패러다임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국내 최고의 ‘대통령학’ 권위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함성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현재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함 교수는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가 또다시 커다란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을 알고 싶다면 최근 어떤 사람들이 주로 장관에 기용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군인 출신도 아니고, 관료 출신도 아니다. 이제 장관이 되고 싶은 사람은 그가 군인 출신이든, 관료 출신이든, 교수 출신이든, 언론인 출신이든, 기업가 출신이든 먼저 할 일이 있다.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의 중심은 이제 군부와 관료에서 국회로 넘어 왔다. 그런데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바뀐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과 칼, 공천권, 정치자금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었다. 그것은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할 수 있는 근원적 힘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총과 칼은 없었지만 그 대신에 ‘지역’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공천권과 정치자금을 장악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따라서 양김 역시 제왕적 대통령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행정적 리더십’과 ‘입법의 리더십’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는 거기서 끝났다. 제왕적 대통령이 누렸던, 명령하고 통제하는 ‘행정적 리더십’도 그 운명을 다 했음은 물론이다. 이제 대통령은 조정하고 타협하는 ‘입법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다. 함 교수는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간파하지 못하고 자신이 명령하면 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말도 했다.

“제왕적 대통령이 군림하던 과거에는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면 그것이 정책으로 집행되어 국민에게 곧바로 전달됐다. 이른바 ‘체감행정’ 기간이 무척 짧았다. ‘통법부’라는 용어가 상징하듯이 국회가 철저하게 거수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아무리 강하게 말을 해도 그것이 국회를 통과할 확률은 극히 낮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해 내놓았던 3.30대책이 이듬해 새해 첫날이 되어서야 통과됐던 것이 단적인 사례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결실이자 비용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갖춰야 할 제일 중요한 덕목은 여야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 수 있는 설득력이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현재의 유력 대선 후보도 그것과 거리가 먼 인물인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함 교수는 ‘현재의 유력 대선 후보’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표 공약인 대운하를 두고 거침없이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대운하는 결코 비전이 될 수 없다”, “대운하에 집착하면 패착이 될 것이다”, “대운하 같은 공약 하나 가지고 ‘먹으려고’ 하기엔 이 나라가 그렇게 작지도 않고 만만치도 않다” 등이 그것이다. 함 교수는 이런 취지의 말도 했다.

“민심은 지금 보수에게는 ‘깨끗함’과 ‘안정감’을, 진보에게는 ‘세련됨’과 ‘통합력’을 요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생겨난 새 변수도 있다. ‘불안한 사람은 싫다’와 ‘조금은 품격이 있어야 한다’가 그것이다. 그런데 보수를 대표하는 이 후보는 ‘부패’와 ‘불안’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지금까지는 ‘불안해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선거의 판단 기준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그 기준은 이미 이명박 후보에게 넘어갔다. 문제는 이 후보가 노 대통령보다 ‘더 불안해 보이는’ 모습을 자꾸만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후보의 단점과 약점을 꾸짖어줄 현명한 참모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안 보인다. 이명박의 적(敵)은 문국현도, 정동영도 아니다. 이명박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이명박 자신이다.”

실천적 학문을 연구하는 전문가답게 함 교수는 대선과 관련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몇 가지 특징을 통해서 민심의 흐름을 읽어내는 선거 공학적 분석도 시도했다. 이와 관련 그가 제일 먼저 주목한 화두는 ‘세대론’이었다. 2002년 대선의 분수령을 가른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세대 차이’였다는 점에서 그의 분석은 매우 흥미로웠다.

“2002년 대선 투표 결과를 보면 당시 젊은 세대의 다수가 진보적 성향을, 노년 세대의 다수가 보수적 성향을 보였다. 인구 비율로 따져보면, 20~30대가 전체 인구의 50%, 50대 이상이 30%였다. 투표율은 젊은 세대가 약 60%, 50대 이상이 약 80%였다. 이것을 합산하면 젊은 세대의 투표 효과가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노무현의 승인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2007년의 상황은 다르다. 우선 20~30대에서 40대로 넘어간 인구를 제외하니까 그 비율이 43%로 감소했다. 반면 50대 이상은 44%로 증가했다. 여기에 2002년의 투표율(60%와 80%)을 그대로 적용하면, ‘세대 차이’가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세대론’은 이번 대선에서 큰 이슈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함 교수는 ‘호남 민심’의 향방에도 주목했다. ‘소수파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특성을 갖는 호남 민심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가 아니라 이명박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지난 9월 29일 통합신당 경선에선 예상을 깨고 정동영에게 ‘절대 강자’의 지위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호남 민심이 제3후보인 문국현에게 길을 터줬다. 이것이 함 교수의 해석이다.

“대운하, 개성공단, 일자리 창출은 하나의 프로그램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비전’은 아니다.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과연 그들 중에서 누가 ‘시대정신을 꿰뚫는’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민심과 천심은 주목하고 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고 외친 이승만의 건국,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를 노래한 박정희의 산업화, ‘이제는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강조한 김대중과 김영삼의 민주화 정도는 돼야 비전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 일단의 문제점과 한계성 노출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민심을 움직였던 그 거대한 비전들, 그것을 계승하면서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21세기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선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뉴프런티어’를 기다리며

함 교수는 분열과 침체의 수렁에 빠져 있던 미국인 앞에 ‘뉴프런티어’의 새로운 지평선을 제시했던 케네디를 거론했다. 케네디는 “달나라로 가자”고 선언했고, 그 비전의 ‘전후방 효과’는 실로 막대했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8명이 이과 계열 대학을 선택했고, 문과를 선택한 2명은 미국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일원이 되어 세계 각지로 파고든 것이다

“현재의 ‘한국식 노동조합’의 투쟁방식이 지속되면 한국경제는 망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카운터 파트너인 ‘한국식 재벌체제’도 문제가 많다. 노사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으면 재벌이 밀린다. 왜? 불법비리 추궁하면 할 말이 없다. ‘휠체어를 탄 재벌 총수’가 모든 것을 상징한다. 결국에는 선진국처럼,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 순수혈통과 동종교배를 고집하는 조직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이 도리어 그런 재벌 2세들을 ‘위대한 경영자’로 미화하고 찬양한다. 그들이 정치자금, 기업광고, 학술지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노사의 진정한 상생과 통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리더십이 절실하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함성득 교수의 이력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미 텍사스대 정책학 석사
▲ 미 카네기멜론대 정책학 박사
▲ 미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연구원
▲ 미 조지타운대 아시아공공정책연구소 소장
▲ 미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 초빙교수
▲ 한국의회발전연구회 편집위원
▲ 한국행정학회 영문행정학회보 편집장
▲ (재)한국의회발전연구회 상임이사
▲ (사)한국대통령학연구소 소장
▲ 고려대 정경대 부학장상훈: 1998 케임브릿지대 세계인문센터 ‘올해의 세계적 인물’ 선정, 연세대 총장졸업상, 미 존슨대통령재단 최우수졸업상, 연세대 정치연구학회 제1회 학술상 외저서: <대통령학>, <한국의 대통령과 권력>, <대통령비서실장론>, <한국의 역대대통령 평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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