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치컨설턴트가 한나라당에 던지는 정치공학적 훈수
“한나라당 구성원들 거의 모두가 빅2 앞에 줄을 서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트 경선’을 걱정하는 ‘깨어 있는 그룹’이 있어야 한다”(박효종 서울대 교수) “중심모임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고 하는 기회주의 세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7월 30일 토론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당원) 이른바 ‘당이 중심 되는 모임’(중심모임, 회장 맹형규 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적이다. 10명의 의원 등 21명의 지역구 대표가 참여하고 있는 중심모임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청중들이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발제자는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 그의 동의를 얻어 발제문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오늘날 대통령 후보들은 하루에 적어도 10시간 이상(심할 때는 15시간까지) 대중에게 노출되어 있다. 또 수십 년 전 자신의 사생활뿐 아니라 조상 및 친인척의 사생활도 낱낱이 공개된다. 법도 없고, 인권도 없다. 악의적인 정보는 광범위하며, 집요하며, 빠르게 생산되고 유통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애초에 ‘좋은’ 지도자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유권자는 누군가를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반대하기 위해서 투표장에 간다. ‘흔쾌히’ 찍지 못하고 ‘마지못해’ 찍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최후의 승자처럼
스포츠와 선거는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다.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승부의 세계에서는 전력과 명성이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단판승부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이변이 일상(!)으로 일어난다.
전력이 아무리 우세해도 상대를 가볍게 보거나 경기 당일의 컨디션이 나쁘면 언제든 질 수 있다. 2006년 개최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은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그래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일본의 승리를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도쿄돔에서 치러진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을 3:2로 극적으로 이긴다. 본선에서 다시 마주 친 두 나라는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또 다시 한국이 극적으로 2:1로 이겼다.
두 경기 다 믿을 수 없는 수비를 보였다. 완벽한 경기였다. 이 두 경기는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을 연상시킨다. 전력상 우위에 있었던 한나라당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중요한 고비마다 어이없는 실수로 연거푸 무너졌다. 반면 민주당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정신력과 뛰어난 전략, 거기다가 적의 분열이라는 운까지 따라 이변을 연출했다.
두 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전력 우세는 더욱 뚜렷해졌다. 거의 모든 조건이 2002년보다 유리해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범여권의 분열, 수년간 지속된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 보수세력의 결집력 및 전투력 강화, 복수의 유력 후보, 투표율의 상승 가능성과 부동층의 축소(최근 2~3년 세계 각국의 선거 결과 일정한 경향성 있음.
1990년 냉전 이후 불확실성의 증대로 인한 부동층의 증가와 판단 유보에 따른 투표율 저하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전반적 보수화 경향 나타남. 불안정성에 따른 유동성 해소), 19~24세 세대의 보수화 경향(부모세대와 동조화 현상), 민주화 진전에 따른 (폭발력 있는) 이슈의 부재, 호남 결집력의 상대적 약화(95%가 또 가능할까?), 호남-충청 연합의 붕괴 조짐, 유력한 영남 후보 부재(영남에서 30% 득표할 수 있는 노무현 같은 후보), 민노당의 약진 가능성, 범여권 대선 조직의 결집력 약화(현재와 같은 구도에서 지역구 책임자가 가능할까?), 한나라당 분열 가능성 상대적 약화(정주영, 이인제, 정몽준과 비교하여) 등등 객관적 전력의 우위는 분명하다. 그러나 전력대로 승부가 난다면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더 많이 우승해야 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과 일본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결승에서 세 번째로 마주친다. 앞선 두 번의 결과에 따라 이번에는 누가 이길지 모른다고 예상했으나 일본이 한국을 크게 이겼다. 그렇다면 한나라당도 두 번의 패배를 딛고 전력의 우위대로 세 번째 승부에서는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선거에서도 전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전략이다. 현대 선거에서 전략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전략의 부재는 전력의 우위를 한 순간에 날려 보낸다. 선거에서 전략은 단순하다. 세 가지가 전부다. 우리 표 지키기, 표 분산 시키기, 유력 후보 표깨기다.
그 중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우리 표 지키기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선거 자체를 치를 수가 없다. 1997년 대선의 경우 DJ는 세 가지 모두 성공했다. 호남-충청표와 개혁 성향의 표 등 자기 지지기반을 완벽히 지켜냈고, 이인제의 출마로 표 분산 효과도 톡톡히 봤으며, IMF와 두 아들 병역문제로 이회창은 지지기반마저 결집시키는데 애를 먹었다. 이러한 양상은 2002년에도 그대로 재현됐다. 민주당은 전략에서 승리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1997년, 2002년 모두 자기 기반마저 지켜내지 못했다. 전략이 부재했다. 패배가 불가피했다.
게임의 구도 없으면 브라질도 필패
선거에서 세 가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조직과 캠페인이다. 조직적 측면에서 보면 범여권은 1997년, 2002년뿐만 아니라 2007년에도 연합 없이 승리가 불가능하지만 한나라당은 연합이나 제휴 없이 집권이 가능한 유일한 정당이다.
따라서 조직적 측면은 절대적 요소가 못된다. 중요한 것은 캠페인 전략이다. 이것이 선거의 처음이고 끝이다. 최근의 선거는 조직 선거에서 캠페인 선거로 이동 중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캠페인 전략은 두 가지가 핵심이다. 프레임(구도)과 메시지다. 이것이 선거 전략의 전부다.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난 브라질 선수들도 스리백, 포백, 혹은 원톱, 투톱의 포메이션 없이는 승리하기가 어렵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전략 없는 전력 우위는 한 순간에 사라진다.
선거에서 어떤 프레임에서 어떤 메시지로 싸울 것이냐가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선거는 구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는 어떤 프레임에서 싸우느냐에 따라 승패의 70~80%가 결정된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사자와 호랑이가 싸울 때, 들판에서는 사자가 유리하고 산에서는 호랑이가 유리하다고 하지 않는가?
씨름에서도 샅바를 잡은 쪽과 놓친 쪽의 유?불리는 뻔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은 지금 대단히 위험한 프레임으로 가고 있다. 아니 이미 갔다. 더 솔직히 말하면 되돌아 빠져 나오기 힘들 정도로 깊이 들어갔다. 유리한 프레임을 놔두고 불리한 프레임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아마도 범여권이 온갖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기적적으로 승리한다면 그것은 한나라당이 스스로 좌초한 것이다.
전작권 환수 이슈를 상기해보자. 이슈는 네 가지 프레임에서 싸울 수 있다. 군사적, 정치적, 역사적, 경제적 영역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불리한 프레임은 역사적,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순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나라당에 유리한 프레임은 그 반대일 것이다. 그렇듯 이번 대선에서도 네 가지 프레임이 있을 수 있다. 국가경영능력, 미래비전, 역사인식, 도덕성이 그것들이다. 지난 총선 이후 한나라당의 절대적 우세는 국가경영능력이라는 프레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프레임은 도덕성의 프레임을 압도했다.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깨끗한 무능’과 ‘부패한 유능’의 대비 속에서 유권자들은 집권세력이 무능하다는 한나라당의 일관된 메시지에 반응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이 온갖 추문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서 압승하게 된 것이다.
또 집권세력이 지나치게 과거의 담론들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 ‘미래를 봐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메시지가 추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빅3의 ‘작은’ 성취와 더불어 설득력을 얻었다. 마치 사자가 계곡에서 싸우듯 이 프레임에서 여권은 힘을 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패배하였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반전되었다. 금년 들어 한나라당 두 후보 간에 검증 공방이 가열되면서 어느덧 이번 대선은 도덕성의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논란을 벌이면 벌일수록, 해명을 하면 할수록 논란을 피할 수 없고 해명할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이다.
도덕성의 프레임보다 한나라당에 더 치명적인 것은 역사인식의 프레임이다. 범여권이 지난 주말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의 “관람객이 500만을 넘으면 이번 대선에서 이긴다”라는 호언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의 싸움, 기억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다. 무엇보다 역사의 프레임은 분열로 지리멸렬하던 범여권에게 ‘대통합’의 강력한 동력을 제공한다.
역사인식의 문제는 범여권의 모든 갈등을 순식간에 해소시킬 것이다.
1988년 듀카키스 악몽을 기억하라
한나라당 후보가 확정되면 대선은 불과 4개월 남는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다시 유리했던 프레임으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범여권의 경선 과정에서 도덕성과 역사의 프레임은 더욱 공고화 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스스로 너무 많은 약점을 노출시켰기 때문에 범여권은 그곳에 집중적으로 타격을 가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신 차리고 전가의 보도였던 ‘무능좌파심판’이나 ‘민생파탄’을 다시 꺼내 봐도 대중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고, 북핵 문제 해결도 순항하고, 비록 평창이 실패하긴 했어도 대부분의 국제대회를 유치했고, 부동산 가격은 안정되고 있으며, 증시는 활황이고, 수출은 여전히 호조고, 1인당 GDP는 2만 달러를 넘을 것이고, 국가 신용등급은 올라갔는데 대중들이 얼마나 과거와 같이 공감할 것인가?
오히려 한나라당이 여전히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부패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세력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은 프레임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빠져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과거를 덮고 밝고 희망찬 미래로 가자고 하면 누가 믿어줄 것이며, 그럴만한 미래비전을 제시할 수나 있을까?
프레임을 바꾸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을 뒷받침할 실체가 있어야 하고 오랜 시간 반복된 메시지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스스로 깔아 놓은 도덕성과 역사 인식의 프레임은 역사상 가장 추악한 캠페인 중 하나로 기억되는 1988년 미국 대선처럼 될 수 있다.
공화당에게 두 번 연속으로 패배한 민주당이 1988년 미국 경제의 위기 속에 듀카키스 후보가 앞서 갔으나 엄청난 네거티브 캠페인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조지 부시(아버지) 부통령을 150년 만에 부통령에서 곧바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으로 기록되게 만들었다. 한나라당 후보들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듀카키스는 진보주의자라는 사상이 문제가 되었다.
역사인식의 문제처럼 범죄에 대한 그의 안이한 인식을 집중 공략했다. 듀카키스는 그 선거에서 부시 진영의 엄청난 네거티브 공세에 절대적으로 앞서 있던 지지율을 다 까먹고 역전 당했다. 한나라당이 이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노무현 정권 심판에 안주한 나머지 한나라당은 상황이 변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리고 지금 당장 할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무엇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지는 고사하고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하는 세 가지 정도의 쉽고도 단순한 이유도 각인시키지 못했다. ‘선진화’라는 구호는 선점했지만 선진화의 구체적 상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우리가 당장 할 일이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혹 제시했다면 그 정도로는 한나라당에 절대 불리한 프레임을 유리한 프레임으로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진정한 변화와 혁신 없어도 패배 필연
1997년 영국 노동당이 토니 블레어를 앞세워 18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것은 새로운 노동당의 노선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는 뒤로 한 채 보수당을 공격하기에만 급급했다. 대중들은 노동당이 더 많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미국의 민주당도 1992년 클린턴을 내세워 정권을 되찾아 올 때까지 세 번을 패배했다. 80년대의 무력한 민주당을 바꾸기 위한 DLC의 새로운 민주당 노선을 통해 비로소 그들은 집권했다.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프랑스 사회당이 3번 연속으로 집권에 실패한 것도 변화와 혁신을 모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002년 대선에서는 결선투표에도 올라가지 못한 충격적 패배를 당하고도 절박감을 못 느낀 그들을 대중은 외면한 것이다. 결국 지피(知彼)를 통해서가 아니라 지기(知己)를 통해서 집권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어떤가?
세 번째 패배는 없다는 확신이 들 정도의 변화와 혁신을 했는가? 만일 한나라당이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수십 년 전 과거의 프레임으로 당 전체를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력의 압도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전략의 부재로 인한 어둠이 가시지 않는 한나라당이 과연 집권할 수 있을까?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일러스트 서영준 화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