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전문가가 말하는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 7가지

한승호 기자 hanphoto77@ytongsin.com
“한국의 유권자는 자신의 출신 지역이나 정치적 신념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반인들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서 부화뇌동을 한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여론조사에 보다 뚜렷한 영향을 받는 집단은 따로 있다. 정치권과 언론계 등 ‘파워 엘리트’ 집단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정치권과 언론계 등 ‘파워 엘리트’ 집단이 여론조사와 관련해 보여준 왜곡된 사례를 소개했다.
(정치권) “흥미로운 점은 여론조사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 몫이었다. 반면에 여론조사 자체를 후보 단일화 등 잘못된 용도로 활용함으로써 오남용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비한나라당 진영의 몫인 경우가 많았다.”
(언론계) “표본오차 범위 내에서 1~2%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언론은 단 1%라도 이기고 지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2% 하락, 1% 반등 등의 표현을 쓰거나 작은 폭의 변동도 그래프 상에서는 잔뜩 강조해 보도하는 것은 최악의 경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김 소장은 여론조사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계의 시각이 교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는 민주국가에서 최종적 권력을 행사하는 국민의 의사를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파악할 때 활용되는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진 도구일 뿐이다. 항상 오차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아무 용도로나 그것도 특히 정치적 무게가 큰 부문에서 절차를 대신해 쓰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만능하고는 거리가 멀다.”
편파보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양적 잣대에 의한 게이트키핑
현장의 시각에서 볼 때 여론조사 보도가 현실 정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언론의 태도 변화라고 생각된다. 즉 ‘뜨는 후보’에 대한 집중적 관심 또는 집중적 비난은 유권자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여론조사에서 낮은 지지도를 얻은 후보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낮다면 유권자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질적 판단에 의한 게이트 키핑이 아닌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양적 잣대에 의한 게이트 키핑이 일어날 경우 특정 후보에 대한 정보 자체가 전달되지 않아 현실 정치에서는 편파적 기사보다도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 2002년 노무현 후보의 경선 승리가 유력해진 이후 대략 3월 19일 이후부터 4월 중순까지 계속된 노 후보에 대한 사상검증 등에 대한 보도는 4월 말까지도 대략 50% 선의 높은 지지도를 기록한 노무현 후보 지지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또 최근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락추이이긴 해도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 역시 국민들이 언론보도의 논조와 별개로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반면 특정 후보 자체에 대한 노출이 부족한 경우에는 여론 자체가 형성되기 힘들어 결과적 영향은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여론조사에 대한 언론보도에 대한 고전적 논점은 바로 표본오차에 대한 것이다. 표본오차 내의 지지도를 의미 있게 다루는 문제는 진부하기까지 한데,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는 않고 있다.
그만큼 단 1%라도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해 언론이나 정치권, 그리고 우리 사회가 민감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기사가치를 높이기 위해 2% 하락, 1% 반등 등의 표현을 쓰거나, 작은 폭의 변동도 그래프 상에서는 잔뜩 강조해 보도하는 것은 최악의 경우에 해당된다.
경마식 여론조사보다 심층적 여론조사가 더 편향적일 수 있다
여론조사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제기는 좀더 심층적 여론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지적은 논리적으로는 타당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왜곡 위험성이 훨씬 많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대목이다.
이른바 경마식 보도라는 것은 단순한 지지도 중심의 보도를 가리키지만 현실적으로는 질문 자체의 편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어 오히려 불편부당한 여론조사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다. 반면 심층보도라는 이름으로 조사된 문항의 경우에는 일단 문항 순서상 앞 문항의 정보가 뒷 문항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또 물어 보는 방식이나 문장 구성에 따라 편향될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후보들의 이념 성향에 대한 조사 역시 이러한 위험성을 더욱 크게 가지는데 특정 후보의 이념을 측정하기 위해 어떤 문항을 넣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이념 성향의 수치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문제이다.
외국에서도 대체로 우리나라보다는 경마식 보도가 훨씬 과하다는 점에서 단골메뉴인 경마식 보도에 대한 지적은 피상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언론사 보도의 또 다른 문제는 적어도 언론사의 의뢰를 받아 실시된 여론조사 문항은 분명히 ‘언론사’의 것이라는 점이다. 또 언론사 의뢰로 공표된 여론조사와 관련된 모든 권리가 실제 언론사에 있음은 분명하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지지도 질문은 특정 언론사가 자신의 편의대로 문항을 만드는 경우가 드물지만 적어도 일반적 이슈에 대한 질문은 언론사의 입장에 따라 채택되거나, 그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북문제라 할지라도 북한에 대한 신뢰도를 물어볼 경우 항상 낮을 수밖에 없지만, 만일 북한을 적으로 보는지, 아니면 민족으로 보는지를 질문하면 민족이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과 관련된 문제와 연관된다.
각 언론사와 여론조사 회사의 업무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언론사가 주문한 문항에 대해 여론조사 회사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전문적 시각에서 특별히 ‘기계적 중립성’을 해치면서 유도질문을 하고 있는 경우가 아닐 때에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특정 정당이 외부 조사기관에 여론조사를 의뢰할 때 자신들의 약점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문항을 빼놓고 조사하는 것을 여론조사 회사가 통제하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언론사별 제각각 여론조사 결과 정확히 봐야 한다
한편 최근에는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조사기관마다 다른 수치를 내놓는 것에 대해 이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여론조사 자체가 표본오차 또는 비표본오차에 의해 불안정한 데이터를 가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상존한다. 그러나 여론조사 회사들마다 데이터가 다르다며 여러 여론조사 회사의 데이터를 비교하면서 표집오차나 문항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보도라 말할 수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누가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한가?’를 묻는 적합도 질문과 ‘당장 내일 투표한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는가?’를 묻는 지지도 질문의 차이가 이러한 편차를 만들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다행이다. 여론조사에서 만일 동일하지 않은 문항을 질문했는데도 결과가 같다면 실제 조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 면접원 전화조사든 ARS 전화조사든 직접 면접조사든 조사방식에 따라서도 분명히 결과는 차이가 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굳이 타 매체의 여론조사까지 비교하고 싶다면 기사에서 이러한 특성을 반드시 표기해줘야 오해의 소지가 없다.
여론조사 보도에 있어 또 한 가지 문제는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회사에 대한 판단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사가 나름대로 여론조사 회사의 공신력을 확인하고 의뢰한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조사 결과를 받아서 보도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해당 조사기관 또는 조사기관의 대표 등에 대해 평판 등을 확인하고 보도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한편 최근에는 언론사들이 자사 홈페이지의 라이브 폴이라고 불리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는 경우도 드물고, 왜 여론조사 회사의 결과가 홈페이지 조사 결과와 다르냐는 질문이 없어져서 다행이다.
조사자가 표본을 선정하는 것이 아닌 응답자가 제 발로 와서 응답을 하는 홈페이지 여론조사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든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든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모집단을 규정할 수도 없고, 의도를 가진 표본을 통제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언론사 간 성향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여론조사와 비슷하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올려놓는 자체가 결과적으로 여론조작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 중 판세보도, 국민에게 부실한 정보 준다
여론조사 보도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 중 판세보도와 관련된 것이다. 또 여론조사의 공표가 금지되면서 신종으로 등장한 정치권의 선거 캠페인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즉 여론조사의 공표가 금지되면서 각 언론사가 애매한 수준에서 판세를 각기 보도하게 만드는 동시에 소수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에게 판세분석을 의존하는 등 일반 국민에게 오히려 부정확하고 품질이 낮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바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지난 총선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거여견제론, 거야부활론, 노인폄하 발언의 파장 등에 대한 보도들은 사실 대부분 실제 여론조사 흐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각기 다른 주장을 펴며 여론조사 보도금지기간을 한껏 향유한 측면이 없지 않다.
김헌태 (한국여론조사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