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게 무슨 말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2007년 7월 3일 오전 11시 서울시 상암동 홈에버 상암점.
민주노총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홈에버 매장 밖에는 젊고 건장한 ‘청년’이 두세 명씩 짝지어 서 있다. ‘용역’이라 불리는 청년들이다. 집회 참석자들의 팻말에서 등장한 용어로 옮기자면 ‘용역깡패’쯤 된다. 청년들이 입은 하얀 셔츠는 구김이 없다. 매장 밖은 조용하다. 반면 홈에버 1층 매장 안은 시끄럽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 소리가 아니다.

“외주화 즉각 중단하라.”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부분 중년 여성이다. 얼마 전까지 홈에버 계산대를 지켰던 이들. 지금은 계산원으로 일하는 ‘보람’보다 비정규직의 ‘설움’을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하지만 이제 ‘비정규직’ 딱지도 얼마 못가 떨어질 예정이다. 회사는 계산 업무를 외주업체에 용역화하기로 했다. 비정규직은 해고다.
민주노총 기자회견은 외주화에 반대한 비정규직이 모인 자리다. 비정규직이 홈에버 상암점 영업을 멈춘 지 나흘째. 종이상자와 스티로폼 방석이 살림의 전부다. 몇몇 비정규직은 맨발로 마트를 누빈다. 하늘색 옷은 구깃구깃. 여러 날 이어진 ‘바깥’ 생활의 흔적이 묻어난다.
민주노총 기자회견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홈에버 비정규직이 상징적인 의식을 준비했다. 길이 4m 가량 붉은 천에 꽃으로 수를 놓는다.

“일 하고 싶어요.”
노래가 들린다. ‘비정규직철폐가’, ‘사랑으로’. 먼저 꽃을 꽂은 어떤 이는 계산대를 등지고 몰래 눈물을 찍어낸다. 계산대 저 편은 제 기능을 잃은 카트가 ‘쌓여’ 있다. 흔히 말하는 ‘바리케이드’다. 젊고 건장한 청년 둘이 카트 뒤에 서 있다.
점거 나흘째인 비정규직 계산원들의 ‘생소리’를 전한다. “국회의원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달라”는 짧고 간단한 질문 한 가지만 던졌다. 취재원의 요구에 따라 익명 처리한다.

“사람들 다들 살기 힘들다. 힘든데, 이럴 때일수록 노동자 기반부터 잡아줘야 한다. 국회의원이 나라 걱정을 한다면 노동자부터 잘 살게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서로 정치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속한 당이 서로 우월하다고 싸움만 하고 있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노동자 입장에 서서 세상을 겪어보고 입법권을 행사했으면 좋겠다. 노동자의 설움을 알아야 국회 일도 할 수 있는 거지. 노동자가 잘 살아야 기업도, 나라도 잘 사는 것이다.”(ㅅ씨, 42세, 홈에버 면목점 4년차)

“국회의원은 탁상공론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서민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와 봐야 안다. 내 남편도 사업을 했는데, 부도나기 전까진 나도 이런 거 알지 못했다. 노동자가 뭔지, 노동조합이 뭔지 몰랐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까 아는 거다. 비정규직법 때문에 내가 해고됐다는 것. 나는 이제 너무 잘 안다. 국회의원도 탁상 앞에서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실제로 살아봐야 서민들의 삶을 알 수 있다.”(ㄱ씨, 54세, 홈에버 시흥점 6년차)
“비정규직법 철폐. 그거 한 마디면 된다. 비정규직법 무효화시켜라. 비정규직법은 시행되기 전부터 대량해고, 외주화 등을 불러왔다. 철폐하라, 없애 버려라. 비정규직법 시행 전에는 중소기업들은 나름대로 고용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법 시행 후 오히려) 노동자와 정규직이 피해를 보고 있다. 노동자의 눈에 눈물이 나면 박성수(이랜드 회장)의 눈에는 피눈물이 날 것이다. 사실 나는 정규직이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늘 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이 쫓겨나면 내일은 나도 쫓겨날 수 있다. 예를 들면 타 지역 지점으로 일자리를 전출 시키는 게 있다. 타 지역 지점으로 전출시키면 주부들의 경우는 일자리를 옮기기 힘들다. 집 근처에서 일하기 원해서 지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또 직원이 원하지 않는 업무를 시키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계산직원에게 가전제품 판매를 맡기는 등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업무가 다른 것을 알면서 그러는 거다. ‘아웃소싱’도 마찬가지다. 박성수 회장이 내는 십일조가 130억원이라고 하더라. 마음만 먹으면 정규직화 해줄 수 있는데 해주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승리해야만 한다.”(성과 이름 밝히지 않은 이, 49세, 홈에버 목동점 6년차)

김유리 기자 grass100@ytongs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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