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상비약 수준의 일반의약품, 슈퍼판매 허용해야

의약분업 이후에 약국 업무가 처방조제에 집중되고 병의원과 가까운 약국이 성행하면서 휴일에 약국 찾기가 힘들어졌다.

평일 저녁 늦은 시간이나 토요일 오후 시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갑자기 배탈이 나거나 사소한 감기에서 시작된 가벼운 질환에 약국을 찾지 못해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할 때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이러한 국민들의 불편과 선택권 제한을 외면하고, 오히려 감기 등 경증 질환의 본인 부담을 늘리는 정률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시책을 발표했다.

의료접근도가 낮은 취약계층의 희생을 담보로 건강보험의 재정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본인 부담의 증가로 의원과 약국을 이용하던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하게 되고 의료이용에 제한이 가해지게 됨에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과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실련은 경증질환에 대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고 의료 선택권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가정용 상비약 수준의 일반의약품을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도 자유롭게 판매 허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의 의약품 사용의 편의성을 높이고 가벼운 질환에 대한 자가 치료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의료비용의 절감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간단해 보이는 문제도 아직까지 충분한 여론형성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일반의약품을 약국 이외의 소매점에서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시행하기도 전에 약계의 커다란 반발에 부딪혀 갈등만 유발할 수도 있어 보다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과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현재 상황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의약품은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2분류 체계로 구분되어 있다.

일반의약품 중에는 오남용의 우려도 없고 사용법이나 효능이 일반화되어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의사의 처방이나 약사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의약품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전문의약품이든 일반의약품이든 판매권은 약국 개설자인 약사와 한약사로 제한하여 독점 판매권을 부여하고 있다.

또, 현재는 약사법의 의약외품 규정에 따라 약국외 판매허용 품목을 늘리는 정도로 그 범위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2002년에 약국외 판매가 허용된 의약외품은 구충청량제, 체취방지제, 땀띠분제, 치약제, 욕용제, 탈모방지제, 염모제, 치아미백을 위한 첨부제 등으로 정작 소비자들이 급할 때 필요로 하는 가정용 상비약 수준의 의약품은 제외되어 있다.

올해 초 범위를 늘렸다고 하는 의약외품 범위도 땀띠 짓무름제와 치아미백제에 일부 품목을 추가한 정도다.

하지만 미국, 영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비처방약이나 일반 판매약을 소비자가 슈퍼마켓, 소매점 등에서 자유롭게 구입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의 영향으로 일상생활에서 일반의약품의 필요가 잦은 노인들에게 필수적인 제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의 일반의약품 수요가 날로 증가하고 자가 치료에 대한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려 소비자들의 불편을 가중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까.

일반의약품의 약국외 판매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혼재되어 있는 의약품 분류체계를 바꿔야 하고 이 분류에 포함시킬 의약품에 대한 전문가들의 입증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또 약물의 무분별한 일반의약품 사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포장용기, 사용설명서의 개선 등이 병행돼야 한다.

그리고 현행 약사법에서 모든 의약품을 약국 내에서만 판매하도록 취급범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약국 이외의 곳에서 일반의약품의 판매를 추진할 경우 약사법을 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강조할 부분은 아무리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품질이 객관적인 기준에서 볼 때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소비자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의료문화의 권위적인 문제를 유지하는 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가벼운 질환에 대한 치료조차 할 수 없는 극히 일부 품목을 의약외품이라는 이름으로 제한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의료이용권마저 보장하지 못하는 것으로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가벼운 질환은 안전성과 효과성이 검증된 비처방 의약품분야에서 자가 치료를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할 때이다.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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