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囊中之錐)를 읽고

박 준 서(평택시 비전동)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말이 있다. 남의 참외밭에서 몸을 구부려 신발을 고쳐 신는다면 밭 주인에게는 참외를 따먹으려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고, 배나무 아래에서 갓 끈을 고쳐 매느라 손을 머리위로 올린다면 배를 따먹으려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것이다. 오해란 대부분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현자(賢者)는 결코 이러한 일을 만들지 않는다. 제(劑)나라 위왕(威王) 때 [열녀전(烈女傳)]의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다.

지난주 평택시민신문의 모수자천(毛遂自薦)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읽고 안타까움에 반론(反論)을 제기하고자 한다.

평원군(平原君)의 식객(食客)이었던 모수(毛遂)는 자천하여 초왕(楚王)을 설득하여 조(趙)나라를 구하는 지대한 공을 남기는 과정에서 생겨난 낭중지추(囊中之錐)의 고사성어(古事成語)를 비유하며 현재 재임 중에 있는 우리 시민이 뽑은 위정자(爲政者) 및 목민관(牧民官)의 실명을 거명하며 젊고 패기에 찬 인재들이라고 칭찬을 하였는 바 이것은 잘못된 비유이다.

불교(佛敎)의 가르침 중에 일월삼주(一月三舟)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의 달도 세척의 배에서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는 뜻으로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한, 고사성어에 개관사정(蓋棺事定)이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관 뚜껑을 덮고서야 평가가 내려진다는 말로 생전의 평가는 정확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임기 또는 일생이 끝나서야 비로소 참된 가치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당시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맹상군(孟嘗君)을 비롯하여 평원군, 춘신군, 신릉군 등은 식객을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천명씩 거느려 위세를 삼았다. 식객들의 대부분은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좋아해서 벼슬에는 뜻이 없거나 조정(朝廷)에 발탁되지 못한 자들이 고관(高官)의 밑에 있으며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어느 책을 읽어봐도 모수(毛遂)가 젊고 패기에 찬 인물이라고 기술된 것이 없다. 맹상군의 식객으로 옷을 훔쳤던 개도둑이나 닭의 울음소리를 내어 주인을 구했다는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성어에도 이들이 젊고 유능하다는 얘기는 없다. 이렇듯이 낭중지추(囊中之錐)의 뜻은 현직에 몸담고 있건 없건 간에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어떠한 일에 직면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을 이루면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오히려 낭중지추(囊中之錐)보다는 재주 있는 사람이 그 기량을 발휘할 곳에 놓음을 말한다는 뜻의 추처낭중(錐處囊中)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내년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지역의 일꾼을 뽑는 중요한 해이다. 벌써부터 신문에는 후보군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두세명만 모여도 입방아를 찧고 있다. 참으로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에 실명을 거명하며 유독 나이가 젊다는 것을 강조하며 칭찬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고 본다. 재야(在野)에 있다가 불차탁용(不次擢用)된 것도 아니고 정례적인 자리이동으로 옮겼을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낭중지추(囊中之錐)와 같이 뜻을 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정자나 목민관은 당연히 그 직분에 걸맞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본분(本分)이고 뽑아준 시민에 대한 약속이다. 출사표(出師表)를 던졌을 때의 시민에 대한 봉사의 자세, 평택시 발전을 위한 노력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여종여일(如終如一)하는 마음자세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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