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덕 일 평택농민회 부회장
지난 토요일 경기일보에 눈에 띄는 기사하나가 있었다.
" 평택 세관 내 참기름 냄새가 진동 - 중국 영성시와 평택간 카페리호 취항기념으로 중국을 다녀 온 일부 도의원과 시민 사회단체장 등이 중국산 농산물을 규정을 초과 하여 들여오다....."
지난 봄 서해대교를 건너면서 입이 벌어질 만큼 큰 평택항의 규모와 시설을 보면서 지역의 새로운 명물이 되는가 보다 싶었다. 질 낮은 중국농산물을 수입하여 국산으로 둔갑시켜 몇 배의 차익을 남겨 팔았다는 뉴스를 보고 상도덕도 없는 몇몇 보따리상들의 행태려니 했다. 그런데 바로 그 ' 평택항 '을 통해 먹고살기 힘든 보따리상도 아닌 우리 지역의 ' 명망 있는 인사' 들께서 외국산농산물을 앞다퉈 들여오다 벌인 헤프닝이라니.... 평택항을 코앞에 두고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으로서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얼마 전 집사람과 아이들이 텔레비전에서 '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영화를 보고 참 대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안사람은 끼니 굶기를 밥먹듯 하던 삼 형제가 배불리 먹고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는 대목에서 눈이 퉁퉁 붓게 울고, 일부러 라도 끼니를 굶어보지 않은 아이들은 그런 엄마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나나 우리 집사람도 끼니를 거르는 경험을 한 세대는 아니지만 쌀 소비를 줄이려고 잡곡밥을 싸 가지고 다녔고 정부에서는 혼식을 장려한다고 하루걸러 도시락을 검사하던 때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리 먼 옛날의 일도 아닌데 우리는 벌써 그때의 일을 까맣게 잊고 산다.
또한 농촌에서는 '자급자족'을 강조하여 밥맛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다수확의 통일벼심기를 적극 권장하였고, 밥맛은 좋지만 수확이 떨어지는 추청벼(아끼바리) 는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못자리를 엎어버리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90년대 중반에는 2년에 걸친 냉해와 풍수해로 수확량이 급감하여 식량재고가 200여 만 섬을 밑돌아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2001년 지금, 쌀을 수확하기도 전부터 쌀을 둘러 싼 사회, 경제적 분위기는 그때와 비교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아니 분명히 올 봄에만 해도 '다수확 양질미'심기를 적극 권장했었는데 '다수확'자는 쏙 빠지고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 느니 " 소비자가 선호하는 고품질미를 생산해야 한다" 면서 생산조정 운운하는가? 지역의 쌀값은 또 어떤가? 작년 이맘 때 쌀 1가마당(80Kg) 175,000 원 하던 것이 160,000원에 판매되고 그것도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며 일부 벼(다수확계통)는 판로조차 없어 애를 태우는 실정이다. 급기야는 안성지역에서 69세 된 농민이 벼 매입을 거부하는 민간 정미공장에서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역사 이래로 땀의 소중함과 땅의 진실 됨을 믿고 농사를 지어 왔던 농민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경제의 어려움과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농산물의 개방이 당연시되는 대세론 앞에서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하는지의 신념도 지조도 없는 우리 사회 지도층인사들 때문에 농민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특히 평택지역의 농민들은 중국의 WTO 가입이 기정사실화 되고 중국과 카페리호가 왕래하는 현실 앞에서 어느 누구보다 불안한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다.
이런 평택의 5만 농민들에게 작은 희망을 심어 주는 것은 평택시와 시민들의 역할이다. 급격한 쌀 소비의 감소로(1인당 연간 93Kg) 실제 1인당 한끼 지출되는 쌀값 은 약 250원 정도로 가장 싼 라면의 가격보다 낮다.
평택에서 총 생산되는 쌀은 약 115만 가마(80Kg)로서 올해의 경우 작년보다 평택농민들이 쌀값하락으로 입는 손해는 약 225억 정도의 소득감소로 이어진다. 물론 쌀 정책은 중앙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필수적이지만 지역에서의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농민들에게 주는 소득보장의 내용이 20여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는 농민을 생각해서라기 보다 농업이 갖고 있는 다양한 사회,공익적(지역사회의 유지, 환경보호, 문화보존) 기능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평택시의 농업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책과 노력이 우리 35만 시민들에게 안정적인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 쌀이 모자라던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평택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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