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현 (포승면사무소 근무)

"때~앵 그~렁"
잊을만하면 한 번씩 울리는 풍경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혼자 콩콩거리며 잰 걸음을 옮기는 발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집안은 조용하다.

이런 날엔 삼십 평이란 공간도 꽤나 넓게 느껴진다. 또한 한손으로도 다 헤아릴 만큼 몇 집 안 되는 동네인지라 조금은 무섭기도 하련만 그럴 여유가 없다. 오늘은 남편 조부 되시는 분의 제일이기 때문이다. 

각종 나물을 다듬고 야채껍질을 벗기는 등 제사 음식을 만들기 위한 1차 준비과정이 모두 끝났다. 그러자 나는 부엌 한 가운데 자리를 펴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눌러 앉는다. 그리고는 도마위에 넓적한 쇠고기를 가지런히 펴 놓은 뒤 가장자리의 기름기를 제거한다.

다음으론 미리 준비해 둔 양념장을 골고루 뿌리고 칼끝으로 자근자근 두드리기 시작한다. 식육점에서 기계의 힘을 빌려 한번 눌러오긴 했지만, 그래도 조상님 상에 올릴 음식인지라 정성을 다해 본다. 이름 하여   지금 쇠고기 산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빨리 끝내려고 칼질을 세게 할라치면 구멍이라도 날 까 싶어, 손목에 힘을 빼고 조심조심 두드리다 보면 산적은 양념을 흠뻑 머금은 채 촉촉한 격자무늬를 드러낸다.  나는 제법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차곡차곡 접시에 옮겨 담는다. 물론 깔끔하게 잘 익혀야 완성이지만 그것은 다음차례인지라 지금은 손을 놓는다. 그리고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다음 일에 몰입한다.

"때-앵 그~렁"
풍경이 내 마음을 읽고 있는 듯하다. 커다란 팬 위에 여러 가지 재료를 올려놓고 행여 타지나 않을까 분주하게 손놀림을 하다보면 진력이 나게 마련이다.

또한 기름 냄새를 오랫동안 맡다보면 식욕도 없어지고 두통마저 느끼게 된다. 나아가 시댁 식구들과 관련된 좋지 못한 잡념까지 내 마음을 흔들라치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이런 나의 심경을 풍경은 잘도 알아채는 듯싶다. 그럴 때마다 맑고 은은한 소리로 흐트러지는 내 마음을 가다듬게 하니 이루 고맙기 짝이 없다. 

 불과 몇 주 전 풍경을 하나 사서 달면 어떻겠냐는 남편의 제의에 나는 무조건 좋다고 했었다. 주로 사찰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 너무나도 평화로운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며칠 후 남편과 나는 서울 인사동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비싼 건 우리 형편과 거리가 있으니 싸면서도 소리만 맑은 것으로 사자는 결정이 처음부터 있었다. 그러기에 가격을 물어보고 비싸다 싶으면 지체 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다리품을 꽤나 팔았다. 결국 풍경을 비롯해 여러 가지 '종(鍾)'만 도매가로 파는 곳에서 채 2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음 날 바로 왼쪽 처마 밑에 달아 놓았건만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제대로 음미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으로도 우리의 결정이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제사 음식 만드는 일도 얼추 끝이 났다. 머리도 식힐 겸 거실 문을 밀치고 말없이 '풍경'을 바라본다.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풍경은 바람을 리듬삼아 요리조리 몸을 흔들며 교태를 부리는 듯하다.

마치 나를 유혹이라도 할 듯이....... 갑자기 나도 이런 풍경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은은한 목소리로 서로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함께 아름다운 추억에 잠길 수 있다면, 또한 중심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던 풍경을 기억해 내고 바른 길로 갈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그러기에 오늘 같은 날엔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가슴에 풍경 하나씩을 걸어두고 싶어진다.
마음속의 풍경, 생각만 해도 너무나 멋진 일이 아닐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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