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애 (평택시청소년쉼터 기획팀장)

▲ 이상애 (평택시청소년쉼터 기획팀장)
어르신들께 야단맞을 소리이긴 하지만 해가 바뀌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 명절을 지내고 보니 새삼 한 해 한 해 쌓인 나이의 무게가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새해인사도 나눌 겸 만난 친구들도 한결같이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가 되면 며칠간은 우울한 생각이 든다고 한다. 

나이에 대한 부담감은 눈가에 늘어가는 주름에 대한 걱정만이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맡은 책임감의 무게이기도 한 것 같다.

이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가까워 오면서 살아온 삶에 대한 평가와 살아갈 삶에 대한 계획을 해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한 때 사회의 모순만 눈에 보였고, 당장 세상이 뜻하는 대로 바뀌지 않는 것을 개탄하며, 기성세대(어른)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던 시절이 있었다.

이 때 한 어른은 나의 독설을 가만히 듣고 계시다 ‘중용(中庸)’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지만 난 이조차도 기성세대의 합리화라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지나서 생각해 보니 이런 논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신뢰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청소년기부터 몸담고 있는 시민단체에서 만난 이 어른은 내 성장과정과 현재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신 분이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친구, 선배, 후배들도 이분과의 만남을 즐거워하고, 학교에 진학하고, 직장을 옮기고, 결혼을 하고, 집안에 큰 일이 생겨도 이분을 찾아 조언을 듣고자 한다.

만약 이분이 ‘너희들이 뭘 알아!’나 ‘요즘 젊은 것들은…’으로 시작하여 지루하고 장황한 가르침을 늘어놓는 어른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불편한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분은 우리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시고, 아직도 젊은이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젊은이들보다 더 노력하신다. 화제의 책은 주문해서라도 밤을 새워가며 읽으시고, 요즘 뜬다하는 영화가 있으면 먼저 극장가자 제안하시고, 우리가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을 때, 추운 날씨에도 미군기지 강제수용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먼저 참석해 우리에게 전화를 하신다. 

이런 이유가 평안남도 남포의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나이에 멋(?)모르고 서북청년단 활동을 하다, 보복이 두려워 홀로 3·8선을 넘어 혈혈단신으로 살아온 이분의 60년 인생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도 질리지 않고, 지혜를 배우고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이제 그때 이분이 말씀해주신 ‘중용(中庸)’의 의미를 되새길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으로, 이마의 주름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자리가 어른의 자리임을 이분의 모습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쉼터의 한 아이가 다가와 뜬금없는 말을 시작하였다.
“선생님! 전 나이 먹는다는 것이 싫었거든요, 근데 선생님들을 보면서 나이를 먹는 것이 괜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어......엉? 왜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늙으신(?) 선생님들은 ‘안 돼!’라는 말보다 ‘생각해보자.’라는 말을 더 많이 하시는데, 그게 좋거든요.”

이 아이에게 내가 ‘늙으신(?)’으로 보인다는 것은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지켜봐주고 격려해주는 이 한마디에 나이에 대한 부담감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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