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희(평택시청소년상담센터 상담부장)

시어머니의 거짓말 1위는 ‘며느리를 내 딸과 같이 생각 한다’, 며느리의 거짓말 1위는 집으로 돌아가시려는 시부모에게 ‘좀 더 계시다가 가시지요’였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설날 전에 청소년 지도자과 함께 품성개발 교육을 실시하면서 ‘우리가 흔히 하는 거짓말’ 에 관해서 토론했던 내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교육에 참가한 선생님들과 센터직원들을 조사해보았더니 흔히 하는 거짓말의 1위가 사람들과 헤어질 때 ‘다음에 식사나 한번 하지요’였다. 다시 만날 계획이 정확치 않으면서 습관적 그런 약속을 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거짓말이 예의상 한다는 사람, 서로가 거짓말인줄 알고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거짓말이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 상담을 하다보면 청소년들이 화를 많이 내는 내용 중에 하나가 부모가 약속을 안 지켰기에 나도 약속을 안 지킨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의 주장에 대해서 ‘깜박했다’라고 말을 한 뒤 미안하다는 사과보다는 ‘이제라도 해주면 되지 않느냐’, ‘엄마가 하는 일이 한 두 가지인 줄 아느냐?’ 라고 답변을 하여 결국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깊은 불신의 골이 생겨서 대화를 어렵게 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약속을 어긴 그 부모의 속을 들여다보면 부모가 바빠서 라기 보다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쉽게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런 거짓말로 인해서 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사례가 있었다.
나는 몇 년 전 보육원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한 적이 있다. 매주 한번씩 만나서 서로 대화나 게임을 통하여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시간으로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따뜻함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다음에 한번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라고 한 것이다. 그 때는 진짜로 한번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 약속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기에 따로 시간을 내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몇 달이 지난 후 나는 우연히 길에서 집단상담에 참가한 아이 한명을 만났다. 나는 반가워서 ‘잘 지냈느냐’라고 물어보았는데 그 아이의 첫마디는 의외로 “우리 맛있는 것 언제 먹으러가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아차! 내가 실수 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멍했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채 쉽게 한 말이 이 아이를 몇 달 동안 무작정 기다리게 했던 것이다.
상대가 약속을 안 지키면 물어 보아서 확인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채 그냥 기다려야만 했던 아이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설의 아이들은 부모들이 아이를 시설에 맡기면서 ‘곧 데리러 올게’라는 말을 해놓고 사정상 못 오게 되는 부모를 무작정 기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경험을 많이 할수록 부모나 다른 어른에 대한 믿음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수를 한 것은 나의 일상생활 중에 그런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해왔기에 해서는 안 될 대상을 구별하지 못한 채 해버린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 담당자에게 이 상황을 전화로 설명한 뒤 아이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후로는 나의 책임 없는 말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진심을 가지고 표현하려고 한다.
그동안 내가 일상생활 중에 했던 거짓말들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갖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