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진 규 본지고문

온 국민 박수 받도록 유종의 미 잘 거두길


김대중 대통령은 재야시절 추종자들로부터 선생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망명과 추방, 투옥과 가택연금 등 시련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평택 지역에서도 DJ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끔 모여서 그의 옥중서신을 읽고 시국을 논할 때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를 선생이라고 했다. 당시 그는 이렇다할 직함이 없었기도 했지만 민주화를 위해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는 모습에서 단순한 정치인이기보다는 마치 독립운동가와 같은 우국지사로서의 이미지를 더 강렬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에 선생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렸던 것 같다. 실제로 DJ의 많은 추종자들은 그를 정치적 보스가 아닌 그 어떤 지도자로 생각했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정에서 DJ가 겪은 고난은 형극(荊棘)이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닌 독재자였다. 누구도 감히 그에게 대들 수가 없었다. 그 앞에서 민주화를 말하면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민주주의를 하자며 도전한 사람이 DJ이었다. 그러나 이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당랑거철(螳螂拒轍) 즉 사마귀가 굴러오는 수레를 막겠다고 대드는 격에 불과했다. 박 대통령과 맞선 결과는 비참했다. 의문의 교통사고로 얻어진 다리 불구, 10월 유신과 일본 망명, 납치 피살 위험, 투옥, 가택연금 등 가혹한 보복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그래서 세계인들도 DJ를 마틴 루터 킹이나 만델라 등과 같은 현대사의 영웅적인 인권운동가와 같은 반열로 보고 있고 나중에 노벨평화상을 안겨 주었다.

원래 선생 소리는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니다. 월남 이상재,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백범 김구 등과 같은 위대한 민족지도자들에게나 붙여지는 존칭이다. 단순한 정치인들은 선생 소리를 못 듣는다. 최근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들은 다만 정치가일 뿐이지 선생이라는 이미지하고는 거리가 멀다. 선생이라는 존칭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린 분들에게 붙여주는 영예로운 훈장이다. 이런 점에서 DJ가 재야시절 선생이라고 불렸던 것은 아무렇게나 되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DJ가 재야에서 벗어나 야당 총재가 되고 대권에 도전하는 정치인으로 돌아가자 선생 소리는 사라지게 되었다. 마침내 대통령이 된 그는 그냥 대통령으로 불릴 뿐이다. 처음에는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했고 잘 해 보려 했지만 말처럼 쉽게 되어지는 것이 대통령 자리인가 보다. 이제 임기를 일년 남짓 남겨둔 지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DJ는 인기가 많이 떨어7져 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이뤄내고 IMF를 극복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몇몇 과감한 개혁조치들은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터진 이용호 게이트는 작지 않은 상흔으로 남아 속을 썩일 조짐이다. 대통령으로서 이룬 업적이 재야시절 선생님으로서 국민들의 양심에 민주화의 불을 붙이며 희망을 주었던 무형의 업적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사 천년을 만든 100인"이라는 책자를 보면 선생으로 추앙 받는 백범 김구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에 이어 3위를 차지했는데 비해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8위에 머물렀다. 선생님 김구가 대통령 이승만보다 더 높이 평가된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9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그의 한 라이벌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은 100인 안에도 못 끼었다. 그러면 박 대통령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DJ는 퇴임 후 과연 100인 안에 들어 갈 수 있으며 또 박 대통령을 앞 설 수 있을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DJ를 선생님으로 존경하며 따랐던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그가 평범한 정치인으로 환속하여 대통령이 되는 것이 꼭 최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도의 간디나 우리 나라의 백범 김구는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그 이상 가는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였고 영원한 스승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 애국애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민족의 스승이다. DJ도 민주주의가 유린되던 군부독재시절 민주주의가 얼마나 귀중한 지를 가르치고 또 민주화를 위해 몸과 맘을 다 바친 민족지도자요 스승이기에 충분했었다.

어느덧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도 끝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존경받지 못하는 불행한 전직 대통령들과 같이 안 되길 진심으로 빈다. DJ 자신과 나라를 위해서다. 온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나와 동교동 사저에서 선생으로서 재야시절 그랬던 것처럼 은은한 파이프 향기로 찾는 이들을 맞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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